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릉(泰陵, 사적),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능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태릉(泰陵, 사적)이다.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능이다. TV사극에 많이 등장하는 문정왕후는 중종이 계비임에도 고양 서삼릉에 있었던 중종의 능을 서울 강남의 정릉으로 옮기고 자기도 그 곳에서 묻힐 작정으로 원찰인 봉은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하지만 정릉 주변은 지대가 낮아 물이 자주 고여 지대를 높이는데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이 곳 태릉에 묻혔다. 불교를 신봉하고 사화를 일으키는 등 당시 주도세력으로 부상한 신진 사림세력과 사이가 좋지 못했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승려 보우를 중심으로 승과를 설치하는 등 불교 발전에는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그 결과 사명대사를 비롯한 많은 인재들이 임진왜란 극복에 큰 공을 세우면서 조선후기 불교가 다시 중흥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서울 동북쪽에 위치한 태릉.강릉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촌과 육군사관학교로 유명한 지역이다. 역대 조선 왕과 비의 능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지역으로 근처에는 동구릉이 있다. 부근 지역이 능역에 포함되어 일제강점기까지 남아 있었고, 해방 이후 육군사관학교, 태릉사격장, 태릉선수촌, 군부대, 옛 서울대학교 등 많은 공공시설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봉원사가 태릉의 원찰이라 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태릉(사적)이다. 본인은 봉원사가 있는 강남구 삼성동 중종의 정릉에 같이 묻힐 생각이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동구릉에서 가까운 이곳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서울 태릉, 사적 201호,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능이다. 문정왕후는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중종 12년에 왕비가 되었다. 왕후는 명종이 인종의 뒤를 이어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왕후가 나라를 다스린 8년 동안 윤원형 등 왕후와 친척이 되는 신하들이 권력을 잡고 나랏일을 좌지우지 하였다. 한편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했던 왕후는 승려 보우를 신임하여 승려가 되는 시험인 승과를 설치하는 등 불교 진흥에 관심을 쏟았다. 그 후 명종 20년에 65세로 창덕궁 소덕당에서 돌아가셨다. <출처:문화재청>

SANYO DIGITAL CAMERA태릉 숲길. 조선왕릉 능역의 울창한 숲이 잘 보존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왕릉이 신성한 구역임을 알려주는 홍살문이 입구에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홍살문 옆 배례석.

SANYO DIGITAL CAMERA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신도와 어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친 박석을 깔아 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SANYO DIGITAL CAMERA정자각 옆 수복방.

SANYO DIGITAL CAMERA왕릉 주인을 알려주는 비석이 세워진 비각.

SANYO DIGITAL CAMERA예감. 축문을 태우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각 뒷편 봉분이 있는 언덕. 문정왕후의 봉분만 있는 단릉이다.

SANYO DIGITAL CAMERA태릉 봉분. 문석인과 무석인 4등신으로 입체감이 없다. 당시 석물 조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 문정왕후가 정릉의 원찰로 크게 중창한 사찰로 조선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찰이다. 봉은사에서 태릉의 원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