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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국실] 중국의 불비상과 불상

1. 예기(禮器)2. 명기와 도용, 3. 신선사상과 도교4. 불비상과 불상5. 도자기6. 중국회화

중국의 불교는 전한(前漢) 때 서역과의 교통로가 열리면서 전래되었다. 중국의 불교는 후한 이후 유목민들이 중원으로 진출한 남북조시대에 지배층의 후원을 받아 크게 번창하였다. 남북조시대에는 서역의 영향을 받아 많은 운강석불이나 용문석불같은 석굴사원들이 세워졌으며, 많은 불상들이 조성되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북조(北朝)의 국가적.주술적.실천적인 성격과는 달리 남조에서는 현학(玄學)적인 성향의 교리중심을 불교가 성행했으며, 인도로부터 참선 중심의 선종(禪宗)이 전래되었다.

수.당시대에는 불교가 통일국가에 걸맞게 체계화.조직화가 진행되었으며 천태종, 화엄종과 같은 다양한 종파가 성립되었다. 또한 인도로부터 밀교가 전해져 크게 유성하였다. 송대 이후에는 중국 불교가 크게 쇠퇴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며, 몽골의 원(元)이나 만주족이 세운 청(淸)에서는 티벳불교라 할 수 있는 라마교가 지배층에 큰 영향을 주었다. 중국불교의 변화는 한반도나 일본에도 큰 영향을 주어 그 모습들이 많이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중국 남북조~당대에 조성된 불비상.

불비상은 비석형태에 돋을새김으로 불상 등이 새겨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 초 충청도지방에서 불비상이 만들어 졌다.

중국인의 고대종교 – 불교
중국의 불교는 동한 명제(58~75년) 때 인도에서 서역을 통하여 처음 전래되었다. 이후 북방의 유목민족이 남하하여 중원지역에 왕조를 세웠던 남북조시대 지배층의 후원으로 많은 사찰이 건립되고 불교조각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당대(唐代)의 불교 역시 지배층의 후원을 받으며 더욱 발전하여 대규모의 석굴건추과 불상제작이 이루어졌다. 또한 교통의 발달로 인도의 굽타 양식의 사실적인 균형미의 불상이 등장하였고, 불경내용을 그린 경변고사화(經變古事畵)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벽화는 석굴불상에도 영향을 미쳐 불상의 상호는 넓고 둥근 중국인의 얼굴로 표현되었다. 당대 이후 불교신앙은 민간에 널리 정착되었다. 특히 송대 이후에는 석굴보다 사찰이 많이 건립되었고, 청대의 사찰에는 도교의 나한상과 시녀상이 나타나면서 불교가 더욱 세속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불비상, 佛碑像, 북위 영안 2년(529), 돌.

앞쪽에 삼존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아래쪽에 발원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00여명 넘는 발원자가 참여했다고 한다.

불비상에 돋을새김으로 새져진 삼존불상.

위쪽에 서로 얽혀 있는 용으로 장식했다.


옆면에 새겨진 불상.


뒷면

앞면과 마찬가지로 위쪽에는 삼존불상이 새겨져 있고, 중단에 공양자상이 새겨져 있다.

북위 영안 2년(529)에 조성된 불비상이다. 가장 위에는 서로 얽혀있는 용 4마리로 장식했고 상부에는 삼존불과 발원자의 관직이, 중단에는 공양자상, 그리고 하단에는 함께 발원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앞면 중단에는 공양자상 사이에 명문이 있는데, 영안 2년 국주(國主)와 칠세부모(七世父母)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는 마을의 신앙공동체인 읍의(邑義)의 구성원인 개씨(開氏)와 양씨(梁氏), 왕씨(王氏) 등을 포함하여 100명이 넘는 발원자가 함께 조성한 불비상이며 10여명의 주요 공양자는 말을 타거나 일산(日傘)을 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불비상, 佛碑像, 북제~수, 돌.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나한, 보살, 신장을 비롯하여 불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다앙한 군상들이 묘사되어 있다. 하단에는 향로와 사자상이 새겨져 있다.


뒷면.

2단의 감실 중 윗단 감실에는 반가사유상이, 아랫단 감실에는 오존불이 새겨져 있다. 상단에는 다양한 천인상과 보탑이 새겨 있다.


옆쪽에도 감실을 두고 불상을 새겨놓고 있다.

다양한 군상과 세부가 묘사된 북제의 불비상이다. 앞면에는 앉아 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나한과 보살, 신장이 주위에 둘러 서 있고, 상단에는 꽃줄을 든 천인(天人)과 보탑(寶塔)이, 불상 아래에는 향로와 사자,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2단의 감실에 오존불과 반가사유상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상들로 가득 채워진 구도와 복잡한 세부표현이 번잡스러우나 인물의 양감있는 묘사와 보살의 허리를 비튼 삼곡(三曲)자세의 표현이 눈에 띈다. 앞면 하단의 명문에는 재주(齋主) 장대보(張大寶) 등 읍의(邑義) 주재자 명단과 공양주(供養主) 장중화 등이 “부모님을 위하여 한 마음으로 부처를 모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불비상, 佛碑像, 북제~수, 돌.

높이 162cm의 비교적 큰 불비상이다. 상단과 중단에 오존불과 역사를 새겨놓고 있으며, 위쪽에는 보탑과 천인상을 새겨놓고 있다.


뒷면

윗쪽 감실에는 오존불이 있으며, 아래쪽 4개의 감실에는 삼존불을, 그 아래에는향로와 사자, 공양자상을 새겨놓고 있다.


옆쪽에도 감실에 여래좌상을 새겨놓고 있다.

높이가 162cm에 달하는 비교적 큰 북제의 불비상이다. 앞면에는 역사(力士)가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차게 묘사되었고, 불감 주변에는 다양한 세부가 다듬어진 솜씨로 조각되었다. 뒷면에는 경직된 자세의 불상과 고졸하게 표현된 사자, 그리고 인물이 표현되었다. 앞면에는 상단과 중단에 오존불과 역사가 있고 가장 위에는 보탑과 천인이 조각되었다. 뒷면에는 상단에 용장식과 오존불을, 중단에는 4개의 감실에 각각 삼존불을, 하단에는 향로와 사자, 인물상이 있고 가장 아래에는 불비상에 조각된 각각의 상을 공양한 사람의 이름을 새겼다. <출처: 중앙박물관>


불비상, 佛碑像, 당 현경 5년(660), 돌.

당대(唐)에 조성된 불비상이다. 상단에는 의에 앉아 있는 여래상과 양쪽에 협시보실이 있는 삼존불상을 중심으로 천인, 보탑 등이 있으며 중단에는 나무를 새겼다.


뒷면에는 보리수 아래에 앉아 있는 여래의 모습을 새겨놓고 있다.

당 현경 5년(660)에 고만해의 일가족이 발원한 불비상이다. 육감적이면서 사실적으로 표현한 불, 보살상이 전형적인 7세기 당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구성을 보면, 앞면에는 상단에 의좌(倚坐)의 불상과 협시보살이 있고 그 위로는 보탑과 천인이 있으며, 중단에는 나무를 새겼다. 명문은 앞면의 하단과 중단의 감실 사이에 새겨져 있는데 고만해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형수와 처, 조카, 아들, 딸 등 일가친천이 힘을 모아 불비상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옆쪽에 새겨진 불상.

보살, 菩薩, 송, 나무에 채색.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목조 보살상이다.


뒷편에서 본 모습.

등신대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보살상으로, 여성적인 얼굴과 가는 몸, 그리고 사실적인 세부 묘사에서 송대 보살상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자세는 명상에 잠긴 듯이 보인다.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몸을 여러 번 감싸는 천의, 화려한 보관과 장신구의 세부 묘사가 풍부하다. 표면에는 흰색, 붉은색, 녹색, 청색 등의 채색이 남아 있는데 이는 후대 보수 시 더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증장천왕, 增長天王, 송말원초 13~14세기

이 신상은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사방을 지키는 네 명의 천왕 중 하나인 증장천을 표현한 것이다. 현재 지물이 없어졌지만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쪽 손바닥으로 받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남방의 유리 지방을 지키던 증장천왕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검은 유리로 제작된 동공으로 인하여 인상이 매우 강렬해 보인다. 정교한 귀면 문양이 허리에 장식된 갑옷을 입고 어깨부터 드리워진 천의(天衣)가 팔을 휘감고 있어 전체적으로 위풍당당하고 매우 힘이 넘쳐 보인다. 머리카락은 푸른색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봉황형상의 보관 뒤로 끌어당겨져 높게 꼬여진 상투를 틀었다. 전체적으로 붉은색, 흑색, 청색, 녹색 등의 안료와 도금의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보살, 金銅菩薩立像, 원말명초(13~14세기)


부처, 金銅佛坐像, 명


부처, 鐵造佛座像, 명

명청시대의 도식화된 불상으로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싼 변형된 선정인을 하고 있다. 머리도 도식적인 소용돌이형과 직선형 머리카락이 번갈아 표현되어 있다. 불상 뒷면에 “三十九拵/王妙淸”이란 명문이 있어 왕묘청이 시주한 여러 불상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금동삼면육비상, 金銅三面六臂像, 청.

아수리(阿修羅)는 팔부중의 하나로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귀신이다. 악귀의 세계에서 싸우기를 좋아한다.

사자(숫사자), 명, 대리석

옆에서 본 모습(숫사자)

사자(암사자), 명, 대리석

옆에서 본 모습.

명대(明)의 암수 한 쌍의 사자 조각상이다. 수사자가 발로 누르고 있는 공은 권력을 상징하고 암사자의 새끼 사자는 계승자를 의미하여 자손이 흥성해져서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사자상은 궁궐의 아문이나 대문에 배치되다가 송대(宋) 이후에는 벽사(僻邪)와 길상(吉祥)의 의미로 개인의 주택이나 공원 등에도 세워지게 되었다. 명.청대에 이르러 이와 같이 암수 한 쌍의 사자상을 문 앞에 세우는 형식이 정착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