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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사릉(思陵, 사적), 조선 6대 단종 비 정순왕후의 능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에 있는 사릉(思陵, 사적)이다. 조선 제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1968년(숙종 24)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 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 붙였다. 추존왕이나 단종의 장릉과 마찬가로 사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이 설치되지 않았으며, 석물 중 무석인은 생략되었다.

정순왕후는 1440년(세종 22)에 태어나 1454년(단종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노산부인으로 강등되었다가 단종인 죽은 후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 옷만 입고 수절하였다고 한다. 1521년(중종 16)에 82세로 죽었다. 후손이 없어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 시가 묘역에 묻혔다. 정순왕후는 사림들이 집권세력으로 등장했던 종종 때까지 꽤 오래 살았기때문에 왕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우를 갖춘 형태의 묘역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사릉 봉분 주위에 경혜공주 시가인 해주정씨 묘역이 남아 있다.

<남양주 사릉(사적)>

. 조선 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세조 집권후 노산부인으로 강등되어 서민으로 살다가 중종 때 죽었다. 단종 누이인 경혜공지 시가인 해주 정씨 묘역에 묻혔다. 사림이 집권세력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중종 때 묘역이 조성되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다.

<사릉으로 들어가는 숲길>

<산릉제례 공간인 정자각>

단종이 복권된 숙종때 왕릉의 모습을 갖추었다.

<정자각 월대를 오르는 계단>

정자각 월대 규모가 다른 왕릉에 비해 약간 작은편이다.

<정자각 내부>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연결되는 참도>

<정자각 앞 수라간 건물터>

<봉분>

병풍석이나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추존왕이나 단종의 장릉처럼 무석인을 생략했다.

<왕릉 주인을 알려주는 표석이 세워진 비각>

<사릉 능역>

사릉이 있는 이곳은 단종 누이 경혜공주의 시가인 해주 정씨가의 묘역이다. 지금도 사릉 능역 안에는 해주 정씨 집안 무덤들이 여러곳 남아 있다. 왕릉으로 격상되기 전까지는 제사도 해주 정씨 집안에서 지내왔다고 한다.

남양주 사릉, 사적,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
사릉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죽임을 당하자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 옷만 입으면서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고 수절하였다고 한다. 왕후가 후사없이 승하함에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의 시가인 해주 정씨가의 묘역에 장례하고 제사도 정씨가에서 지내왔다. 1968년(숙종 24)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 붙였다. 훗날 영조는 정순왕후가 궁궐을 나가 평생을 보낸 정업원(淨業院)터( 현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비각을 세우고 단종이 있는 영월 쪽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올랐던 곳이라고 알려진 뒷산 바위에 ‘동망봉(東望峰)’이라는 글을 친필로 새겼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