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에 있는 진전사(陳田寺) 절터이다. 낙산사 북쪽 해안으로 흘러 내려오는 물치천 상류 설악산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진전사는 우리나라에 선종을 들여온 도의선사가 수행했던 곳으로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국보 122호), 도의선사탑(보물439호)가 남아 있는데,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한 아래 공간과 도의선사탑을 중심으로 한 위쪽 공간에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종계열의 사찰이어서 그런지 인상적인 불전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건물터 흔적도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진전사가 역사적,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나라에 선종을 처음 들여온 도의선사가 이 곳에서 40년 동안 수도했으며, 후대에 선종을 크게 일으킨 염거화상이나 보조선사 같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기때문이다. 보조선사는 통일신라 말 왕실의 후원을 받아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에서 선종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迦智山門)을 크게 일으켰다. 진전사는 조선중기에 국가적인 억불정책 때문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양양 진전사 절터. 설악산 계곡에 축대를 쌓아 부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남아 있는 건물터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은 편이다.
진전사지 중창복원 계획도. 삼층석탑을 있는 공간이 원래 사찰터로 보이며, 도의선사탑 주변에 세워진 건물들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쪽에서 보이는 진전사 절터.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부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 122호).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 기단부와 탑신 1층 몸돌에 부조상을 새겨놓고 있다.
삼층석탑 뒷편 건물터. 불상을 모신 금당으로 보이는 건물터이다.
삼층석탑이 있는 공간에서 도의선사탑이 있는 공간으로 연결되는 길. 절터 아래에 민가들이 있다.
도의선사탑(보물 439호). 석탑형태의 2층 기단 위에 목조건축물을 모방한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도의국사는 신라후기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가지산문의 개조이다. 법호는 명적, 속성은 왕씨이며 북한군(지금의 서울) 출생이다. 서기 784년 당나라에 건너가 조계에 가서 헤능대사의 조사당을 참배하니 문이 스스로 열렸고, 절을 세번하니 문이 저절로 닫혔다고 한다. 이후 강서의 홍주 개원사에서 서당지장으로부터 법을 얻고, 도의라는 법호를 받았다. 821년 귀국하여 선(禪)을 일으키려 했으나 당시 신라사람들은 교(敎)만을 숭상하고 무위법을 믿지 않고 비방하면서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는 아직 시기가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 곳 설악산 진전사에 은거하여 40년동안 수도에 전념하면서 제자 염거선사에게 남종선법을 전하고 입적하였다. 도의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이고 부도탑은 보물 4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양양 진전사지,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최소한 8세기 경에는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6세기 경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절은 우리나라 선종을 크게 일으킨 도의선사가 신라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랫동안 은거하던 곳으로, 염거화상이나 보조선사와 같은 고승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도 이곳에서 체발득도하였다. 현재 절터에는 삼층석탑(국보 122호), 부도(보물 439호) 등의 석조물이 있고, 「진전」이라 새겨진 기와편 등이 수습되었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