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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신석기인] 사냥과 고기잡이

1. 구석기에서 신석기시대로2. 곡물재배3. 사냥과 고기잡이4. 토기와 신석기인 예술세계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은 현재와 같은 양상으로 바뀌면서 바다 자원의 활용이 쉬워졌다. 바다나 강에서의 고기잡이는 한반도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도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는 신석기 시대의 집터가 주로 바닷가나 큰 강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고기잡이는 동물의 뼈나 돌로 만든 작살, 낚시, 그물 등을 사용하였는데, 이 도구들은 주로 바닷가의 조개더미에서 출토된다. 육지에서는 참나무 등 활렵수림 중심으로 식생이 바뀌면서 도토리, 밤 등의 열매가 풍부해지면서 사슴, 멧돼지 등의 중소형 동물들이 번성하게 되었다. 작고 빠른 동물들이 번성함에 따라 활과 화살이 발명되어 효율적인 수렵활동을 통해 채집,어로활동과 함께 신석기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따뜻함의 선물, 기후변화에 따른 먹거리의 풍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낮은 지대의 산줄기와 계곡은 서서히 물에 잠겨 바다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뚤러싸인 반도가 되어 이전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바다 자원의 활용이 더욱 쉬워졌다. 특히 남해안과 동해안은 한류와 난류의 영향으로 어족 자원이 풍부해지고, 서해안과 남해안은 큰 조수간만 차와 복잡한 해안선의 영향으로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다양한 조개류가 서식하게 되었다. 한편 삼림은 참나무속의 활엽수림 중심으로 바뀌어 도토리, 밤 등 나무 열매가 풍부해졌으며 사슴, 멧돼지 등의 중소형 동물들이 번성하게 되었다. 또한 식량을 찾아 이동하며 생활했던 구석기시대와는 달리 신석기인들은 풍부해진 바다 자원과 식물자원, 동물자원을 바탕으로 점차 한곳에 정착하여 생활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식량 자원을 단기간에 집중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작고 빠른 동물의 사냥
매머드 같은 대형 포유류가 사라진 신석기시대에는 이보다 작고 빠른 사슴, 멧돼지, 물소, 개 등이 번성하였는데 이 같은 작고 빠른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신석기인들은 활을 개발하였다. 지금까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확인된 육지동물은 사슴, 멧돼지, 물소, 사향노루, 호랑이 등 30여 종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사슴과 멧돼지를 가장 많이 잡았는데 다른 동물들에 비해 질이 좋을 뿐더러 가죽, 뼈, 뿔, 이빨 등은 도구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신석기시대에는 동물 사육의 흔적도 보이는데 개는 전기부터 돼지는 후기부터 사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송아지뼈, 여수 경도, 사슴뼈, 1. 부산 동삼동, 2. 머리뼈, 제천 점말동굴, 구석기시대

사냥은 산이나 들의 짐승을 잡아 이용하는 것으로 인류가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생업활동이다. 신석기시대에 가장 많이 사냥한 육상동물은 사슴과 돼지인데 특히 사슴은 거의 모든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 대개의 유적에서는 온전한 개체가 아닌 부위별로 출토되는데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 포획한 개체를 해체한 후 이용율이 높은 부위만을 반입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멧돼지뼈, 부산 동삼동

새뼈, 부산 동삼동

뗀 돌창, 1. 제주 고산리, 2. 제주 고산리,

뗀돌창, 3. 출처모름, 4. 종성 상삼봉, 간 돌창, 서울 암사동

뗀돌창, 5. 진주 상촌리

뗀 돌화살촉, 1. 제주 고산리, 2. 제주 고산리, 3. 제주 도련동, 4. 제주 오등동

신석기시대에는 환경이 변화하고 추운 곳에서 서식하는 매머드와 같은 대형 포유류가 사라지고 작고 빠른 동물들이 번성하였다. 특히 신석기인들이 주로 사냥했던 사슴이나 돼지, 물소 등은 움직임이 빨라 창을 이용하여 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창에 비해 몇배 내지 몃칩배의 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활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활의 등장으로 신석기인은 작고 빠른 동물들을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었으며 이후에 비거리와 타격력을 개선하며 발전해 나간다. <출처: 중앙박물관>

강과 바다에서의 고기잡이
자연환경의 변화 속에서 신석기인들이 제일 먼저 눈을 돌린 곳은 강과 바다였다. 특히 한반도는 바다와 접한 지역이 많아 이러한 양상이 더욱 두드러져 당시 사람들이 먹었던 동물의 뼈와 함께 바다 자원을 이용하는데 사용했던 다양한 도구들이 확인된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고기잡이는 기원전 6천년 무렵에 이루어졌으며 부산 동삼동 유적, 창녕 비봉리 유적 등에서 확인된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당시 식량으로 이용했던 각종 어류와 패류, 바다 포유류들의 뼈와 함께 낚시와 작살, 그물 추 등은 물론이고 배와 삿대도 발견되어 신석기시대에 어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자귀자루, 울진 죽변리,

돌끌, 여수 안도, 돌자귀, 1. 창녕비봉리, 2.울진 죽변리,

돌자귀, 창녕 비봉리

 간돌도끼. 1. 창녕비봉리, 2. 울진 죽변리,

배모양 토제품, 부산 동삼동 발굴

나무배와 삿대, 창녕 비봉리

나무배, 
신석기시대에는 기후가 따뜻해져 유수량이 증가하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먹을 수 있는 바다 자원이 매우 풍부해졌다. 신석기인들은 이를 얻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개발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배이다. 창녕 비봉리 유적의 신석기시대 조기층에서 출토된 배는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으로 강이나 얕은 바다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배는 수령 200년의 소나무를 단면 U자 모양으로 깎아 만든 것으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삿대, 
창녕 비봉리 2차 조사에서 출토된 나무 삿대는 1차 발굴에서 출토된 배와 함꼐 신석기인이 물고기를 잡거나 이동할 때 사용되었을 것이다. 삿대는 전체 길이가 178cm에 이르는 매우 날렵한 모습인데 몸통은 아주 가느다란 이등변삼각형 모양이고 그 한쪽 끝에 긴 손잡이를 만들었다. 좁고 긴 형태적 특징으로 보아 기본적으로는 강이나 얕은 바다의 바닥을 찍어서 배를 나아가게 하는 삿대이지만 노의 역할을 함께 하였을 거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조가비, 부산 동삼동

돌칼, 1.여수 안도, 2. 통영 욕지도, 빗창, 부산동삼동,

빗창은 전복, 굴과 같은 조개류를 채취하는데 사용한 도구이다. ‘빗’과 ‘창’으로 이루어진 말인데 제주도에서는 전복을 ‘빗’이라고 하니 빗창은 전복을 따는 창이라는 말이다. 빗창으로 채집하는 전복이나 굴 깥은 조개류는 수심 2~15m 사이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대개의 조개류는 야행성으로 낮에는 바위틈 등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먹이활동을 한다. 먹이는 미역이나 감태 등 해조류이다.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 출토된 이 빗창은 길이가 12~13cm 정도로 뼈로 만든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돌작살, 1. 부산동삼동, 2.여수 안도, 3. 서산 대죽리, 4. 부산 범방동, 5. 통영 욕지도

뼈작살, 1. 완도 여서도,

뼈작살, 2. 부산 동삼동, 3. 영월 공기2굴, 4. 덴마크, 이음낚시 축, 1. 동해 망상동, 2. 부산 동삼동, 3. 군산 노래섬, 4. 군산 오식도, 5. 완도 여서도

이음낚시 바늘, 1. 완도 여서도, 2. 부산 동삼동, 3. 군산 노래섬, 4. 군산 오식도, 낚시바늘, 영월 연당 쌍굴,

낚시바늘은 어로 두고 중에서 가장 많이 확인된 것으로 단식낚시바늘과 이음낚시 바늘 두 종류가 있다. 그 중 단식낚시 바늘은 형태에 따라 ‘J자형’과 ‘역T자형’으로 나누는데, 역T자형 낚시 바늘은 큰 돌추에 연결된 줄에 몇 개의 낚시 바늘을 매달아 물속에 늘어뜨려 한꺼번에 여러마리를 잡는 것이다. 이음낚시 바늘은 한반도에서 주로 사용된 독특한 형태로 축과 바늘을 따로 제작한 것이다. 이음낚시 바늘은 단식낚시 바늘에 비해 제작이 쉽고 더 무거운 무게를 견딜 수 있어 큰 물고기를 잡는데 유리하다. <출처: 중앙박물관>

낚시 추, 울진 죽변리, 역T자모양 낚시 바늘, 1.부산 동삼동, 2. 통영 욕지도

그물 추, 창녕 비봉리

그물추, 창녕 비봉리

그물추는 여러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각각 다른 크기와 형태로 출토되고 있어 당시에 여러 형태의 그물을 이용한 다양한 고기잡이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물 자체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물의 구조나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은 없지만, 부산 동삼동 조개무지에서 표면에 그물무늬가 찍힌 토기가 발견되어 그물의 모양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그물무늬 토기, 부산 동삼동

가락바퀴, 1. 인천 중산동, 2. 영월 연당 쌍굴, 3. 양양 오산리, 4. 강릉 하시동,

가락바퀴, 5. 원주 반곡동, 6. 영월 공기2굴, 7. 진안 갈용리, 8. 인천 시도, 9. 통영 연대도

작살 꽂힌 고래 척추뼈, 울산 황성동

고래뼈, 1. 부산 동삼동,

고래뼈, 2. 여수 안도

다랑어 척추뼈, 부산 동삼동

삼치 머리뼈, 부산 동삼동

바다거북 배딱지, 부산 동삼동

강치뼈, 부산 동삼동

돌고래뼈, 부산 동삼동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