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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청동기.고조선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중국 동북 지역, 만주지역과 함께 한반도를 주 무대로 하여 기원전 15세기 무렵에 시작되었다. 이는 중국 황화유역과는 다른 문화권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이 지역에 존재했다는 점과 현재까지 출토되는 비파형 동검, 지배계층의 무덤인 고인돌 등에서 많은 유사성.연관성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이러한 청동기시대 문화를 바탕으로 등장하였다. 한편,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는 청동기와 더불어 철기가 사용되었다. 철기는 북부 지역에서 먼저 사용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한반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의 발달은 사회 분화를 촉진하여 각 지역에서 정치 집단이 형성,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 청동기실>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는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를 주 무대로 기원전 15세기 무렵 시작되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주로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가 사용되었고, 청동기는 권위의 상징물이나 의기로 일부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벼농사 등 농업이 발달하면서 오늘날 농촌과 비슷한 대규모 마을이 생겨났고 집단내에서는 사회적 계층화가 이루어졌다.

농경문청동기, 전 대전 괴정동, 청동기시대 기원전 4세기,

뒷면

설명

 앞면에는 따비로 밭을 갈고 괭이로 땅을 일구며 수확한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뒷면 그림에 묘사된 솟대는 한반도 사람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농경문청동기는 앞면에 솟대를, 뒷면에는 농경의례를 표현한 청동의기로서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면의 새가 나뭇가지 위에 앉은 모습은 농촌 마을의 솟대를 연상시킨다.뒷면에는 사람이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거나, 머리에 긴 깃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따비로 밭을 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벌거벗은 모습을 상징하듯 성기가 노출되어 있다. 밭고랑 아래에는 또 한사람이 괭이를 치켜든 장면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벼농사
잡곡을 위주로 한 밭농사는 신석기시대에 시작되었으나, 청동기시대에 와서는 벼농사가 시작된다. 벼농사는 잉여 생산물의 증가는 물론 농경도구의 발달을 초래하였고, 한편으로는 노동력과 수확물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계층이 나타나게 되는 등 사회적인 모습까지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농사에 쓰이는 도구
청동기시대의 밭가는 도구로는 석제괭이와 여러가지 목제 농경구가 대표적이다. 수확도구로는 반달칼과 돌낫이 있다.

괭이, 14.1941년 구입, 낫, 20.충남 부여 송국리(1990년 발굴), 21.경남 산청 소남리(1985년 발굴)

반달칼, 15.경기 양평 조현리(2005년 발굴), 16.1937년 구입, 17.강원 원주 궁촌리(1974년 입수), 18,19.충남 부여 송국리(1982년 발굴),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농업용 도구라 할 수 있다. 곡식의 이삭을 따는 도구. 몸체에 구멍이 뚫려 있고 이 구명에 끈을 꿰어 손에 걸어서 사용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간석기의 종류가 다양해지며, 형태가 정형화되었다. 청동기가 주로 무기와 의기 등 매우 제한적으로 만들어지 데 비해 간석기는 일상생활 도구로 널리 사용되었다. 간석기는 나무를 베거나 다듬는 데에 이용된 도끼, 대팻날, 끌 등의 공구와 곡식의 이삭을 따거나 베는데 사용된 반달칼, 낫 등의 농구 그리고 무기와 사냥도구인 칼, 화살촉 등이 있다. 특히 이 시기 대팻날, 끌, 홈자귀 등 목제 가공용 도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목기가 폭넓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절구공이, 22.경북 안동 저전리(2005년 발굴)

목재를 가공하는 도구
청동기시대에 가장 일반적인 도구로 목공구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목공구는 목재 가공 기술이 발달하였음을 의미한다. 양날의 도끼는 나무를 베는 데 사용하는 벌채용이고, 한쪽날의 도끼로는 벌목한 목재를 가공했다.

도끼, 1. 1985년 입수, 2.경기 의왕 오전동(1978년 구입), 3.충남 부여 송국리(1982년 발굴), 4.경기 양평 전수리(1978년 구입), 5.1923년 구입

도끼와 도끼자루, 12.충남 논산 마전리(1999년 발굴), 13.경기 수원(1963년 구입),

도끼는 자루와 날 방향이 평행을 이룬다. 날의 평면은 조개날 형태이며, 몸통 단면은 원통형 혹은 장방형이다.

자귀와 홈자귀, 6.1981년 입수, 7.충북 제천 황석리(1969년 입수), 8.충남 부여 송국리(1982년 발굴)

자귀는 나무를 깍아 다듬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 날의 한쪽 면만 갈아서 만든 도구이다. 청동기시대 공구로는 나무의 벌목, 가공 등에 이용된 도끼, 자귀, 대팻날, 끌 등이 있다. 끌, 홈자귀는 ‘ㄱ’자형 자루에 묶어 쓰는 공구로 목재를 가공하는데 주로 쓰였다.

자귀와 홈자귀, 9,11.충남 부여 송국리(1982년 발굴), 대팻날, 10.충남 부여 송국리(1982년 발굴)

농경과 마을의 탄생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을 바탕으로 정착생활이 본격화하면서 큰 규모의 마을들이 생겨났다. 주로 움집에서 살았는데, 집터 안에는 화덕자리,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등이 있었다. 집터는 면적이 큰 장방형에서 작은 원형.방형으로 변화한다. 마을 유적에서는 논과 밭, 물길, 우물, 마을 전체를 두른 도랑, 울타리 등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농경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등장을 보여주는 유물로 마제석검이라 불리는 돌칼들이 무덤에 부장품으로 많이 묻혔다.

칼, 1.경북 청도 진라리(2002년 발굴), 2.충북 제천 황석리(1962년 구입), 3.경기 화성 율암리(1967년 입수), 4.경북 안동 지례리(1988년 발굴),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기인 칼은 보통 검몸과 자루가 한 몽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슴베를 나무 자루에 끼워서 사용하는 것은 함경북도 지방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문화 요소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칼, 5.경남 김해 무계리(1974년 입수), 6.전남 보성 죽산리(1986년 발굴), 7.충남 부여 송국리(1982년 발굴),

부여 송국리 주거지에서 돌로 만든 칼이 나무자루에 붙은채 발견되었다. 돌칼과 자루가 연결되는 방식, 자루의 모양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송국리 유적에서 발견되기 이전, 이러한 형태의 돌칼은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돌창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칼,8.경기 포천 장암리(1958년 기증), 9.충남 서천 한산(1967년 구입), 10. 1959년 구입, 11.경북 칠곡 복성리(1996년 발굴), 12. 전북 진안 모정리(1996년 발굴)

돌칼의 상징성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돌칼은 규모가 큰 주거지나 일부 무덤에서만 출토되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만 소유하였을 것이다. 길이 40cm가 넘는 대형인 것, 손잡이 부분이 과장되어 실용성이 없거나 장식된 돌칼은 신분을 상징하는 의기의 일종으로 단순한 칼 이상의 의미를 지녔음을 알려 준다. <출처:중앙박물관>

달도끼, 13.함북 회령(1918년 기증), 14.함북 종성(1918년 기증), 15. 1941년 구입, 16.함북 종성 개평(1965년 입수),

바퀴날도끼는 달도끼라고도 불리며, 가운데 구멍에 자루를 끼워 사용한다. 톱니날도끼는 도끼의 날이 톱니와 비슷하고 가운데 구멍에 자루를 끼워 사용한 것으로 별도끼라고도 한다. 의식을 진행할 때 앞에서 지휘하던 용도로 쓰였을 것이다.

별도끼, 17.1981년 입수, 18.1988년 입수

별처럼 달처럼 생긴 도끼들
톱니날 도끼 혹 바퀴날 도끼라고도 하며,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 막대자루를 꽂아서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실제 무기나 지휘봉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지배자의 등장
농경 사회에서 수로 굴착, 거대한 고인돌 조성 등 마을 전체의 단결과 공공 노동이 강조되었다. 이와 더불어 잉여물의 분배 등을 둘러싼 여러 갈등을 조정하는 인물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마을 규모가 커지면서 마을 내부는 물론 마을 간에도 격차가 생기며, 일부 지배자는 주변 여러 마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무덤에 부장되는 청동칼과 돌칼 등은 이러한 현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낸 돌칼과는 달리 사냥이나 전쟁 등에 실제 사용되었던 무기로 화살, 창 등이 있다.

함정, 울산 입암리

화살촉, 1.경북 경주 송선리(2003년 발굴), 2.경남 창원 상남동(1997년 발굴),

화살촉, 3,10.경북 칠곡 복성리(1996년 발굴), 4.충북 제천 황석리(1962년 구입), 5.전북 진안 삼락리(1996년 발굴), 6.경기 파주(1966년 입수), 11.경북 상주 청리(1996년 발굴),

화살촉은 돌을 갈아서 만든 화살촉으로 화살대와 결합하는 부분에 슴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 사냥 이외에도 전쟁 무기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무덤에 넣기 위해 특별히 만든 경우도 있다. 화살촉의 형태는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준 자료가 된다.

 화살촉, 강원 춘천 천전리 유적.

강원도 춘천 천전리 주거지 내부에서 돌로 만든 화살촉이 살대에 결합된 채로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출토되었으며 화살을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살대는 싸리나무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강원 춘천 천전리 유적,

화재로 폐기된 47호 주거지에서 각종 토기류, 석기류 및 화살대가 출토되었다. 화살대는 슴베형의 화살촉 11점과 함께 탄화된 채로 발견되었는데, 화살촉과의 결합 방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7.경북 상주 청리(1996년 발굴), 8.서울 양재동(1982년 입수), 9.경기 화성 동학산(2003년 발굴)

생업활동
청동기시대에도 농경과 함께 수렵과 어로 등 생업 활동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었다. 최근 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대가 출토되었고, 땅을 파서 만든 함정도 발굴되었다. 이와 더불어 수렵과 관련된 유물로서 창이나 동물뼈 등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 등 농업이 발달하면서 오늘날 농촌과 비슷한 대규모 마을이 생겨났고 집단 내에서는 사회적 계층화가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대체로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근처의 평탄한 곳이나 구릉에 논과 밭을 일구어 벼, 조, 수수, 콩, 보리와 같은 오곡 농사를 지었다.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이웃한 마을 사이에 경쟁이 생겨나고, 새로운 농경지를 둘러싼 분쟁도 일어났다. 이에 따라 외부 세력의 위협에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을 둘레에 도랑을 파거나 나무 울타라, 망루 같은 방어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이는 한반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당시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유적지로는 부여 송국리를 들 수 있으며, 이 곳에서 당시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새김돋은띠무늬 토기, 1. 경남 진주 대평리(1997년 발굴), 저장그릇, 2.경기 수원 이목동, 2010년 발굴.

새김덧띠무늬토기는 아가리 가까이에 점토띠를 붙이고 그 위에 눈금을 새긴 토기이다.

구멍무늬토기, 3.경기 연천 삼거리(1999년 발굴), 4.함북 웅기 송평동(1981년 발굴), 골아가리토기, 5.경북 청도 진라리(2002년 발굴),

구멍무늬토기, 3.경기 연천 삼거리(1999년 발굴), 4.함북 웅기 송평동(1981년 발굴), 구멍무늬 토기는 아가리 아래 작은 구멍을 뚫은 토기이다. 두만강 유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해 남한 전역에서 출토된다. 골아가리토기, 5.경북 청도 진라리(2002년 발굴),  골아가리 토기는 아가리 윗면에 눈금을 새긴 토기이다. 구멍무늬 토기에도 눈금을 새긴 예가 많다.

음식그릇, 6,7,8,9,10.경남 진주 대평리(1997년 발굴)

조리그릇, 11.경남 산청 소남리(1985년 발굴), 12.경남 진주 상촌리(1996년 발굴)

가지무늬 토기, 13,14.경남 사천(1988년 발굴),

가지무늬토기는 토기 어깨 부분에 검은색으로 가지무늬가 베풀어져 있는 토기이다.

저장그릇, 15.경남 진주 상촌리(1996년 발굴), 17.경기 화성 동학산(2003년 발굴)


저장그릇, 16.경기 오산 양산동(2011년 발굴), 독무덤, 18.충남 공주 남산리(1995년 발굴)

붉은간토기, 19.충북 충주 조동리(1996년 발굴), 20.경남 산청(1971년 구입),

붉은간토기는 고운 바탕흙을 사용하여 만든 후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문질러 붉은 광택이 나는 토기이다.

붉은간토기, 21.1989년 구입, 23.경남 함안 도항리(1992년 발굴),

붉은간토기, 22.경남 함안 도항리(1992년 발굴), 24.충남 부여 송국리(1982년 발굴), 송국리형 토기, 25.충남 부여 송국리(1990년 발굴),

송국리식 토기는 아가리 부분이 좁아졌다가 살짝 밖으로 꺾이는 토기이다. 호서.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며 영남 지역과 제주도에서 발견된다.

덧띠토기, 26.경남 사천 늑도동(1985년 발굴), 27.전북 완주 갈동(2003년 발굴) , 33.경기 안성 만정리(2004년 발굴),

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부분에 단면 원형 또는 삼각형의 점토띠를 말아 붙여서 만든 토기이다.

검은간토기, 30.충남 논산 원북리, 32.경기 화성 발안리(2002년 발굴)

검은간토기,31,경기 화성 발안리(2002년 발굴), 덧띠토기, 34.경기 화성 발안리(2002년 발굴), 

검은간토기는 고운 바탕흙을 사용하여 만든 후 표면에 흑연 등을 바르고 문질러 검은 광택이 나는 토기이다.

굽다리접시, 28.경기 오산 가장동(2010년 발굴), 29.광주 신창동(1992년 발굴)

굽다리접시, 35.경기 안성 반제리(2004년 발굴),

굽다리접시는 긴 굽다리가 달린 그릇이다.

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에는 토기 겉면에 무늬가 거의 없는 민무늬토기를 사용했다.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어 다소 거친 진흙으로 빚어 한뎃가마에서 구웠으며 바닥이 납작하고 적갈색을 띤다. 민무늬토기 아가리에는 간단한 선무늬나 구멍무늬, 점토띠 등이 있는 경우도 있으며, 토기 겉면을 잘 문질러 붉은색이나 검은색을 낸 것도 있다. 민무늬토기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여러 특징을 보이며 꾸준히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 참조: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