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통일신라 석탑의 걸작

경북 경주시 불국사 경내에 있는 다보탑(多寶塔, 국보)이다. 석가탑(국보)과 함께 불국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우리나라 석탑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 마당에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2개의 탑’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많은 전란등으로 불국사가 타버렸을 때도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었기 때문에 불국사는 계속 재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룡사 목탑이 불타버렸을 때 그 복구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황룡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중심으로 원래 모습으로 재건될 수 있었다. 불국사에서 석가탑과 다보탑을 직접 보게 되면 사진에서 볼 때와는 다른 크기와 웅장함에 감탄하게 된다.

다보탑은 높이 10.34m의 대형 석탑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걸작이다. 목탑을 모방했던 모전석탑이나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과는 전혀 다른 형태와 구조를 하고 있다. 법화경에서 현세불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불인 다보불이 옳다고 증명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계단 위에는 4마리의 돌사자를 올려 놓았는데 3마리는 일제에 의해 약탈되고 한마리만 남아 있다. 기단에는 4면에 돌계단을 설치되어 있다. 탑신은 8각형을 하고 있으며,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로 이루어진 머리장식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다보탑은 석가탑과 마찬가지로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당시인 8세기 중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쌍탑식 가람배치에서 동탑에 해당하며,  과거불인 다보불을 상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진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과는 달리 목조건축물을 연상시키면서도 독창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는 단층 구조로 만든 안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앞쪽에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 계단을 4면에 설치했다. 화강암석재로 만든 기단부 몸돌도 석재를 가공하여 마치 목조건축물처럼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에 세워진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계단 위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의미를 갖은 사자상이 세워져 있다. 4면에 세워졌던 사자상 가운데 상태가 좋지 않아서 훼손을 면했던 서쪽편 방향의 사자상이다. 연꽃모양 대좌 위에 세워진 사자상으로 웅장한 외형의 걸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1층은 바깥쪽 4개와 가운데 석조기둥이 지붕돌을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목조건축물처럼 보와 공포가 설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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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돌 위에는 4각형의 난간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팔각난간을 돌렸으며, 그 안에 16잎의 연꽃돌을 받치고, 그 위에 다시 8개의 기중모양 받침이 팔각지붕돌을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정교하면서도 세밀한 디자인으로 탑신을 구현하고 있다.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로 이루어진 상륜부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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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쪽에서 본 다보탑.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주불전인 대웅전 영역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당에는 삼층석탑과 다보탑이 “2개의 탑”을 연상시키듯 나란히 서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쌍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09년 수리중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2006년.

SANYO DIGITAL CAMERA중국 베이징 이화원 호수변에 있는 건륭제가 세운 다보탑. 우리나라의 석탑과는 달리 성문 문루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 국보20호, 통일신라 8세기, 경주시 진현동 15-1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이 탑은 높이 10.34m이며, 일반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과는 다른 특이한 형태로, 정식 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이다. 이는 ‘법화경’에 석가여래의 진리를 다보여래가 증명한다고 하는데 연유한다. 이러한 내용을 탑으로 조성한 예는 다른 불교 국가에서는 없다. 이 탑은 경덕왕 10년(751)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4각형 기단의 네 면에 계단을 설치하고, 중앙에 4각형 돌기둥을 세우고 교차되는 받침을 얹어 탑의 지붕돌을 받치게 하였다.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 있던 네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 있다. 지붕돌 위에 4각형의 난간을 만들고 안에 팔각형 몸부분을 조성했으며, 그 위에 팔각 난간을 돌렸다. 그 안에 8개의 대나무 마디모양의 돌기동을 도려 16잎의 팔각 연꽃돌을 받치고 있다. 연꽃돌 위에는 8개의 기둥머리 모양의 받침이 팔각 지붕돌을 받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