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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 대리석조각이 화려한 고려를 대표하는 석탑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도서관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이다. 원래 경기도 개풍군 보소산에 있던 경천사(敬天寺) 절터에 있던 고려시대 석탑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던 것을 반환받았다. 탑신 1층에 새겨진 내용에 따르면 고려말 충목왕 때(1348년)에 원나라 황제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당시 원나라에는 고려출신 기황후가 있었던 시기로, 친원세력의 권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법회장면 등을 불교적인 내용을 표현하고 있지만 구성요소나 세부 조각들은 백제 금동대향로 등에서 볼 수 있는 도교적인 표현 등을 연상시키고 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탑골공원에 원각사지십층석탑고 그 형식이나 세부내용이 거의 비슷하며, 중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조각상 등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석탑이다.  기단부는 3단으로 되어 있으며 亞자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에는 여러가지 사자, 나한상, 서유기의 주요장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탑신은 10층으로 되어 있는데 3층까지는 亞자 형태를 하고 있다. 탑신에는 부처와 보살이 등장하는 법회장면과, 불상 등을 새겨 놓고 있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아주 뛰어난 걸작이다. 기존 석탑과는 달리 목조건축물을 사실적으로 모방하고 있아, 당시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

일본을 무단반출되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반환받은 경복궁에 방치되어 있다가 1960년 경복궁 마당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후 경복궁이 복원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실내에 전시되고 있다.


<위에서 본 모습>

‘亞’자 모양의 3층 기단 위에 10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비례에서 주는 절제된 조형미가 돋보인 전통적인 신라 석탑과는 달리 화려한 조각상으로 장식해 놓은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이다.

<아랫부분>

기단부와 탑신 1~3층까지는 ‘亞’자 형태를 하고 있다.

<3층으로 된 기단부>

기단부에는 당시 인기를 끌었던 소설 ‘서유기’의 주요 장면을 비롯하여 나한상, 사사장 등을 새겨놓고 있다.

<‘서유기’ 주요 장면>

기단부에 새겨진 ‘서유기’ 주요 장면, 가운데 삼장법사가 있고, 파도무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오정을 만나는 유사하(流沙河)를 건느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기단부 모서리와 주변에도 섬세한 조각상을 새겨놓고 있다.

<기단부에 새겨진 또 다른 서유기 장면>

<또 다른 서유기 장면>

<나한상>

<기단부에 새겨진 사자상>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탑신 1~3층>

기단부와 마찬가지로 ‘亞’자 형태를 하고 있든 탑신 1~3층이다. 누각형태의 건물로 지붕, 처마, 기둥 등 목조건축물의 세부적인 형태까지 섬세하게 모방하고 있다.

<1층탑신>

탑신에는 부처와 보살이 참여한 법회 장면을 각면에 표현하고 있다.

<2~3층 탑신>

법회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윗쪽에서 본 3층과 4층 탑신>

4층에도 법회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4~10층 탑신>

4층 탑신부터는 사각형을 하고 있으며, 각층의 높이에도 큰 변화가 없다. 5층부터는 불상들을 조각해 놓고 있다. 각 몸돌마다 난간들 두르고 있으며,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를 섬세히 표현하고 있다.

<탑신 5층과 6층>

<7층과 8층>

<9층과 10층>


<앞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석탑이 세워져 있는 중앙박물관 로비>

경천사지십층석탑, 국보, 경기 개성 경천사터
이 탑은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운 십층석탑으로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고려 석탑의 전통적인 양식과 이국적인 형태가 조화를 이루며, 고려인이 생각한 불교 세계가 입체적으로 표현된 석탑이다. 사면이 튀어나온 기단부에는 사자, 서유기 장면, 나한 등을 조각했다. 목조 건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탑신부에는 1층부터 4층까지 부처와 보살의 법회 장면을 총 16면에 조각했으며, 지붕에는 각각의 장면을 알려주는 현판이 달려있다. 5층부터 10층까지는 다섯분 혹은 세분의 부처를 조각하였다. 상륜부는 원래 모습을 알 수 없어 지붕만을 복원하였다. 이 탑은 1907년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가 일본으로 밀반출하였으나, 영국 언론인 E. 베델과 미국 언론인 H. 헐버트등의 노력에 의해 1918년에 반환되었다. 1960년에 경복궁에 복원되었으나 산성비와 풍화작용에 의해 보존상의 문제점이 드러나 1995년 해체되었다. 국립문화재 연구소가 10년간 보존처리를 진행한 후,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용산 이전 개관에 맞춰 현재의 위치에 이전.복원하였다. (중앙박물관, 2017)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