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송강정, 송강 정철이 고향으로 낙향하여 세운 작은 정자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위치한 송강정(松江亭)이다. 가사문학의 산실로 잘알려진 식영정과 소쇄원 등이 무등산 북쪽 자락 가까운 물맑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면, 송강정은 면앙정과 함께 영산강 주변의 넓은 농토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동산위에 세워졌다. 송강 정철이 유배생활을 끝내고 낙향하면서 지은 정자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사미인곡’과 ‘속사미인곡’을 지은 곳이다. 무등산에서 발원한 지천인 증암천이 영산강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송강정 언덕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영산강 주변의 넓은 평야가, 남쪽으로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증암천 주위에 형성된 창평지역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주, 창평, 담양, 장성 등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 송강정는 소쇄원 등이 있는 무등산 계곡을 방문하는 인사들이 잠깐 쉬어가면서 정자 주인과 환담을 나누었을 것으로 보인다.

송강 정철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과 명종~선조대에 활동한 인물이다. 27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대사헌 등 중앙정부의 주요 요직과 여러지역의 관찰사를 역임했다. 어린 시절 창평으로 이주하여 김윤제, 기대승 등 당대의 석학들에게 베우고 이이.성혼 등과 교유했다. 조선중기 당쟁이 시작되던 시기에 서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여러차례 공격을 받아 유배생활을 떠났다, 복직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임진왜란 때 부름을 받아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말년에 동인의 공격을 받아 강화에서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정치가나 학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동해안 지역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관동팔경>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을 날린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등산 서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영산강과 합류하는 증암천 주변에는 호남지방 가사문학의 산실로 소쇄원, 식영정을 비롯하여 이 지역 선비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 들어서 있다. 광주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무등산 계곡 역할을 했던 이 곳은 조선시대 창평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근처의 창평천 주변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들이 선호했던 세거지의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다. 가사문학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다른 지역 양반들이 경치가 좋은 곳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을 많이 설립한 것과는 달리 자연을 벗삼아 시를 읊고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한 정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담양 송강정. 송강 정철이 고향으로 낙향하면서 세웠던 작은 정자이다. 원래는 작은 초가를 지었으나, 영조 때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세웠다. 원래 이름은 죽록정이었으나 최근에 송강정으로 이름을 바꿨다.

OLYMPUS DIGITAL CAMERA정자 한쪽편에는 ‘죽록정’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담양지역의 다른 정자와 마찬가지로 가운데 온돌방을, 주위에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툇마루.

OLYMPUS DIGITAL CAMERA마루 천장 아래에 걸려 있는 현판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으로 영산강 주변의 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다. 송강정 바로 아래에는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소쇄원 등이 있는 지역을 지나서 흘러내려오는 증암천이 지나고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서 영산강과 만난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들은 전남과 전북을 경계짓는 노령산맥 봉우리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강정 남쪽으로 보이는 창평지역. 고창.담양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북방향 담양지역. 광주.담양간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송강정 아래로는 무등산에서 발원한 증암천이 흐른다.

OLYMPUS DIGITAL CAMERA광주.담양간 국도변 나지막한 언덕에 세워진 송강정. 송강(松江)이라는 그의 호에 걸맞게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강정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송강정 시비.

담양 송강정,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송강정은 조선 선조 17년(1584) 송강 정철이 대사헌을 지내다 당시의 동인과 서인의 싸움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후 창평에 내려와 정자를 세운 것이다. 죽록정을 고쳐지어 송강정이라 일컬었다. 정면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재실이 있는 구조이며, 정면에는 송강정, 측면에는 죽록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송강 가사 중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은 산실이 바로 이곳이며, 현재 정자 옆에 1969년에 건립한 사미인곡 시비가 서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