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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벼락도끼와 돌도끼]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

1. 벼락도끼2.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3. 선사시대 생활필수품

조선시대 벼락도끼로 불리면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겨졌던 선사시대 유물들은 20세기 서양의 고고학이 들어오면서 사람이 만든 도구였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벼락도끼로 불렸던 구석기시대 뗀석기, 신석기시대 돌로 만든 도구들, 청동기시대에 사용된 간석기들이 고고학적인 조사 등을 통해 수집되기 시작되었으며, 조선시대 왕실에 벼락도끼로 진상되었던 유물 또한 고고학적 측면에서 주목받았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선사시대 유적에대한 조사는 총독부에서 주관하여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남겨 놓고 있다.

벼락도끼에서 돌도끼로,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
20세기 근대 학문 체계를 갖춘 고고학이 서양에서 들어오면서 벼락도끼를 천지조화의 산물이나 자연물이 아닌 사람이 만든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찍개, 격지 같은 구석기시대 뗀석기와 돌도끼, 돌끌, 홈자귀 등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간석기를 수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돌도끼는 대부분 고고학 조사에서 수집된 것입니다. 이외에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발견품, 구입품, 기증품 등도 있습니다.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중 간돌검, 돌끌, 홈자귀 등의 간석기는 조선시대의 벼락도끼에 대한 기사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1970년대에는 발견품의 신고가 증가했는데, 이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돌도끼를 옛사람들이 만든 도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별도끼,星型石斧, 1. 청동기시대, 2.평안남도 대둥군 미림리, 청동기시대, 3. 1923년구입, 청동기시대

달도끼, 環形石斧, 1. 경기도, 청동기시대, 2,3,4.청동기시대

일제강점기 선사시대의 조사
1880년대 개항 직후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의 유적과 유물에 대해 소개한 단편적인 기록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조사는 일제강점기 고고학 자료를 독점한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하였다. 이 가운데 당시에는 ‘석기시대’라고 불렀던 선사시대에 대한 조사는 주로 조선총독부 촉탁이었던 도리이 류조(1870~1953년)가 담당하였다. 한반도 전체를 망라하여 지표채집과 간단한 시굴조사를 시행하며 유물 채집에 주력하였다.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에 고적조사과가 설치되었으며, 이때 후지타 료사쿠(1892~1960년)가 고적조사위원으로 부임하여 웅기 송평동 조기무지 등 선사시대 유적을 조사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돌도끼, 石斧, 1,2. 함경북도 나선시 웅기패총, 청동기시대

홈자귀, 有溝石斧, 1.함경북도 종성군 동건산, 청동기시대, 2. 황애도 안악군 동산동, 청동기시대, 3. 경주 외동읍, 청동기시대, 4. 구입품, 청동기시대

돌끌, 石鑿, 1. 경주 신당리, 신석기시대, 2. 통천 발산, 청동기시대,

돌끌, 石鑿, 3. 경주, 청동기시대, 4,5. 구입품,청동기시대,

돌도끼, 石斧, 1. 경주, 청동기시대, 2. 경남, 청동기시대,

돌도끼, 石斧, 3. 입수, 청동기시대, 4.울산 황방산, 청동기시대, 5. 평북 강계군 등공동, 청동기시대,

돌도끼, 石斧, 6. 함북 경흥군 서수리, 청동기시대, 7. 총천군 발산, 청동기시대,

돌도끼, 石斧, 8. 진해 갑산, 청동기시대, 9. 경주, 청동기시대,

돌도끼, 石斧, 10. 함북 종성군 동건산,

돌도끼, 石斧, 11. 경주 외동읍, 12. 구입품, 청동기시대

20세기 초 수집한 돌도끼

홈자귀, 有溝石斧, 경주, 청동기시대

돌도끼, 石斧, 1.함북 회령시 봉의면, 청동기시대, 2. 함북 회령시, 청동기시대, 3. 1919년 구입, 청동기시대,

돌도끼, 石斧, 4. 영주 풍기읍, 청동기시대, 5. 남영주 연평리, 청동기시대, 6, 1916년 입수, 청동기시대


돌끌, 石鑿, 함북 회령시 춘동, 청동기시대

요코야마 자료
일본인 요코야마 쇼자부로(1897~1959년)가 1930년대 경기도 문산과 파주 일대에서 수집한 석기이다. 경성제국대학에서 윤리학을 강의했던 요코야마는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고고유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을축년 대홍수가 있었던 1925년 서울 암사리 주변에서 석기와 토기 조각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1944년까지 서울.경기지역에서 약 5천여 점의 선사시대 유물을 모았다. 석기의 경우 완성품은 물론 제작 과정을 알 수 있는 미완성품까지도 채집하고, 문산 일대에서 구석기를 확인하였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자료들은 광복 직후 국립박물관에서 인수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찍개, 兩面器, 1. 파주 문산읍, 구석기시대, 2. 서울 응암동, 구석기시대, 대형긁개, 搔器, 3. 파주 문산읍, 구석기시대

돌도끼, 石斧, 1. 남양주 이패동.삼패동, 청동기시대, 2. 서울 망우동, 청동기시대

홈자귀, 有溝石斧, 3. 서울 망우동, 청동기시대, 4. 파주 독서동, 청동기시대

돌끌, 石鑿, 5. 함북 청진시, 청동기시대, 6. 서울 망우동, 청동기시대, 7. 서울 망우동, 청동기시대

돌도끼, 石斧, 구리 인창동, 청동기시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