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315호), 당대 문장가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탑비

경북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 경내에 있는 지증대사탑비(국보 315호)이다. 봉암사를 세운 신라말의 고승 지증대사를 기리기 위해 승탑 옆에 세워진 탑비이다. 탑비의 머릿돌과 받침돌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그 조각 역시 뛰어난 편이다. 받침돌은 머리가 용이고 몸은 거북모양으로 머리 위에는 뿔이 솟아 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비문위에 올려진 머릿돌에는 연꽃무늬와 8마리 용이 얽힌 형태로 장식되어 있다.

비문은 헌강왕의 명령을 받은 당대의 문장가 최치원이 8년에 걸쳐 지었으며, 30년이 지난 924년에 탑비가 세워졌다. 비석에 적힌 내용은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며 지증대사까지 이어지는 법계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통일신라 하대의 불교(선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증대사의 일생 행적을 여섯가지 신비한 사실과 여섯가지 훌륭한 행적으로 정리한 전기 서술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통일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제도, 사찰명, 풍속 등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며, 신라의 왕토사상, 사원에 토지를 기부하는 절차, 신라말 선종 산문 개창에 지방 유력자의 후원이 있었다는 점 등 많은 사료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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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315호). 용머리를 하고 있는 거북받침돌위에 승탑 조성 내력을 적은 비문이 적힌 비몸과 그 위에 용과 구름이 조각된 이수가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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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당대 문장가 최치원이 글을 짓고, 승려 혜강이 글씨를 썼다. 지증대사의 행적을 6가지 신비로운 사실과 6가지 훌륭한 행적을 기록하는 양식으로 서술하고 있다.통일신라말 사회상과 인명, 지명, 관명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비석자체의 조형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문에 새겨진 글씨. 일반인이 글씨을 알아보기는 힘든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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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탁본(중앙박물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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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뒷면.

OLYMPUS DIGITAL CAMERA용머리를 하고 있는 거북받침돌. 생동감이 넘치고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인 통일신라말의 거북받침돌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받침돌 머리.

OLYMPUS DIGITAL CAMERA거북 등에는 육각형의 문양안에 꽃잎형태를 새겨 놓고 있다. 비를 받치는 비좌에는 불상을 부조형식으로 새겨 놓고 있으며, 거북발을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비 머릿돌(앞면). 구름속을 날아다니는 용을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머릿돌 뒷면.

OLYMPUS DIGITAL CAMERA문경 봉암사 경내에 있는 지증대사탑과 탑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국보 315호,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이 비는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암사를 처음 건립한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신라 경애왕 원년(924년)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신라말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지었으며, 글씨는 분황사의 승려 석혜강이 썼다. 용모양의 비머리와 귀부를 완전히 갖춘 비석으로 귀두는 용두형화되었으며 사산비문으로 널리 알려진 비이다. 지증대사는 속성이 김씨이고 호는 도헌이다. 신라 헌강왕 15년(824)에 출생하여 17세에 부석사로 출가하면서 승려가 되었다. 그가 헌강왕 8년(882)에 봉암사에서 향년 59세로 돌아가자 나라에서 시호를 지증이라 하고 탑호를 적조라 하는 동시에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다.(안내문, 문경 봉암사, 2013년)

<출처>

  1. 안내문, 문경 봉암사,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