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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명13릉 정릉(Dingling, 定陵), 명나라 13대 신종 만력제의 능

중국 베이징 명13릉에 있는 정릉(Dingling, 定陵)이다. 명나라 13대 신종 만력제(萬曆帝, 1563~1620년)의 능이다. 명13릉은 만리장성이 있는 천수산록 아래 창평구에 위치하고 있는 명나라 13명 황제의 능이 있는 곳이다. 대부분 개방되어 있지 않으며, 영락제의 장릉. 윤경제의 소릉. 만력제의 정릉 만이 일반에 공개되어 있으며 그 중 정릉은 시신이 묻혀 있던 내부 지하궁전도 공개되어 있다. 중국 황제의 능은 조선 왕릉에 비해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는 느낌을 준다. 능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봉분이 크고 잘 보이지 않는 등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지만, 기본 구성에 있어서 유교적 예법에 따르고 있어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만력제는 명나라를 가장 오랜 기간동안 통치했던 황제로 돈을 밝혀서 내정을 문란하게 한 점과 과도한 임진왜란 개입으로 명나를 멸망케 한 점 등으로 중국내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점으로 인해서 후대에 송시열을 비롯하여 친명사상을 갖게 동기가 되게 한 황제로 명나라 멸망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기리는 서원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명13릉 중 지하궁전까지 개방되어 있는 정릉(Dingling)>

명나라 13대 만력제의 능으로 조선왕릉과 조성방식 등 전체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곳이다. 크고 웅장한 면모를 보이지만 유교적 특성이 반영되어 전체적으로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 4A급 관광지로 전국중점문물보호물(단위)이며, 전국 중점 관광 명승지이다. 1959년에 대외적으로 개방되었으며, 1991년에는 국가 여행국에서 “중국 관광 명승지 40선”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 1992년 평가위원회는 “세계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완벽한 황제 고분 보유량이 가장 많은 고분군” 이라고 평했다. 시내에서 약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베이징(北京, 북경)시 창핑취(昌平区, 창평구) 내의 톈서우산루(天寿山麓, 천수산록)에 위치해 있으며, 버스를 이용해 갈 수 있다. <출처: 베이징 관광국>

<정릉 입구 금수교(?)>

정릉의 입구에는 삼도의 형식에 맞추어 대리석으로 만든 3개의 다리를 볼 수 있고, 그 아래로는 작은 하천이 흐른다. 다리 상판은 울퉁불퉁한 판석을 깔아 놓고 있는데  예법에 맞게 의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릉은 앞 다리와 하천을 금천교와 금천으로 부르는데 중국은 금수교와 금수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옆쪽 작은 다리>

<다리 아래를 흐르는 금수>

<들어가는 길>

금수교를 건너면 신도비가 있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삼도를 깔아 놓고 있다. 양쪽에 심어놓은 가로수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 신도는 편평하게, 황제와 제후왕이 다니는 양쪽길에는 울퉁불퉁한 박석을 깔았다.

<신도비>

삼도는 황제의 업적을 세겨놓은 신도비 앞까지 연결된다. 신도비는 거북받침돌에 비몸과 머릿돌을 올려 놓은 당나라 비석의 형식을 하고 있다.

정릉 삼문,

신도비가 세워진 광장을 지나면 출입문이라 할 수 있는 삼문이 나타난다. 조선 왕롱 삼도가 시작되는 홍살문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으로 보이며, 현재는 매표소 역할을 하고 있다. 삼문 앞에는 광장은 산릉제례에 참여하는 인원을 제외한 수행원들이 대기하던 장소로 보인다. 황제를 수행하는 많은 인원이 대기할 수 있도록  넓은 광장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삼문을 지나면 삼도가 깔려있고, 조금 걸어들어 가면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월대를 볼 수 있다. 그 양쪽으로는 원래 담장이 있어 능역을 분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왕릉에서 볼 수 없는 건물터인데 황제가 참배를 준비하던 공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월대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 자금성 궁궐 건물 월대와 비슷하게 생겼다. 자금성에 비해서 낡아 보이는 것이 그 내력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 월대를 통과하면 정면에 비각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과 능을 볼 수 있다.

<정릉 출입문 앞 광장>

삼도는 신도비까지만 연결되어 있고, 광장에는 삼도가 보이지 않는다.

<정릉 입구 유리기와 지붕을 하고 있는 삼문>

옛 출입문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정릉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첫번째 건물 월대에서 내려다 본 삼문>

대리석으로 만든 삼도로 연결되어 있다.

<월대와 계단이 남아 있는 건물이 있었던 자리>

출입문의 역할을 겸했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

화려한 문양을 장식하고 있다.

<계단 기둥에 새겨진 장식>

봉황이 구름 사이로 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난간과 누조>

자금성 월대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용을 비롯하여 동물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누조(漏槽). 단순한 형태의 우리나라 건축물과는 달리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했다.

<주춧돌>

월대 면적이 넓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삼문 형태이 출입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조 건축물 기둥을 올려 놓았던 주춧돌을 볼 수 있다.

<윌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삼문>

내삼문이라 할 수 있는 첫번째 건물이 있었던 월대 계단을 내려오면 삼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그 앞으로는 제사를 올리는 조선왕릉 정자각에 해당하는 큰 건물이 있었던 월대를 볼 수 있다. 대리석으로 월대를 쌓아 놓고 있으며, 궁궐 건물과 비슷한 형태이다. 월대에 올라서면 성문 문루같이 생긴 누각이 보이고 그 뒷편 전체가 시신이 모셔진 봉분에 해당한다.

<들어가는 길>

월대에서 조선왕릉 정자각에 해당하는 건물이 있었던 월대까지 삼도가 연결된다. 멀리 봉분 앞에 있는 비석이 있는 누각이 보인다.

<월대를 오르는 계단>

가운데에는 자금성 정전 출입문처럼 답도가 설치되어 있다.

<계단 가운데 있는 답도>

용광과 봉황이 구름속을 날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자금성 계단의 답도에 비해 낡아 보인다.

<월대를 오르는 계단>

<들어가는 길>

월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삼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월대와 그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삼도.

<윌대 위 향나무>

월대 위에 심어진 수령이 수백년 된 것으로 보이는 향나무. 조선왕릉 정자각과는 달리 나무를 심어 놓고 있다.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배수구인 누조>

<정자각에 해당하는 건물이 있던 자리>

월대 위에는 산릉제례를 올리는 정전에 해당하는 큰 건물이 있었던 주춧돌들이 남아 있다. 앞쪽에는 정자각 배위청처럼 지붕이 있는 툇간은 없고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월대 양쪽으로 담장이 있어 봉분이 있는 곳과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능역내 심어진 다양한 수목들>

봉분과 제단이 있는 영역

명13릉 정릉은 조선 왕릉과는 달리 봉분의 형태라기 보다는 편평한 동산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정자각 역할을 하는 건물을 내려서면 삼도가 석물이 있는 제단까지 이어져 있고, 홍살문처럼 생긴 문이 제단 앞에 위치하고 있다.  제단에는 향로 모양의 대리석으로 만든 석물 양쪽으로 제기처럼 생긴 석물이 양쪽에 2개씩 놓여 있다.  한국과 중국의 풍습의 차이인지, 황제와 제후의 예법이 틀려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왕릉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제단 뒷편에는 능의 주인을 알려주는 표석으로 보이는 비석이 있는 누각이 있고, 뒷편으로 능이 있는 영역을 구분하는 원형의 성벽을 쌓아 놓고 있다.

<출입문>

정자각에 해당하는 건물 계단을 내려서면 조선왕릉 입구 홍살문처럼 생긴 출입문이 있다. 봉분앞에 별도 출입문을 두지 않는 조선왕릉과 다른 부분이다.

<들어가는 길>

홍살문처럼 생긴 출입문을 지나면 2층 문루가 있는 건물로 삼도가 연결된다. 건물 앞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석물들이 놓여져 있다.

<왕릉 앞 석물>

조선왕릉 봉분 앞 석물과 같은 역할, 가운데 향로처럼 생긴 석물을 두고 그 양쪽에 제물을 올렸던 제기로 보이는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앞 문루>

제단 뒷편으로 지하궁전이라고도 불리는 봉분을 출입하는 성문에 해당하는 문루와 바깥세상과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의 성벽을 쌓아 놓고 있다.

<문루를 오르는 계단>

문루 양쪽으로 성벽을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이 길을 통해 능의 지하궁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루 내부에 있는 비석>

만력제의 정릉은 명13릉 중 지하궁전이라는 봉문 내부가 개방되어 있다. 중국 황제의 능은 조선 왕릉과는 달리 작은 봉분이 아니라 원형의 작은 동산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정릉 봉분은 자금성처럼 하나의 궁전을 구현 놓았은 느낌이다. 능 전체를 높은 성벽으로 두르고 있으며, 입구에는 문루를 두고 그 안에는 비석을 세워 놓고 있다. 문루를 지나 성벽을 따라 봉분 뒷편으로 돌아가면 지하궁전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지하궁전 내부는 여러개의 방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방마다 궁전의 방처럼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여러가지 집기들을 두고 있다. 내부는 생각보다 크고 넓으며, 제일 뒷편에 황제의 관이 있었던 자리가 있는 방이 있고, 앞쪽으로 여러가지 제기와 집기들이 있었던 여러개의 방이 있다. 벽화와 같은 장식은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력제(萬曆帝, 1563년 9월 4일 ~ 1620년 8월 18일)는 명나라의 제13대 황제이다. 휘는 익균(翊鈞)이다. 융경제의 3남이다. 1572년부터 1620년까지 48년간 재위하였다. 그의 치세는 역대 명나라 황제들의 통치 기간 중 가장 길며, 명나라가 건국된 지 200년쯤 지나고 왕조가 서서히 몰락해가는 시기였다. 묘호는 신종(神宗)이고, 시호는 범천합도철숙돈간광문장무안인지효현황제(範天合道哲肅敦簡光文章武安仁止孝顯皇帝)로, 그는 1572년부터 162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1572년부터 1582년까지 장거정(張居正)이 섭정하였고 1582년부터 1620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봉분 주위 성벽>

봉분 주위에는 중국 성곽의 일반적인 모습인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은 통로가 있고,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는 성벽 바깥쪽으로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 이외에 능역을 출입하는 출입문>

<뒷편 숲에서 보이는 문루>

<정릉 봉분 뒷편 성벽>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

<만력제 정릉 지하궁전 내부>

상당히 큰 규모의 석실이다. 내부에는 여러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력제 지하궁전 뒷편 큰 방>

이곳에 관이 있었던 것로 보인다.

<대리석으로 만든 큰 의자>

<도자기로 만든 제기>

<지하궁전 내 여러가지 기물들>

<지하궁전을 나가는 출구>

지하궁전은 다양한 수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작은 동산 아래에 있다.

<출처>
1. 두산백과
2.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