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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고대상감] 상감기술의 기원, 확립, 확산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한국의 고대상감”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2015년 겨울에 개최하였다. 상감(象嵌)이란 금속 등의 기물에 홈을 파거나 무늬를 새겨 그 속에 다른 재질을 넣어 무늬를 만드는 기법을 말하며,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상감청자라는 독특한 기술을 발전시켰다. 금속공예에서 상감기법은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된 기술로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삼국시대 백제는 한.중.일 고대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낙랑에 이어 중국 선진문물을 한반도와 일본에 전파하는 주요 경로가 되었다. 백제의 상감기술은 오늘날 일본에 남아 있는 4세기에 만들어진 칠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제의 금속상감 기술은 한성백제기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웅진기와 사비기를 거치면서 백제, 신라, 일본에 영향을 미쳤다. 전시에서는 삼국시대 금속 상감기법이 남아 있는 여러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여 당시의 문화교류를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1. 기원, 상감 기술의 개념과 종류
상감(象嵌)이란 금속, 자기, 나무, 가죽 등으로 만든 기물에 홈을 파거나 무늬를 새기고 그 속에 다른 재질을 넣어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이다. 금속 상감이란 철.구리.은 등으로 만든 기물의 표면에 선이나 면으로 홈을 내고 여기에 다른 금속인 금.은.동 등을 박아 넣는 기법을 말하는데, 선상감(골상감), 면상감, 박상감(땜상감), 입사 등으로 나늰다. 상감의 용도는 장식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상감의 방식은 서로 다른 재질의 밀착력을 높이기 위해 정(釘) 등으로 찍어서 상처를 내고 파 넣거나 누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상감기법은 보통 정으로 바탕 금속에 홈을 만드는 과정과 상감될 금.은선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상감될 재질이 홈에서 빠지지 않게 마무리 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이 작업 중에서도 바탕 금속 정질이 가장 중요한 과정이며, 고도의 집중력과 기술력이 발현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상감될 재질을 만드는 방법은 보통 단조, 아말감, 꼬은선 기법으로 언급되며, 이렇게 제작된 금.은선 등 이 홈에서 빠지지 않게 마무리 하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출처: 공주박물관>

한국의 고대 상감 특별전.

우리나라에서 금속 상감기술이 등장하는 것은 기원 전후한 시기 낙랑을 통해서였다. 평양 출토로 전하는 ‘금은이 상감된 동관’ 등의 일산대나 곡봉형의 대구, 명문이 상감된 동기 등에는 모조 혹은 축조방식으로 선상감되거나 착금 방식으로 면상감 된 기물들이 출토되어 중원식 금속 상감 기법이 이른 시기부터 수용 되었음을 보여준다. 중원의 방식으로 제작된 금은상감허리띠고리는 표면에 은실과 금판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문양을 화려하게 표현했는데, 약간 두터운 금판을 부착하는 금착 기법을 구현했다. 이러한 면처리 기법은 중원에서 춘추전국시대부터 유행하던 기법으로 수촌리나 용원리대도에서 사용된 금판을 정으로 또아서 면을 압착하는 면상감 기법과는 다른 기원을 보여준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낙랑구역 정백동 등지에서 동물형 허리띠고리의 몸체를 장식하기 윟 금판을 부착하고 밀착력을 높이기 위해 정으로 찍어 내는 기술적 특징이 관찰되어 백제의 면상감 기법과의 유사성이 관찰된다. 이는 금은으로 상감하는 기법은 중원의 영향과 함께 북방계의 금소공예기법도 고조선과 낙랑을 거쳐 백제지역으로 전래되는 다원화된 기원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출처: 공주박물관>

허리띠고리, 출토지불명,

가늘고 긴 봉의 형태로 ‘곡봉형(曲棒形)’ 허리띠고리라고 불리며 중원 지역을 중심으로 한(漢)대에 가장 유행했던 양식이다. 전면을 도금 처리하고 여기에 색채 대비를 위하여 녹송석을 감입해 장식성을 높였다. 녹송석이나 보석류를 감입하는 기법은 중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활용되던 방식으로 초기 상감 자료에 많이 사용되던 방식 중 하나였다. <출처: 공주박물관>

상감허리띠고리, 전국시대, 출토지 불명

고리쪽이 좁고 뒤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비파모양의 허리띠고리다. 표면에는 은실과 금판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문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은실은 쪼음 기법으로 삽입하고, 약간 두터운 금판을 부착하는 금착(金錯)기법으로 시문했다. 이때 금판이 탈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를 정으로 꼭꼭 눌러 박아 면을 정리했다. 이러한 면처리 기법은 중국 중원에서 춘추시대부터 유행하던 기법으로 수촌리나 용원리 칼에 사용된 금판을 정으로 쪼아서 면을 압착하는 면상감 기법과는 차이가 있다. <출처: 공주박물관>

거울, 3세기, 평양 도제리 50호 전실묘,

평양의 도제리 50호분에서 출토된 철로 만든 거울이다. 중앙에 반구형상의 큰 뉴를 중심을 감꼭지 모양의 뉴좌가 있고, 전면에 기봉문(夔鳳紋)이, 연부에는 음각으로 내행화문이 표현되었다. 동물현 연적, 벼루 등과 함께 전실묘에서 출토되었다. 이 시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상감된 철경이 출토되는데 반해 도제리 출토 철경은 상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비교가 된다. <출처: 공주박물관>

2. 확립, 큰 칼에 아로 새기다.
우리나라 고대 금속 상감 기술의 확립 시기는 백제의 한성.웅진기이다. 백제의 상감자료는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 소장 칠지도를 비롯해 5~6세기에 걸쳐 약 1세기 정도의 한정적인 기간동안 백제권 전역에서 철제칼에 시문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성.웅진기의 백제 상감 기술은 금.은을 이용한 선상감이 주류를 이루나. 오산 수정동, 천안 화성리.용원리, 공주 수촌리 등 한성기로 편년되는 상감대도는 모두 환두부를 중심으로 선상감이 되어 있다. 반면, 웅진기 출토품은 칼의 도신(刀身)에 새겨지는 것이 특징이다. 신분적 위계가 높을 수록 상감 재료는 금을 사용하고 상감 문양에 있어서도 용문 또는 봉황문의 동물문이 시문되는 경향도 보인다. 백제상감 기술은 시기적 차이와 피장자의 신분적 위계에 따라 상감이 새겨진 위치, 상감 재료 및 문양의 종류가 결정된 것으로 보이며 그 밑바탕이 되는 상감 기술은 외래적인 것이지만 백제적인 기술로 확립되어 주변국인 대가야, 신라, 왜에 전파.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공주박물관>


칠지도, 모조품, 백제


칠지도에 상감기법을 사용하여 새겨진 글씨

일본 나라현 덴리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칼로 도신의 좌우에 각각 3개의 가지날을 엇갈리게 만든 특이한 형태이다. 단조로 만든 칼의 양면 중심부에 글을 새겨 넣을 수 있도록 가지날과 연결된 금선으로 구획하였다. 검의 양면에는 금상감으로 61자의 글자를 써 놓았는데, 일부가 박락되었으나 새겨진 명문 내용 중에 칠지도라는 내용이 있다. 칼의 제작연대를 비롯해 명문의 판독과 해석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태화(太和)가 중국 동진의 연호이며, 서력 369년(근초고왕 24)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태화 4년에 백제 왕세자가 왜왕을 위하여 칠지도를 만들어 하사한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출처: 공주박물관>

큰상감큰칼편, 백제, 공주 송산리 29호분

송산리 29호분은 1933년에 조사되었다. 같은 해에 발굴된 송산리 6호분 유람도로에 속하는 작은 길을 내는 과정에서 노출되었으며, 발굴 전에 가루베 지온과 현지의 유지들이 유물을 사사로이 가져가 버렸다. 11월 15일에 이르러 아리미쯔 교치치가 현지에 도착하여 수습 조사를 시작해 같은 달 24일에 종료하였다. 조사 결과 현실 평면형태는 방형으로 남쪽에 연도를 갖춘 석실이며, 바닥과 관대에는 벽돌이 사용되었다. 도굴로 인해 유물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보고서에는 장신구류, 금제 꽃모양장식, 금동제 못, 철기편 등이 제시되어 있다. 보고서에 실린 몇 토막의 철기편은 대도의 도선이며, 컴퓨터 단층촬영을 통해 용, 별, 화염 속 인동초, 구름 등의 문양이 확인되었다. 문양은 금사로 상감한 것이며 고구려 고분벽화의 도상처럼 회화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칼의 도신 편에 각종 문양을 금사로 선상감하였다. 도신 편의 잔존 길이가 29 cm인 것을 고려할 때, 도신부 전.후면에 전체적으로 금상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상감은 용문, 성좌문, 초화문 등의 화려한 연속 문양을 이루고 있다. 선상감의 재료가 되는 금선의 재질은 97.2 %의 순도 높은 금재료를 사용하였고, 그 폭은 최대 0.4mm 내외이다. 왕의 일족으로 여겨지는 무덤에서 출토된 점으로 볼 때, 이러한 상감 재료와 문양의 특수성은 피장자의 신분적 위계가 높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공주박물관>

용봉문고리자루칼, 백제, 공주 무령왕릉

손잡이와 고리부분 장식.

3. 확산, 상감 문양
삼국시대의 상감 유물은 고리자루칼의 환두 부분에 중심적으로 나타났다. 환두에 표현된 상감 문양 및 위치는 각 국마다 유사점과 차이점이 나타난다. 삼국시대 상감문양 중 명문이 보이는 유물로는 칠지도를 비롯한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전 창녕 출토 명문이 있는 고리자루칼, 창녕 교동의 원두대도를 들 수 있다. 삼국시대 상감 문양 양식은 단순한 당초가 반복되는 형태로 제작되다가 귀갑문이나 어룡문 등의 복잡한 문양으로 변해간다. 초기에는 단조로운 기법만을 사용하였으나 점차 기술력이 발달하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는 문양을 표현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감에 이용된 무늬는 선, 파상, 봉황, 용, 연잎, 귀갑, 별 등 여러가지 모습이다. <출처: 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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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감으로 장식한 고리, 

칼몸에 새겨진 은상감 장식

백제의 상감기술
백제 상감은 금과 은을 이용한 축조상감이나 모조상감의 선상감과 금판을 압착하는 면상감이 동시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요소의 적용은 시기적 차이와 피장자의 신분적 위계에 따라 상감이 새겨진 위치, 상감 재료 및 문양의 종류가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상감 자료는 위세품적인 성격이 반영되어 있고, 상감기술은 비록 외래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백제적인 기술로 확립되어 주변국인 대가야.왜, 신라에 확산된 것으로 파악된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은상감 고리자루칼, 배제, 천안 용원리, 공주 수촌리,

은상감으로 장식한 고리

은상감으로 장식한 고리와 칼집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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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장식부분.

백제 상감 기술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금판압착기법으로 불리는 면상감이 있다. 이는 철 또는 동으로 된 바탕금속에 금박보다 두꺼운 금판을 덧댄 후 정을 이용하여 작은 구멍을 무수히 박아넣는 방식이다. 공주 수촌리 1호 출토품 1점, 천안 용원리 1호.12호 출토품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법은 낙랑을 통해서 처음으로 유입되었다. 이 기술은 금판을 바탕금속에 끼워 장식한다는의미로 볼 때 면상감의 시원적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색채대비를 통해 주문양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부수적인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 공주박물관>

가야의 상감기술
가야의 상감 유물은 5~6세기에 걸친 한정된 기간동안 가야의 중심지 또는 거점지역인 고령, 합천, 남원, 함안, 창원에서 출토되었다. 가야의 상감 기술은 백제의 영향으로 도입, 발전되었으며 선상감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이와 함꼐 면상감 기법도 일부 활용되었다. 선상감으로 새긴 무늬는 점과 선 이외에 당초문, 화문, 귀갑문, 파상문, 거치문 등이 있다. <출처: 공주박물관>

금상감고리자루칼, 가야, 함안 마갑총, 규두대도, 가야, 창녕 명리 III 지구 1호, 금상감칼, 가야

상감으로 장식한 손잡이부분

금상감고리자루칼, 가야, 함안 마갑총, 상원하방형이며 환두 내 도상이 없는 소환두대도이다. 환의 앞뒷면에 금상감한 거치문을 새겨 넣었고 앞 뒷면에 배치한 거치문의 바깥쪽으로 은상감한 점문을 배치하였다. 칼등에도 59.9cm 가량을 금상감한 거치문으로 장식하였다. 손잡이는 연호문을 타출한 도금 은판으로 감싸고 각목문을 넣은 고리를 감아 고정하였다. <출처: 공주박물관>

규두대도, 가야, 창녕 명리 III 지구 1호, 규두대도로 하단부분이 상단보다 폭이 1cm 정도 작고 규두부분이 타원형에 가깝다. 병두금구와 초구금구가 확인되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병두금구에 상감된 문양형태는 3단으로 나눌 수 있는데, 1단과 2단은 13개의 귀갑문과 귀갑문 내에 원문,화문,동물문이, 3단에는 7개의 마름모 형태가 상감되어 있다. 마름모 형태 안에는 꽃잎과 4개의 마름모 형태가 상감되어 있다. 마름모 형태 안에는 꽃잎과 4개의 물방울 모양을 베풀었다. 초구금구는 상하단 2단으로 12개의 귀갑문 안에 화문과 파문을 상감하였다. 화문은 길이 1.2cm의 꽃잎 5~6개가 지름 약 0.3cm의 원형과 연결되어 있다. 1단과 2단 사이에는 2개씩 물방울 모양의 은선을 끼워넣었다. <출처: 공주박물관>

봉황문고리자루칼, 가야, 합천 옥전고분, 금은상감고리자루칼, 가야, 남원 월산리고분

은.동상감고리자루칼, 가야, 함안, 동상감고리자루칼, 가야, 창원 도계동 6호, 은상감고리자루칼, 가야, 김해 죽곡리 53호,

 원두대도, 가야, 은상감칼, 가야, 원두대도, 가야, 창녕 교통 11호

원두대도, 가야, 창녕 교통 11호
창녕 교동고분은 1918년에 발굴되었으며, 이때 11호분에서 상감철도가 출토되었다. 근래 이에 대한 보존처리과정에서 X선 촬영을 통해 칼등에서 6~7자의 명문이 판독되었다. 이 명문은 처음 “乙亥年ㅁ扦率”로 판독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명문과 칼 제작방식을 근거로 백제 계통의 칼로 단정되었다. 그러나 상감 위에 덮힌 녹을 제거하고 새로이 판독한 결고, 명문의 실상은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다름이 드러났다. 신판독에 따르면 명문은 도합 7자로 확인되었으나, 판독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출처: 공주박물관>

이엽문고리자루칼, 가야, 합천 옥전 95호, 봉황문고리자루칼, 가야, 합전 옥전 35호,은상감고리자루칼, 가야, 합천 옥전고분군,

고리장식.

고리장식.

은상감고리자루칼, 가야, 합천 옥전고분군, 환두 내에는 장식이 없으나 환 표면에 두마리 용이 머리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두고 새겨져 있다. 손잡이에는 짧은 빗금이 새겨진 금사를 나선형으로 감았고, 그 양쪽에 용문이 그려진 병두금구(柄頭金具)와 초구금구(鞘口金具)가 감겨져 이다. 병두금구에는 두마리 용이 x자형으로 교차되어 있으며, 초구금구는 박락되어 확인이 어렵지만 병두금구와 같은 용문이 장식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구금구 밑에 발견된 병연금구(柄緣金具)에 초염문으로 생각되는 문양이 은상감되어 있다. 떨어져 나간 초미금구(鞘尾金具)는 심하게 파손되었지만, 한 쪽에 와문이 은ㅅ상감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공주박물관>

봉황문고리자루칼, 가야, 합전 옥전 35호, 환과 봉두(鳳頭)가 일체형으로 제작된 봉황문고리자루칼로 눈과 같은 봉두의 여러 부분에 은상감으로 형태를 묘사하였다. 환 표면에는 용으로 추정되는 문양이 은상감되어 있다. 병두금구는 얇은 금동판 위에 옻칠을 하고 은사를 감입하여 용문을 새겨 넣었고 양쪽 가장자리에 문양대를 만들고 파상문을 시문하였다. 병연금구 또한 얇은 은판을 감아 제작하였는데 초구금구 속에 끼어져 이어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초구금구는 병두금구와 같이 금동판 위에 봉황문을 은상감했다. <출처: 공주박물관>

화살통 꾸미개, 가야, 합천 옥전.

원형의 철대를 구부려 형태를 만들고 걸림쇠가 달린 횡축을 사이에 끼워 완성한 화살통 꾸미개로 고리와 침, 침축에 선문으로 은상감되어 있다.

신라의 상감기술
신라는 백제나 가양에 비해 상감 유물의 출토 빈도가 현저히 떨어져, 금공위세품 제작에 상감기술을 선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역시 상감이 확인되는 대상이 대부분 장식대도이며 경주의 호우총, 천마총 출토품을 비롯하여 지방인 상주, 부산, 의성 등에서 상감고리자루칼이 출토되었다. 대도 이외에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말안장과 말띠드리개에서도 선상감이 확인된다. <출처: 공주박물관>

금상감큰칼편, 신라, 경주 천마총, 삼엽문고리자루칼, 신라, 부산 반여동, 금상감고리자루칼, 신라,의성 대리, 금상감큰칼편, 신라, 경주 천마총, 용문고리자루칼, 신라. 경주 호우총, 용봉문고리자루칼, 신라

용문고리자루칼, 신라. 경주 호우총, 환은 대부분 멸실되었으며 환 내붕 용두가 잘 남아 있다. 용두는 청동으로 부조하고 도금하였는데, 별도로 제작하여 환 안쪽에 부착하였다. 금동판으로 제작된 초구금구에 용문이 부착되어 있고, 도신의 단면에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상감하였다. 용은 금사로, 물고기는 은사로 상감한 것이 특징이다. <출처: 공주박물관>

천마총 출토 큰갈편에서 볼 수 있는 상감장식

호우총 출토 용문장식칼 중 칼손잡이 끝 용모양 장식

용봉문고리자루칼 칼몸의 상감장식

용봉문고리자루칼 손잡이.

칼손잡이 고리장식

말띠 드리개, 신라, 경주 계림로, 띠고리, 백제, 완주 상운리 나지구

말안장, 신라, 경주계림로

말안장, 신라, 경주 계림로

말안장, 신라, 경주 계림로

일본의 상감
일본에서는 주로 철제 칼이나 마구에 문양과 명문이 시문된다. 4세기 칠도도 등장 이후 일본열도에서는 5세기부터 명문 상감칼이 유행하게 되고, 화문, C자문, 파상문과 같이 작은 원호를 기본으로 하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많이 등장한다. 5세기에서 6세기에는 백제와 가야의 영향을 받은 상감 유물이 출토되며, 6세기 중엽 용문이 상감되는 예가 증가하게 된다. 이 외에도 가야의 영향을 받은 귀갑계 용봉문고리자루칼 등의 도카이,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50여 점이 확인되는 등 상감 제품이 활발하게 제작되며 지역적으로 집중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상감 유물은 6세기에서 7세기에 폭발적인 증가 현상을 보인 후 7세기 이후가 되면 다시 명문 상감도가 유행하지만 점차 출토 수량은 서서히 감소된다. <출처: 공주박물관>

일본의 고대 상감

일본의 고대상감

<출처>
1. 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