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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현산 칠장사, 인목대비가 영창대군 원찰로 삼은 사찰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에 칠장사(七長寺)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초 혜소국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면서 크게 중건하였다. 칠장사는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는데, 조선중기 광해군의 압박을 받았던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를 위한 원찰로 삼으면서 크게 중창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경기지역에 있는 사찰 중에서는 상히 큰 규모이다. 주불전인 대웅전,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전, 죽은이를 위한 공간인 명부전이 있으며,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을 두고 있다. 중요 문화재로는 칠장사를 창건했다고 볼 수 있는 혜소국사비(보물)가 있고, 오불회괘불탱(국보), 삼불회괘불탱(보물), 봉업사 옛 절터에서 옮겨온 석조여래입상(보물) 등이 있다.

고려초 혜소국사가 이 곳에서 수련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하였다 하여 칠장사라고 하며, 뒷편에 있는 산을 칠현산이라고 부른다. 칠현산에 대한 설화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했다는 활터, 임꺽정이 갖바치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기전에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 임진왜란때 가토기요마사가 혜소국사비를 칼로 베었다가 무서워서 도망갔다는 이야기 등 많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안성 칠장사>

고려초 밀교의 일종인 유가밀교 고승이었던 혜소국사가 머물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으며,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을 위한 원찰로 삼으면서 크게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

<칠장사 전경>

산중에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서 가람을 조성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영창대군 원찰로 지정되었지만, 불전 중심의 전통 사찰 가람배치를 유지하고 있다.

<천왕문>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과 보검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광목천왕과 창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탑을 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사천왕상은 창만 들고 있다.

<사천왕상이 밟고 있는 악귀의 모습>

조선시대 복장을 하고 있는 해악적이다.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칠장사 사천왕상은 흙으로 빚은 소조상이며 영조2년(1726)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은 세상의 중심에 가장 높이 솟아 있다는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과 4대주를 수호하는 신장으로, 손에는 각각 비파(동방지국천왕), 보검(남방증장천왕), 용과 여의주(서방광목천왕), 창(북방다문천왕)을 들고 있다. <출처:안성시청>

<전망 좋은 곳에 세워진 누각>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쪽으로 판문을 달아 놓고 있다. 신도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주불전인 대웅전>

조선중기 지역세도가들에 의해 여러차례 불타버린 것을 영조대에 중건하였다. 앞면3칸, 옆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칠장사 오불회괘불탱(국보)>

불전 앞 마당에 걸어놓고 예불을 드리는 대형 그림이다. 맨 윗부분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불과 노사나불이 좌우에 모셔진 삼신불을, 중간은 약사불과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들을, 아래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그려진 수미산 정상 도솔천궁을 표현하였다. 인조 때 그려진 것으로 동시대를 대표하는 불화이다.


<칠장사 삼불회괘불탱(보물)>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을 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조선 후기 숙종 때 그린 불화이다.

<죽림리 삼층석탑>

죽림리 삼층석탑
죽산에 흩어져 있던 탑부재를 죽림리 강성원 목장에서 관리하여오다 강성원 선생의 기증으로 200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 설치하였다. 이 탑은 전체 높이가 375m이고 상대갑석은 하나의 판석에 옥신괴임을 2단으로 둥글게 처리하였다. 1층 탑신은 2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고 한 면에는 둥근 문고리를 조각하였으며 탑신마다 모서리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모두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상륜부에는 방형 노반만이 남아 있다. 탑신부의 체감비율이나 옥개받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

안성 죽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봉업사지 옛 절터에서 옮겨왔다. 이 불상은 높이 1.57m로 불상과 광배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다. 눈,코,입 등은 심하게 닳았으며, 옷주름은 여려겹으로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고려초기에 만든 다른 석불입상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신체비례가 적절한 편이다. 불상의 뒷면에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가 있다. 이 불상은 고려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역의 불상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칠장사 거북바위>

<원통전>

앞면 3칸이지만 작은 규모를 하고 있다. 익공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명부전>

총21구의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또는 지장전)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이 많은데 반해 칠장사 명부전에 모셔진 불상이 1706년에 제작된 것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빌었던 원찰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혜소국사와 칠현(왼쪽)에 관한 이야기>

명부전 처마 아래에는 칠장사와 관련된 설화들이 그려져 있다.

<궁예가 활쏘는 장면>

<임꺽정과 관련된 장면>

<대웅전 맞은편  요사채인 응향각>

일반적인 사찰 가람배치에서는 강당을 두는데 반해 이곳에서는 요사채를 두고 있다. 사찰을 찾는 손님이 많았던 원찰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웅전 앞 요사채인 열반당>

<맞은편 종무소>

<혜소국사비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칠장사>

<혜소국사비(보물)>


<혜소국사비(보물)>

혜소국사가 수행했던 암자가 있던 자리에 세워져 있다. 받침돌인 귀부와 몸돌, 머릿돌이 따로 떨어져 있는 상태로 있다. 그의 행적이 새겨진 몸돌은 흑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옆면에는 길게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고 있다. 이 비는 고려 문종 14년(1060)에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글은 김현이 짓고 글씨는 민상제가 썼다고 한다.

<혜소국사비 뒷편 작은 요사채>

<산신각>


<칠장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인목왕후 어필칠언시(보물)>

안성 칠장사,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며,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려 우왕9년(1383)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의 역조실록을 이곳으로 옮겼을 정도로 당시 교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다. 인조 원년(1623)에는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을 위한 원찰로 삼아 크게 중수하였다. 현종 15년(1674), 숙종 30년(1704), 영조 원년(1725), 고종 15년(1878) 등 수차례 중건을 하였으며 1970년대 이후 지속적인 보수를 통해 지금의 가람을 이루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5동의 건물과 석탑, 동종 등이 있으며, 국보 296호인 칠장사 오불회괘불탱을 비롯하여 혜소국사비, 철제당간 등 많은 지정문화재가 있다. 또한 오랜 역사와 함께 칠장사에는 여러 구전이 내려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가 남아 있으며, 의적 임꺽정이 갖바치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기 전에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타난 나한님이 과거시험 구절을 가르쳐 주어 장원급제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