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릉] 왕릉을 돌보다.

조선왕릉에는 능참봉이라 불렸던 능관이 재실에 상시적으로 머물면서 왕릉과 주변 능역을 철저히 관리하였다. 능관이 하는 일은 주기적으로 시행되었던 산릉제례를 준비하고 수행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였으며, 왕릉의 석물과 벌초, 능역내 수목을 관리하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왕릉을 관리했던 능관이 수행했던 각종 업무에 대한 절차와 왕릉을 관리하면서 생겼던 일에 대해서 『왕릉지』에 상세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놓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 왕릉별로 작성되었던 『왕릉지』대부분이 전시되었다.

조선왕릉 전체에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불교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왕들의 능에는 재를 올리는 사찰인 원찰(願刹)을 두었다. 원찰은 왕실의 안녕과 재를 올리는 기본 역할과 함과 함께 왕릉의 관리를 위해 노동력과 각종 물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성종의 선릉, 중종의 정릉에 있는 봉은사, 세조의 광릉에 있는 봉선사, 사도세자와 정조의 융릉.건릉에 있는 용주사 등이 대표적인 원찰이다.

조선왕릉, 돌보다
조선왕릉은 국가와 왕실의 근본을 상징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었다. 왕릉을 살피는 능관은 왕릉의 관리와 수호 및 그에 필요한 인력인 수복과 수호군 등의 관리감독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가졌다. 능관은 왕릉 내 재실에 상주하였으며, 산릉제례의 준비.물품관리. 제례수행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왕릉의 석물과 사초(莎草), 정자각, 주변 수목의 관리나 왕릉 관련 공사의 감독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은 관리 및 제향에 관련된 제반 사항은 왕릉지(王陵誌)에 기록하여 남겼다. 또한 왕릉 주변에는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재를 올리는 사찰을 두었다. 이 사찰은 왕릉의 관리를 위해 승려의 노동력과 각종 물품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잡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출처: 고공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왕릉의 배치가 그려진 왕릉지.

문헌이 없다면 현재를 살면서 어떻게 장차 옛일을 상고할 수 있겠는가. – 강릉지 서문 -
능침은 임금의 무덤이며 종묘의 예법이므로 그 지(誌)는 더욱 중대하다. – 광릉지 서문 -

왕릉의 기록지, 왕릉지(王陵誌)
왕릉지는 왕릉의 관리책임자였던 능관이 수행한 각종 업무에 대한 절차와 규식을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승하한 왕과 왕비가 안장된 후 치러지는 제례 및 능의 감독과 관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왕릉 42기 중 8기를 제외한 34기의 능지가 남아 있다. 왕릉지의 주요 항목으로는 먼저 능의 주인인 왕과 왕비의 생애를 기록한 지문(志文) 등이 있으며, 왕릉의 위치 및 왕릉 부속건물의 규모, 왕릉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 요소를 다루는 내용도 실려 있다. 능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제례와 수호(守護)에 관한 사항들이며, 이밖에도 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안과 그에 대한 처리 및 보고 과정을 기술한 부분 역시 능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내용이다. 또한 능관과 수복, 수호군 등 왕릉 관원의 조직 및 역할과 규범, 왕릉 관리에 필요한 제도의 제반사항과 왕릉 사찰인 원찰을 설명하는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왕릉지는 능관이 현장에서 직접 왕릉과 관련된 전체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역사적 사료로서 당시의 왕릉문화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출처: 고공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제릉지(齊陵誌), 1936년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능인 제릉에 대한 능지이다. 1936년 제릉 참봉 이병두가 옮겨 적은 책으로, 각종 제례와 관련된 축식 및 삽도, 절목, 사목, 죽책문, 옥책문 등을 기록하였다. <출처: 고공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선정릉지(宣靖陵誌), 1936년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인 선릉과 중종의 능인 정릉에 대한 능지를 이왕직에서 옮겨 적은 책으로, 1802년 편찬한 『선릉지』와 1835년 편찬한 『정릉지』를 합쳐서 정리한 것이다. <출처: 고공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익릉지(翼陵誌), 20세기 전반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인 익릉에 대한 능지를 이왕직에서 옮겨 적은 책이다. 석물과 건물의 수리 원칙이나 능침의 봉심 관련 조항, 제례 의식과 물품, 각종 사건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고공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건릉지(健陵誌), 20세기 전반

정조와 비 효의 왕후의 능인 건릉에 대한 능지이다. 1873년 재실의 화재로 소실된 원본을 1878년에 새롭게 작성하였는데, 이를 이왕직에서 옮겨 적은 것이다. <출처: 고공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태조의 제2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지(貞陵誌)

OLYMPUS DIGITAL CAMERA1대 태조의 건원릉지(健元陵誌)

OLYMPUS DIGITAL CAMERA2대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지(厚陵誌).

OLYMPUS DIGITAL CAMERA5대 문종과 비 현덕왕후의 현릉지(顯陵誌)

OLYMPUS DIGITAL CAMERA6대 단종종비 정순왕후의 사릉지(思陵誌)

OLYMPUS DIGITAL CAMERA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지(光陵誌)

OLYMPUS DIGITAL CAMERA추존왕 덕종과 비 소혜왕후의 경릉지(敬陵誌)

OLYMPUS DIGITAL CAMERA9대 성종 원비 공혜왕후의 순릉지(順陵誌)

OLYMPUS DIGITAL CAMERA11대 중종비 단경왕후의 온릉지(溫陵誌)

OLYMPUS DIGITAL CAMERA11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태릉지(泰陵誌)

OLYMPUS DIGITAL CAMERA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강릉지(康陵誌)

OLYMPUS DIGITAL CAMERA14대 선조와 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목릉지(穆陵誌)

OLYMPUS DIGITAL CAMERA추존왕 원종과 비 인헌왕후 장릉지(章陵誌)

OLYMPUS DIGITAL CAMERA16대 인조와 원비 인열왕후의 장릉지(長陵誌)

OLYMPUS DIGITAL CAMERA16대 인조계비 장렬왕후 휘릉지(徽陵誌)

OLYMPUS DIGITAL CAMERA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지(崇陵誌)

OLYMPUS DIGITAL CAMERA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 혜릉지(惠陵誌)

OLYMPUS DIGITAL CAMERA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의 의릉지(懿陵誌)

OLYMPUS DIGITAL CAMERA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원릉지(元陵誌)

OLYMPUS DIGITAL CAMERA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영릉지(永陵誌)

OLYMPUS DIGITAL CAMERA23대 순조와 비 순원왕후의 인릉지(仁陵誌)

OLYMPUS DIGITAL CAMERA추존왕 문조와 비 신정왕후의 수릉지(綏陵誌)

OLYMPUS DIGITAL CAMERA24대 헌종과 효현왕후의 경릉지(景陵誌)

OLYMPUS DIGITAL CAMERA25대 철종과 철인왕후 예릉지(睿陵誌)

OLYMPUS DIGITAL CAMERA26대 고종과 명성황후 홍릉지(洪陵誌)

왕릉의 수리와 관리
조선왕릉에는 각 능별로 영(令)과 참봉(參奉)으로 구성된 능관과 함께 30~80명에 이르는 관리 인원이 배치되었다. 이들은 왕릉의 수리나 왕릉에 딸린 논밭의 경작에 동원되기도 하였으며, 왕릉이 위치한 지역의 백성들도 능의 보수와 산림의 보호, 능행을 위한 길과 다리의 수리 등에 동원되었다. 왕릉의 관리는 다양한 세부 규정 아래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봉분과 재실, 정자각 등을 살피기 위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관리를 보내도록 하였고, 정월 초하루와 한식에는 능침의 잡목과 잡초를 확인한 후 보고하도록 하여 왕릉의 윺지에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폭우 등 자연재해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산릉수개도감을 설치하여 처리하도록 하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정릉 재각을 정건한 일을 기록한 현판, 1900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의 재실을 중건한 전말을 기록한 현판이다. 고종이 1899년 식덕왕후를 신덕고황후로 추존하면서 이듬해 정릉의 재실을 중건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선릉 정자각 중건 상량문, 1706년

조선후기 문신 최석항이 지은 상량문이다. 숙종 대에 선릉의 석물과 정자각을 보수해야 할 필요성이 여러 번 제기되었고, 1706년에는 기울어진 정자각을 중건하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 1810년, 보물 1901-1호

1810년 8월에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을 개수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원릉의 개수 경위와 각 관청끼리 주고받은 문서 등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수릉능상사초개수도감의궤, 1900년, 보물 1901-3호

순조의 아들 추존왕 익종과 비 신성왕후의 능인 수릉 봉분의 사초”를 개수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영조가 명릉 개수에 임하는 감회를 새긴 현판. 1744년

영조가 1744년 8월 7일 숙종의 명릉을 개수하는 역사에 친히 임하여 유숙하면서 울고 쓴 감회를 새긴 것이다. 명릉을 개수하는 이유와 제도 등을 부기하여 향대청에 걸게 하였다.<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영조가 각 능의 재관에게 내린 지침을 새긴 현판, 1755년

영조가 1749년 5월 각 능의 재관에게 사전의 중요함과 청재하는 일 등을 유시한 것이다. 서삼릉에 걸렸던 것으로 이철보가 글씨를 쓰고 1755년 10월에 판각되었다.<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수원부 유수 서유린에게 내린 전령을 새긴 현판, 1798년,

1798년(정조 22)에 정조가 수원부 유수 서유린에게 내린 전령을 새긴 현판으로, 현륭원의 나무를 손상시키는 벌레를 제거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장릉 사례요람,

인조의 아버지 추존왕 원종과 비 인헌왕후의 능인 장릉을 관리하는 규식이나 임무, 소소한 일상의 사례 등을 기록한 모음집이다. <출처: 고궁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