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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식영정 일원(명승),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 산실로 여겨졌던 곳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식영정(息影亭, 명승)이다.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에 합류하는 증암천과 광주호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정자이다. 16세기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조선중기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송강 정철이 이 일대 경관을 노래한 ‘성산별곡’을 지었다. 임억령은 경치좋은 20곳을 골라 경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식영정 20영’을 지었으며, 김성원, 정철, 고경명 또한 각 20수를 지었다. 이들 4명을 식영정 4선이라 불렸으며, 식영정 또한 사선정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식영정이 있는 나즈막한 동산>

식영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아담한 크기의 정자로 온돌방 1칸, 대청마루 1칸으로 이루어졌다. 대청마루에는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지은 글들이 적혀 있는 현판들이 걸려 있다. 가사문학을 이끌었던 송강 정철이 자랐던 마을에 있는 정자로 이곳에서 대표작 「성산별곡」을 지었다고 한다.

<담양 식영정(명승)>

<대청마루>

건물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마루는 비교적 넓은 편이다. 대청마루는 지금은 호수로 변한 들판과 증암천을 내려다 보고 있다.

<식영정 현판>

<천장아래 현판들>

대청마루 천장 아래에는 이곳을 찾은 인사들이 남겨 놓은 글이 적힌 현판들이 걸려 있다.

<뒤에서 본 모습>

<식영정 뒷편에 있는 시비>

<식영정 대청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주호>

원래는 마을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던 넓은 농지가 내려다 보였을 것이다.

<식영정 아래>

식영정이 있는 언덕 아래에는 최근에 복원한 임억령과 사위 김성원을 모신 사당인 성선당, 작은 연못에 세운 정자인 부용당, 사당 앞 살림집 형태의 정자인 서하당, 서적과 목판을 보관하던 장서각, 관리인 살림집이 고직사가 자리잡고 있다. 석영정과 함께 전체적으로 서원이나 서당을 꾸밀 수 있도록 건물들을 지었다. 증암천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는 환벽당과 마주하고 있다. 환벽당, 소쇄원 등과 함께 경치가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많은 시인.묵객들과 교류하던 곳이다. 송강 정철이 자랐던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을 배경을 많은 시가를 지었던 유서깊은 곳으로 가사문학의 산실이라 여겨지는 곳이다.

<임억령과 김성원을 모신 사당인 성산사>

<강당 건물>

사당 아래에는 서원이나 서당 강당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서하당이 자리잡고 있다. 앞면 3칸에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으며, 구한말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연못과 부용정>

식영정 아래에는 작은 연못을 파고 작은 정자인 부용정을 두고 있다.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직사와 서적을 보관하던 장서각>

무등산 서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영산강과 합류하는 증암천 주변에는  호남지방 가사문학의 산실로 소쇄원, 식영정을 비롯하여 이 지역 선비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 들어서 있다. 광주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무등산 계곡 역할을 했던 이 곳은 조선시대 창평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근처의 창평천 주변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들이 선호했던 세거지의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다. 가사문학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다른 지역 양반들이 경치가 좋은 곳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을 많이 설립한 것과는 달리 자연을 벗삼아 시를 읊고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한 정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광주댐으로 막아서 넓은 호수로 바뀐 식영정 앞 증암천>

식영정이 있는 산을 성산이라고 하는데, 송강 정철을 비롯하여 당대 이 지역을 대표하는 4인이 성산일대 경치가 빼어난 20곳을 노래한 것이 ‘식영정20영’이며, 성산별곡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식영정 입구에 세워진 기념비>

담양 식영정 일원, 명승,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식영정은 석천 임억령의 정자이다. 조선 명종15년(1560)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식영정 경내에는 서하당과 석천을 주향으로 모셨던 성산사가 있었는데 그간 없어진 것을 최근 복원하였다. 석천은 이곳에서 「 식영정20영 」을 지었는데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의 제자들이 차운하였으며, 이들 네명을 <식영정사선>이라 불렀다. 이런 이유로 식영정을 <사선정>이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정철은 이곳 승경을 무대로 성산별곡을 비롯한 많은 시가를 지어 송강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건물의 네 귀퉁이에 모두 추녀를 달아 만든 집으로 온돌방과 대청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식영정은 197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9월 국가지정 명승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