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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지공선사탑, 석등, 탑비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지공선사탑과 석등, 탑비이다.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탑, 제단, 석등, 탑비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다. 8각을 기본으로 한 전형적인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화려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 고려초기 승탑과는 달리 장식 없이 돌을 쌓아 놓은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석등은 4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장식이 없고, 석재를 조립해서 만든 듯처럼 보인다. 탑비는 무학대사탑비와 마찬가지로 4각의 받침돌 위에 몸돌과 머리돌을 얹어 놓은 것으로 조선후기에 새로 만든 것이다. 원래 탑비가 놓여졌던 거북모양 이수가 탑비 옆에 놓여져 있다.

지공선사(?~1363년)는 인도출신 승려로 원나라에서 활동하다가 고려로 들어와 금강산 승복사에서 머물르다 돌아갔다. 양주 천보산에 회암사를 창건할 것을 요청하고 원나라로 돌아갔다. 공민왕 때 그의 사리 일부를 들여와 회암사에 승탑을 세웠다. 고려말과 조선초 고승 나옹선사와 무학대사가 그에게 배웠다고 한다.

<양주 회암사지에 있는 지공선사탑>

석등과 탑비가 앞쪽에 세워져 있다. 지공선사는 원나라에서 활동한 인도출신 승려로 고려를 방문할 때 회암사 창건을 요청했다고 한다. 공민왕 때 그의 사리 일부를 가져와 이곳에 승탑을 세우고 모셨다.


<승탑>

팔각형을 기본으로 목조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전형적인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받침돌과 몸돌에 특별한 부조를 새겨놓지 않았다.

<석등>

지공선사탑 앞에 세워진 석등. 사각형을 기본으로 한 투박한 모습의 석등이다.

<탑비>

지공선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 무학대사탑비와 마찬가지로 조선후기에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원래 탑비가 세워졌던 거북모양 받침돌>

<뒤에서 본 모습>

양주 회암사지 지공선사탑과 석등
회암사에 놓여 있는 부도와 석등이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다. 회암사에 서 있는 이 부도는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많이 사용된 양식으로,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基壇)은 3단으로 올렸는데 그 중 가운데받침돌만 배가 볼록하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탑신(塔身)은 둥근 공모양이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선이 두툼하며 처마의 각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머리장식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석등은 모든 부재가 4각으로, 3단을 이루는 받침돌 위에 등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화사석은 앞뒷면 2곳에만 창을 내었고, 지붕돌은 부도에서와 같이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두 작품 모두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운 것이다. (문화재청, 2016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