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104호),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 석탑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오층석탑(보물 104호)이다. 고려초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 9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석탑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사자상을, 윗층 기단에는 팔부중상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넓게 만들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 받침이 남아 있으며, 탑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철로 만들 찰주가 높이 솟아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백제 석탑의 특징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보원사(普願寺)는 그 내력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절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84호)이 있으며, 절터에서 6세기 중엽에 제작된 금동불상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백제때부터 있었던 사찰로 여겨진다. 통일신라때는 최치원이 언급한 의상대사를 계승한 화엄십찰 중 하나로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절터에는 오층석탑(보물 104호), 법인국사탑(보물 105호) 등이 있으며, 절터에서 출토된 거대한 철조불상이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104호). 높이 9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오층석탑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대체로 잘 따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아래층 기단부에는 사자상을, 윗층 기단부에는 팔부중상을 새겨 놓고 있다. 1층 몸돌에는 감실을 표현한 문짝을 새겨 놓았다.  기단 위에 탑신 1층 몸돌을 받치는 사잇돌을 끼워 넣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에 새겨진 팔부중상.

SANYO DIGITAL CAMERA북쪽편에 새겨진 팔부중상.

SANYO DIGITAL CAMERA탑신부.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을 얇고 넓게 만들었다. 1,2층 지붕돌은 2장의 돌을 끼워 맞춘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에는 탑의 무게를 받쳐주는 찰주가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서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2009년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보원사지 절터.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104호,고려시대, 높이9m,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통일신라~고려초의 정형적인 석탑양식이다. 목조탑파에서 석조탑파로 변환되는 과정의 형식이며 아래층 기단에 사자상을, 위층 기단에 8부 중상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기단부에 우주, 탱주를 세웠고 탑신부 1층 밑에 받침돌 한장을 끼워 넣은 것과 옥개석의 물매가 평활하며 끝이 살짝 들어 올려진 것 등이 백제계 양식이다. 또한 옥개석 받침을 4층으로 한 것은 신라계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백제지역에 신라 이후 세워지는 석탑의 공통된 양식이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미려하고 경쾌하며 안정감이 있다. 상륜부에는 긴 찰주만 남아 있지만 1945년 광복 전까지 아름다운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련, 용차, 보주 등의 부재가 완전하게 있었다고 한다. 1968년 해체 복원시 사리 내갑, 외갑, 사리병, 납석소탑 등이 출토되며 부여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09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