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관] 궁중음악과 무용

조선사회에서 궁중음악은 예악(禮樂)을 실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조선 시대 궁중음악은 조상에 제례를 올리는 종묘제례를 중심으로 한 제례음악과 조회나 연회때 연주하는 예식음악, 왕이 행차할 떄 연주하는 행차음악이 있다. 고궁박물관에는 편종,편경,특종,특경,운라, 쇠대금 등 궁중음악에 사용된 악기들을 볼 수 있다. 궁중음악에 사용된 악기는 유교사상에 근거하여 쇠, 돌, 줄, 대, 나무, 가죽, 바가지, 흙 등 만물의 기본 물질을 대표하는 8가지 재료로 만들어서 음양오행에 따라서 각 악기들을 배치한다. 음악과 더불어 춤을 추는 가무 또한 크게 중시되어 각종 의궤나 문서 등에 이와 관련된 많은 기록들이 있다. 궁중음악을 규정하는 법규에 준하는 문서로는 ‘악학궤범’을 들 수 있는데 궁중음악에 대해서 법전 수준으로 아주 세밀하게 기능과 목적, 구성 등을 기록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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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고(建鼓), 복제, 조선, 궁중음악에서 사용한 크고 화려한 북이다.

우리나라 북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정월 초하루나 동지 등 문무백관이 왕에게 하례하는 조하(朝賀)의식과 궁중잔치인 연향에 사용되었다. 전정(殿廷) 헌가에서 응고(應鼓).삭고(朔鼓)를 양편에 두고 음악을 시작할 때 삭고.응고.건고의 순서로 친다. 또 합주가 그칠 때는 건고를 세번 치고 그와 동시에 어(敔)를 세번 긁고 박(拍)을 치면 음악이 그친다. 길이가 긴 북을 가로로 놓고, 구슬을 새긴 굵은 기둥에 북통 중앙을 꿰어서 웅크린 네마리의 호랑이 모양을 한 거호(巨虎)란느 대받침에 세워져 있다. 북통 위에는 크고 작은 두 층의 네모진 뚜껑을 얹어 꽂고 푸른 휘장을 둘러치며, 네 모서리에는 용머리를 새긴 가늘고 긴 장대 모양의 용두간을 뻗치게 하였다. 용머리의 입에 구슬 달린 오색 유소를 늘어뜨리며, 정점에는 춤추듯 나는 모양을 한 해오라기가 연꽃에 선 모양이 날렵하게 조각되었다. <출처: 고궁박물관>

궁중음악
조선의 궁중음악은 유교의 예악사상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정비되고 변화되었다. 유교에서 예는 자연의 이치를 절차로 만들어 스스로 체득하게 하는 것이고, 악은 마음의 성정을 자연과 화합시키는 것으로 예와 악의 조화로 자연의 이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악은 음악과 노래와 무용을 모두 포함하는 악가무의 공연예술을 의미하며 사람을 감동시키고 풍속을 변화시키고 바르게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윤리와 도덕의식을 북돋우는 데 활용되었다. 궁중에서는 각종 의례를 행할 때마다 의례의 규모와 성격, 중요도 등에 따라 그에 맞는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같은 의례라도 시기에 따라 연주음악이 달랐다. 행사 종류에 따라 종묘.사직.문묘 등의 제례에서 연주하는 제사음악, 조회나 연회 때 연주하는 잔치.예식음악, 왕이 행차할 때 연주하는 행차음악으로 나눌 수 있다. 또 악풍의 유래에 따라 아악.당악.향악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아악과 당악은 고려 때 중국 송나라의 궁중 제사음악과 연향음악을 들여오면서 시작되었으며 이와 대비하여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향악이라 하였다. 아악.당악.향악은 오랜기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행사의 성격과 내력에 따라 고루 사용되었다. 궁중음악은 다른 나라의 음악을 수용하여 우리에 맞게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워졌다. 음악과 더불어 제례에서는 일무를, 각종 잔치에서는 정재를 추었다. 일무는 줄을 지어 추는 춤으로 군인과 궁중에 속한 남자들 중 일정한 훈련을 받은 이들이 맡았다. 조선초기에는 6줄6열의 6일무였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황제국으로서 8줄 8열의 8일무를 추었다. 정재는 각종 궁중행사에서 추던 춤으로 대개 무희와 무동이 추었다. <출처:고궁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편경(編磬). 돌로 만든 악기로 온도,습도 등 환경변화에도 음정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국악기를 조율할 때 표준이 되는 악기이다. 돌은 원래 중국에서 수입했으나 조선중기부터 경기도 남양에서 그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편경은 고려 1116년에 편종과 함께 들어와 궁중제례악에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재료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만들었으나 조선 1425년부터 경기도 남양에서 양질의 재료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두 개의 사각대 위에 흰 기러기 한 쌍을 앉히고 그 위에 나무틀을 세워 양편에 봉황머리를 조각하였다. 편경은 습도나 온도의 변화에도 음색과 음정이 변하지 않아 모든 국악기를 조율할 때 표준이 된다. <출처:고궁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편종(編鍾)은 궁중음악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악기이다. 종의 두께에 따라 음계를 달리 하도록 만들었으며, 조선 세종때 박연이 중국 종을 개량한 것이라 한다.

편종은 고려 1116년 송나라로부터 수입되어 궁중제례악에 사용되었다. 송나라에서는 종의 크기에 따라 음계가 결정되었으나 조선에서는 박연이 크기는 같고 종의 두께 차이로 음계를 달리하도록 제작하였다. 두 개의 사각대 위에 사자 한쌍을 앉히고 그 위에 나무틀을 세워 양편에 용머리를 조각하였다. 이 틀에 16개의 종을 2단으로 나누어 매달고 뿔망치로 종 아랫면에 있는 둥근 부위를 쳐서 소리를 내었다. 12율(한 옥타브 안의 열두가지 음계)과 한 옥타브 높은 4청성의 음역을 갖는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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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特鐘)

채색과 조각으로 장식된 나무틀에 종 하나를 걸어놓은 형태의 악기이다. 종의 아랫부분 가운데에 있는 작은 원형의 돌출 부분을 뿔망치로 쳐서 연주한다. 고려시대에 송으로부터 유입되었고 조선시대에 종묘졔례악 등에 편성되었다. <출처: 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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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경(特磬). 특경도 특종과 같이 큰 경 하나만 매달려 있다.

특종과 같이 한 개의 큰 경을 틀에 매단 것이다. 세종 때에는 댓돌 위에서 노랫말 없는 등가 음악을 연주하는 데 한 틀, 댓돌 아래에서 노랫말 있는 현가 음악을 연주하는 데는 아홉틀이 쓰였으나 성종 때에는 노랫말 없는 등가를 연주할 떄 황종의 특경 한 틀만이 사용되었다. 지금은 문묘와 종묘제례에서 댓돌 위에 배치하여 노랫말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데 쓰인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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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方響). 편종과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쇠로 만든 철편을 쳐서 소리를 낸다.

철향이라고도 하며 16개의 철편을 틀의 상단과 하단에 각각 8개씩 매어 놓고 뿔망치로 쳐서 소리를 낸다. 철편의 크기는 같고 두꼐가 다른데 두꺼우면 소리가 높고 얇으면 낮다. 중국 양나라때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당.송.원에서는 주로 연향악에 쓰이다가 명.청시대에는 아악에 쓰였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1세기 고려 문종 때 이 악기로 당악을 연주한 이래 줄곧 당악과 고취에 편성되어 쓰였다. 음역이 노무 높고 음색이 고르지 못하고 탁하여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고 종묘제례악에 사용된다. <출처:고궁박물관>

악기의 상징성.
우리나라 악기는 천지.음양.오행의 자연 질서를 따라 조화된 자연의 음을 나타내는 것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여겼다. 따라서 악기의 재료 역시 팔음이라 하여 쇠金, 돌石, 줄絲, 대竹, 나무木, 가죽革, 바가지匏, 흙土 등 만물의 기본 물질을 대표하는 여덟가지 재료로 만들었으며, 이들 팔음 재료로 만든 악기를 모두 갖추어야 완전한 음악이라 여겼다. 팔음은 여덟 가지 바람과 관련되어 악기를 불어서 천지를 아루르고 이 음악을 듣는 인간의 심성을 온화하게 하여 개인적으로는 심신을 수양하고 국가적으로는 나라의 평안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악기의 배치 역시 바가지.대나무.나무로 만든 악기는 만물이 생장하는 동쪽 방향에 놓고 쇠.돌.흙으로 만든 악기는 만물이 융축하는 서쪽 방향에 놓는다. 또 명주실은 여름에 완성되기 때문에 현악기는 여름을 상징하는 남쪽 방향에, 가죽은 겨울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가죽으로 만든 북쪽 방향에 배치한다. 그리고 색깔을 입혀 만든 아기로서 흰 빛깔의 어는 서쪽에, 푸른 빛깔의 축은 동쪽에 놓는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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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라(雲鑼), 군악대인 취타에 많이 사용되던 악기이다. 조선후기에 주로 취타와 당악에 사용되었다. 행진할 때는 대를 왼손으로 잡고 치며 진연에서는 손잡이를 대 받침에 꽂아 놓고 친다.

구리로 만든 둥글고 납작한 동라(銅鑼) 10개를 나무틀에 매어 놓은 형태의 악기이다. 동라의 크기는 모두 같고 두께로 음정을 조절하며 두꺼울수록 높은 음이 난다. 뿔망치나 나무망치로 동라를 쳐서 연주한다. 행진할때에는 하단부의 손잡이를 들고 연주하고, 고정된 장소에서는 받침대에 세워 연주한다. 중국에서 유입되었으나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중중 연향에서 연주된 기록이 있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어(敔).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악기이다.

어는 엎드린 호량이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그 등에 27개의 톱니를 세운 것이다. 연주할 때는 9조각으로 갈라진 대나무 채로 먼저 호랑이 머리를 세번 치고 이어 톱니를 3번 끍어 내린다. 한국에서는 고려 1116년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후 문묘 및 종묘제례악에서 끝남을 알리는 신호악기로 사용하였다. 흰색을 칠해서 서쪽에 배치하여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축을 푸른색으로 칠해서 동쪽에 놓는 것과 짝을 이루었다.<출처:고궁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축(柷). 축은 그 근원이 가장 오래된 악기로 유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축은 중국 고대황제시대에 만들었다고 전하며우리나라에는 고려 1116년 송나라로부터 들여왔다. 아악과 전정헌가에 쓰였으며 등가에 쓰일 때는 따로 공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축은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로 푸른색을 칠하여 동쪽에 놓고 음악의 끝남을 알리는 어는 흰색을 칠하여 서쪽에 놓는다. ‘ㅗ’모양의 막대기로 밑바닥과 좌우순서로 세번 쳤으나 오늘날에는 밑바닥만 세번 친다. 축은 어와 함께 종묘와 문묘제례악에 사용된다.<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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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고(節鼓)

절고는 음악의 마디마다 북을 쳐서 음악의 구절을 짓게 하는 북이다.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 수나라에서 쓰던 것이 조선 세종 때 들어온 것이라는 설과 조선 중기에 한국에서 제작하였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현재 문묘와 종묘제례에 쓰이며 음악 연주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3번씩 친다. 또 연주의 중간에서는 문묘제례악은 1소절의 끝 박에 2번씩 치고 종묘제례악에서는 대개 이 악절의 첫 박에 1번씩 친다.<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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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金鼓)

북의 가죽면에 ‘금고’라고 쓰여있다. 금고는 불교의식 법구의 이름으로 혼용되기도 하지만 원래는 군악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군사활동에서 명령이나 신호를 하기 위한 장비로 주로 징과 북을 사용하였는데 징을 ‘금’, 북을 ‘고’라 하였다. ‘금은 금할 ‘금’의 뜻으로 전진이나 후퇴를금지하여 징을 치면 멈추고 ‘고’는 움직이는 신호로 북을 친면 움직였다고 한다. 이 북은 군대나 왕의 행차시 등에 사용했던 신호악기로 북통에 용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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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고(晉鼓).

‘악학궤범’에 따르면 진고는 가죽의 지름이 3척5촌3푼, 북통의 길이가 5척이나 되는 매우 큰 북으로 절고와 짝을 이룬다. 절고는 등가에 사용되는 데 반하여 진고는 현가에만 쓰인다. 현가악의 시작과 끝네 쓰며 절과 같이 음악의 매 구절마다 친다. 4개의 기둥에 가름대를 설치한 나무틀 위에 올려 놓는다.<출처:고궁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금은입사 쇠대금. 쇠대금. 쇠대금. 대금은 가로로 부는 악기로, 바람을 불어 넣는 취구, 떨림 소리를 내는 청공, 소리높낮이를 주는 6개의 지공 그리고 높은 음을 조절하는 칠성공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각(螺角). 소라껍데기로 만든 악기로서 고려 의종 때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현재 태평소.징 등과 함께 대취타에 편성되고 있다.

악학궤범의 편찬
유교의 예약사상에 기초하여 교화정치를 표방한 조선 왕조는 ‘국조오례의’라는 예전, ‘경국대전’이라는 법전과 함께 ‘악학궤범’이라는 악전을 완성함으로써 유교 통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악학궤범’의 편찬은 세종대부터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수행된 국가의 통치 틀을 구축하는 최종적 완결을 의미하는 셈이다. ‘악학궤범’은 음악을 구체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경우를 담은 ‘표준화된 교범’이면서 동시에 과거에 시행하였던 악제까지도 수록, 보존하는 기록적 성격까지 지닌다.’ 후대에 악재와 악기가 없어진 경우에도 이 책만 있으면 원래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는데 실제로 임진왜란 이후 악기가 모두 불타버리고 악재가 훼손된 후 악학궤범에 의하여 열무와 종묘재례악을 원상으로 복구하였다. ‘악학궤범’은 성종 때 완성된 후 1610년, 1655년, 1743년에 다시 발간되었다. 현재 임진왜란 이전 판본이 일본에 소장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책은 1610년 태백산본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 악학궤범(樂學軌範, 복제). 1493년 왕명에 따라 성현 등이 펴낸 음악서로 궁중음악의 이론 및 제도, 법식 등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궁중의 공연예술, 정재(呈才)
궁중에서는 왕.왕비.대비의 생일, 세자의 탄생과 책봉, 외국 사신의 영접 등 다양한 계기로 크고 작은 잔치가 거행되었다. 이때마다 빠지지 않고 공연된 것이 정재이다. 정재는 ‘재주를 바친다’는 뜻으로 음악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종합 공연 예술이다. 정재는 대체로 기존의 전해오는 선율에다가 새로운 노랫말과 춤을 얹는 방법으로 창작되었으며, 국왕의 장수를 기원하거나 조선왕조이 번영을 송축하는 내용이 많다. <헌선도(獻仙桃)는 한개만 먹어도 천년을 넘게 살 수 있다는 복숭아를 국왕께 올리는 내용이며, <봉래의(鳳來儀)>는 조선왕조의 개국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의 가사에 맞처 춤을 추고 노래한다. 민간에서 유행하던 연희를 궁중잔치에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선유락>이나 <검기무(劍器舞)> 등이 대표적이다. <출처: 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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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금척(夢金尺), 《신축진찬도병풍》 제8폭, 1901년

조선 태조가 임금이 되기전 꿈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인(神人)으로부터 금척(金尺)을 받았다는 내용을 표현한 정재로서, 태조를 칭송하고 조선 건국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도전이 노랫말을 짓고 1393년에 처음 악곡이 연주되었으며 정재는 세종 대에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금척을 포함하여 죽간자(竹竿子)와 족자(簇子), 황개(黃蓋) 등을 받든 무원(舞員)과 좌혐무(左挾舞) 및 우협무(右挾舞)를 담당한 무원, 그리고 봉황이 그려진 부채 등 여러가지 의물(儀物)을 든 무원들이 배치되는데, 조선후기에는 의물을 받든 무원이 나타나지 않는다. <출처: 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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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락(船遊樂), 《신축진찬도병풍》 제7폭, 1901년

화려하게 장식된 배를 가운데 놓고 무원들이 둥글게 둘러 서서 추는 춤이다. 배에 앉아 있는 동기(童妓) 2인, 무용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집사기(執事妓) 2인, 채선 주변에 둘러서서 닻줄을 끌어 배를 움직이는 내무(內舞), 내무의 바깥에서 큰 원을 그리며 춤추는 외무(外舞)로 구성된다. 선유락이 궁중 정재로 등장한것은 조선후기 정조 때이며, 순조 때부터 조선 중기 문인 윤선도의 <어부사(漁父詞>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출처: 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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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장(壽延長), 《신축진찬도병풍》 제7폭, 1901년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추는 춤으로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정재이다. 죽간자(竹竿子)를 받든 2인의 무원이 춤을 추는 8인의 무원을 인도한다. 8인의 무원은 4인씩 2대로 나뉘어 북향하여 추다가, 2인씩 4대로 나뉘어 춤추는 등 대열을 바꾸어 가며 춘다. <출처: 고궁박물관>

궁중 무용의 절차와 배치, 정재무법(呈才舞法), 조선후기
정재는 궁중의 경사스런 잔치에 추던 춤이다. 내용 중에는 39종목 정재의 방법, 배열도와 무동의 이름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 효명세자가 창작한 정재가 대거 수록되어 있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만수무(萬壽舞), 선도(仙桃)를 바치며 추는 춤으로, 조선 순조 대에 창작된 정재이다. 효명세자가 노랫말을 지었다. 궁중 정재의 하나인 헌선도와 춤의 내용이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침향춘(沈香春), 침향화병의 모란꽃을 취하며 추는 춤으로, 조선 순조때 창작되었다. 침향춘이라는 제목은 봄 향기를 만끽한다는 의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수창(帝壽昌), 임금이 덕이 높아 상제께서 장수로 보답하여 창성하게 한다는 내용의 구호를 가진 정재로, 조선 순조 대에 창작되었다. 효명세자가 노랫말을 지었다. 수연장,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추는 춤으로,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온다. <출처: 고궁박물관>

이왕직 아악부의 설립과 활동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왕실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이왕직(李王職)’이라는 부서를 설치하였다. 이왕직의 ‘아악대(雅樂隊)’ 또는 ‘아악부(雅樂部)’가 음악을 관장했는데, 이왕직 아악부의 역할을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조선왕실관 관련된 의전과 연향, 제례 등에서 음악과 무용을 담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인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몰락과 함께 사직.원구.선농 등의 제례가 폐지되고 규모도 축소되면서 궁중음악은 심각한 전승의 위기를 맞았다. 이에 궁중음악의 전승을 위해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를 설립하고 현대식 궁중음악의 전승 교육을 시작하였다. 또한 각종 음악 서적을 출판하고, 서구식 악보인 오선보로 악보를 만들고, 빅터레코드사에서 궁중음악 음반도 제작하였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궁중음악을 공개하고 나아가 정기적으로 공개 연주회를 여는 등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려 노력하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조전 앞 순정효황후 생일잔치 모습, 1924년 경

대조선 앞에서 열린 순종비 순정효황후의 31세 생일잔치 사진이다. 대조전 앞쪽으로 상궁들이 서 있고 월대 위에는 음악에 맞추어 포구락(抛毬樂)을 연행하고 있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문묘제례악 연주 모습을 담은 엽서, 20세초

이왕직 아악부 악공들이 문묘제례악에서 연주하고 있다. 문묘제례는 공자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석전제(釋奠祭)라고도 한다. <출처: 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궁중음악을 녹음한 레코드판, 아악정수(雅樂精粹), 1928년

이왕직 아악부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빅터레코드사에서 궁중 음악과 정악 등의 음악을 모두 13장의 SP음반으로 발매하였다. <출처: 고궁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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