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중국실] 예기(禮器), 권력의 상징

1. 예기(禮器)2. 명기와 도용, 3. 신선사상과 도교4. 불비상과 불상5. 도자기6. 중국회화

고대 중국에서 지배층이 신분을 나타내거나 종묘와 궁궐 등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예기(禮器)라 한다. 벽(壁), 홀(珪) 등 옥으로 만든 예기는 주로 나타내고 장신구 역할을 했다. 청동으로 만든 예기로는 곡식 등을 담는 그릇, 술잔, 솥 등이 있으며 신분에 따라 사용이 제한되었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종묘와 왕실 의식의 유물인 예기는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고대국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묘제례 등의 제사에 그 흔적들을 볼 수 있으며, 예기로 만들어진 청동솥(鼎)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들의 전국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권력의 상징 – 예기(禮器)
예기란 중국 고대 귀족들이 종묘와 궁실 등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도구이다. 사용자의 지위, 신분, 권력에 따라 엄격한 제한을 두어 사용되었으며 옥, 청동, 목재 등으로 만들어졌다. 옥예기는 원시사회말기 씨족사회의 출현 당시부터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에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정신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주술적인 의미를 띠는 벽(壁),종(琮), 규(珪),장(璋) 등을 제작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옥예기는 장신구 역할도 겸하였다. 청동예기는 하대(夏代) 고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출현하였으며 상주시대 이후 정치권력의 상징물이 되었다. 종류는 취기(炊器), 식기(食器), 주기(酒器), 수기(水器), 악기(樂器)가 있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신분 계급에 따라 청동기의 매장 수량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허난 성(河南省), 산시 성(山西省) 등지의 왕, 제후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天子用九鼎八簋, 諸侯用七鼎六簋, 卿大夫用五鼎四簋, 士用三鼎二簋,”
(천자는 9개의 정과 8개릐 궤를, 제후는 7개의 정과 6개의 궤를, 경대부는 5개의 정과 4개의 궤를, 사는 3개의 정과 2개의 궤를 사용한다.)
- <禮記> “禮器篇” -

OLYMPUS DIGITAL CAMERA곡실을 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1, 서주,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는 제기 중 하나로 곡식을 담는 그릇인 궤(簋, Gui)이다. 궤는 지금도 종묘제례 등에 사용하는 제기이다.

정(鼎)과 함께 신분을 드러내는 중요한 예기로 곡식을 담는 식기(食器)이다. 신분에 따라 소유할 수 있는 수량을 엄격히 달리했는데, 짝수의 궤(簋)와 홀수의 정(鼎)을 짝을 이뤄 천자(天子)는 9정 8궤, 제후(諸侯)는 7정 6궤, 대부(大夫)는 5정 4궤, 원사(元士)는 3정 2궤를 사요하였다고 전한다. 이 궤의 안쪽 바닥과 뚜껑의 안쪽에는 동일한 내용의 명문(銘文) ‘卂伯作旅簋(신백이 만든 제사용 궤)’가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중국의 고대 청동기는 하(夏)나라때부터 만들기었으며, 지금도 그 광택이 수려하여 당시의 수준 높았던 주조 기술을 알 수 있다. 상(商).주(周)대에는 예기로써 신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사용되었으며, 진한대 이후 점점 쇄퇴하였다. 그릇 안쪽에 새겨진 금문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제작자의 이름등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청동예기(靑銅禮器)
중국 고대의 청동기는 세계 다른 지역의 청동기와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예기, 즉 의례용 용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으로, 이는 조상 숭배를 위한 제사에 바치는 음식이나 술을 담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예기는 주로 합범(合笵), 즉 여러 개의 틀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장식무늬로는 후대인들이 ‘도철(饕餮)’이라고 명명한 무늬가 특징으로, 이는 상상 속 괴수를 표현한 것이다. 더불어 중국 청동기는 여려 개의 기형이 세트를 이루어 사용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고대 청동예기 주조법. 합범(合笵)이라 부르며 여러 개의 틀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곡실을 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서주

OLYMPUS DIGITAL CAMERA곡식담는 그릇, 靑銅 簋 Gui vessel, 서주 초기 기원전 11세기 ~10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서주. 예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기를 삼는 솥인 발인 3개 달신 정(鼎, Ding)이다.

중국 고대 청동예기 중 가장 중요한 기물로 육류를 삶거나 끓이는 데 사용한다. 주대에는 천자(天子)가 12개 또는 9개의 정을, 제후는 7정, 대부는 5정, 원사는 3정 또는 1정을 사용했단느 기록이 전한다. 몸체 내벽에 ‘팽이 부친 일신을 위해 보물을 만들어 바치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네발 달린 솥, 靑銅 方鼎 Ding vessel, 상말기 기원전 12세기 ~11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서주, 발이  4개 달린 4각형의 솥인 방정(方鼎)이다. 육류를 끓이는 용기로 상대(商)에는 원형의 정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방형의 정은 이형으로 보통은 대형으로 제작되었다. 다리에 매매무늬가 있고 그릇 안쪽에 명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기 삶는 솥, 靑銅 鼎 Ding vessel, 2. 동주. 동주시대에 들어서면서 동물 발굽모양으로 다리 형태가 바뀌면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제기 모습으로 바뀐다.

정(鼎)은 중국 고대의 제사와 연회에서 육류를 담아 끓이는 데 사용한 청동기로, 소유자의 귄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물이었다. 사각진 몸체에 4개의 다리를 가진 방정(方鼎)은 상대 말기에서 서주 초기까지 유행하였다. 동주 시대가 되면 오른쪽의 예처럼 기둥 모양의 다리가 동물의 발굽 모양으로 바뀌고 손잡이가 옆에 붙으며 뚜껑은 3개의 고리 모양 손잡이로 장식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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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觚 Gu vessel, 상말기 (기원전 12~11세기). 상대부터 주대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다. 술잔으로 중원지역 제후 이상의 무덤에서 출토된다. 복부에 도철무늬와 매미무늬가 있고 바닥 안쪽에 명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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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觚 Gu vessel, 상 중기 기원전 14~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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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靑銅 觚 Gu vessel, 상(商). 술을 따르는 나팔모양의 잔인 고(觚)이다.

작(爵)과 함께 술잔으로 사용되었던 나팔모양의 청동기이다. 고(觚)는 오래된 예기(禮器) 중 하나로 어리터우(二里頭) 문화에서 도제(陶製)가 사용되었고, 상대에 청동제의 고가 유행하였다. 상부에는 파초문이, 중간과 하부에는 도철무늬로 장식되었으며 바닥 안쪽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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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靑銅 爵, Jue vessel, 상말~서주. 술을 담아 마시던 술잔인 작(爵)이다. 신안해저유물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실생활에도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을 담아 마시던 술잔이다. 하대(夏)에 출현하여 서주대(西周)까지 제작되었다. 상 말기에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데, 고(觚)와 짝을 이뤄 신분이 높을수록 많이 매장되었다. 술을 마시는 긴 주둥이와 반대편의 꼬리, 그 사이에 위치한 한 쌍의 작은 기둥(柱), 손잡이와 세 개의 다리가 있으며 기둥에는 ‘佰’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주전자, 靑童 盉 He vessel, 서주. 주전자 용도의 예기인 화(盉, He)이다.

주전자 모양의 청동예기이다. 액체를 따르는 긴 주둥이인 귀때(流)와 손잡이가 있고 3~4개의 다리가 있는데 후대로 갈수록 몸체가 얕은 형태로 변화한다. 용도는 술의 농담을 조절하거나 대야와 같은 반(盤)과 짝을 이뤄 손을 씻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 안쪽에는 ‘作祖辛(조신(15대 商王)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술그릇, 靑銅 瓿 Pou vessel, 상(商). 술을 담는 항아리 모양의 그릇인 부(瓿)이다. 하대 이후에는 오늘날 술독처럼 몸체가 깊은 뢰(罍)가 주로 사용되었다.

입이 크고 배가 부른 항아리에 굽이 달린 형태의 술 담는 예기이다. 상대(商) 초기에 출현하여 상대 말기에 유행하였는데, 부(瓿)보다 몸체가 깊은 뢰(罍)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어깨에는 뿔달린 동물머리를 얹고 배부분에는 번개무늬(雷紋)와 볼록한 원형무늬를 주조로 표현했는데 이는 상대의 전형적인 장식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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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는 항아리, 靑銅 壺 Hu vessel, 상 말기 기원전 12세기 ~ 11세기. 상상의 동물을 연상시키는 도철(饕餮)무늬로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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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그릇, 靑銅 壺 Hu vessel, 서주(西周), 술병처럼 생긴 예기인 호(壺, Hu)이다. 실제 생활에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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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그릇, 靑銅 壺 Hu vessel, 동주(東周)

목이 길고 입이 작은 형태의 의례용 술그릇(酒器)이다. 처음에는 토제로 제작되기 시작하여 청동제는 3세기까지 사용되었다. 목 부분에 새무늬로 장식된 왼쪽의 호는 대롱모양의 귀가 붙어 끝을 끼워 들 수 있게 한 ‘관이호(貫耳壺)’로, 기벽 안쪽과 뚜껑 안쪽에 동일한 명문이 있다. 오른쪽의 호는 금 입사 장식과 화려한 꽃잎 모양의 뚜껑, 고리 모양 손잡이 장식에서 동주(東周) 시기의 유개호(有蓋壺)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대 옥기
중국 옥기는 사물(物).신(神).사람(人)의 이상을 대표하며 시대와 지역별로 오랜 기간 발전하였다. 신석기시대는 옥으로 석기를 모방하여 권력의 상징인 도끼를 만들고 예기인 벽璧을 만들어 천당을 상징하였다. 하대 이후 청동 공구가 발달하면서 옥을 다루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어, 귀족사회를 대표하는 무기와 여러 가지 장신구가 제작되었다. 한대부터는 예기의 틀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어졌다. 평민의 무덤에서는 옥기가 출토되지 않는다. <출처:중악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표적인 고대옥기.  신분을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 옥기로 벽(壁), 규(珪), 장(璋), 종(琮)이 있다. 규(珪)는 조선시대 근정전 조정에서 행해지는 조례를 할 때 신하들이 들고 있는 홀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장신구, 玉璧, 양저문화 기원전 3300~기원전 2200년) 신석기시대 말기. 벽(壁)은 신분의 표시와 함께 벽사(僻邪)의 의미를 갖는 예기로 시신을 묻을 때 가슴위에 올려 놓는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장신구, 玉璧, 양저문화 기원전 3300~기원전 2200년) 신석기시대 말기

양저문화(良渚文化)
1936년 중국 저장성 위장현(余江县)의 양저에서 처음 발견된 신석기시대 문화로 기원전 3300~2300년 말기에 존재하였다. 대표 유물은 옥기(玉器)와 흑도(黑陶)가 있으며, 흑도 기벽이 매우 얇은 것이 특징이다. 옥기는 무덤에서 다량 출토되었는데 예기인 벽(壁), 규(珪), 장(璋), 월(鉞) 등도 출토되었다. 벼농사를 이미 시작하였고 콩, 깨, 마 등도 함께 경작하였다. 이곳에서 최초의 직물인 마직물이 발견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옥칼, 玉刀, 양저문화, 신석기시대 말기, 옥도끼, 玉斧, 양저문화 신석기시대 말기. 부월(斧鉞)도 조선시대까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예기로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 초기 권력의 상징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점점 칼날이 넓은 옥월(玉鉞)로 변모하면서 후에 황권(黃權)과 신권(神權)을 상징하게 된다. 후대 중국 역사를 통해서 황제의 상징인 부월의 근원이 되는 유물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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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허리장식, 玉璏, 서진과 서한, 검을 허리에 찰 때 사용하는 장신구이다. 한대에 주로 사용하였다. 옥수라고도 한다. 돌출무늬뿐만 아니라 호랑이와 용이 부조로 새겨진 것도 있다.

중국의 공예
상대(商, 기원전 16 세기 ~기원전 11세기)와 주대(周, 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256년)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게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사용 청동 그릇을 다수 제작하였다. 이 청동기는 신분 계급에 따라 소유할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었다. 종류는 취사용기(炊器), 식기(食器), 술그릇(酒器), 물그릇(水器), 악기(惡器)로 나눠진다. 주대 이후에는 실생활 기물이 많아졌고, 진한대(秦.漢, 기원전 221~ 기원후 220년)에 이르면 금은입사(金銀入絲), 감옥(嵌玉), 누금세공 등을 이용한 화려하고 세밀한 금속기가 만들어졌다. 도자기는 송대(宋, 960~1279년)에 들어 황금기를 맞으면서 각 지역의 가마(窯)에서 특색있는 자기가 많이 생산되었다. 원대(元, 2171~1368년)와 명대(明, 1368~1644년)에는 전국의 도공들이 경덕진에 모여들었고, 청화백자 등 다양한 종류의 자기가 제작되었다. 특히 명대에는 경덕진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법의 채색차지가 만들어지고, 그 기술은 청대에 더욱 발전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등대, 獅子粧飾 燈臺, 청, 나무에 채색

사자, 용, 봉황 등 상서로운 동물로 장식한 등대이다. 사자 형상의 받침에는 연꽃과 박쥐무늬, 물결무늬 등을 화려하게 칠장식했고 사자는 장식된 안장돠 다래를 갗췄으며 안장 위에는 등을 연결하는 봉을 꽂는 구멍이 있다. 봉의 윗부분은 봉황의 형상으로 조각하여 둥근 공모양의 등롱(燈籠)을 달았고, 동제의 등롱은 9마리의 용을 투각으로 장식한 반구형 2개를 연결했다. 청대 칠공예품의 정교한 기교와 화려함을 보여주는 공예품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