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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보물)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사 경내에 있는 철감선사탑비(보물)이다. 글이 적힌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은 용의 머리와 거북모양의 몸체로 되어 있는데 앞발을 살짝 들고 있다. 머릿돌에는 용무늬는 생략하고 구름무늬만 조각되어 있다. 철감선사탑(국보)과 마찬가지로 조각수법이 세밀하고 힘이 넘친다. 머릿돌 앞쪽에는 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철감선사(徹鑒禪師)는 통일신라 때 승려로, 이름은 도윤(道允)이며, 호는 쌍봉(雙峯)이다.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와 금강산에 머물면서 도를 닦았으며, 이후 쌍봉사를 크게 중건하고 그곳에서 머물다 868년에 입적하였다. 왕은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보물)>

머릿돌과 거북받침돌만 남아 있다. 철감선사탑(국보)과 함께 빼어난 조각수법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머릿돌>

용무늬가 생략되어 구름무늬만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추가하였다. 가운데 탑과 탑비의 주인을 알려주는 글자가 적혀있다.

<앞에서 본 모습>

오른쪽발을 살짝 들어올려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들이 돋보이는 걸작인 철감선사탑(국보)>

쌍봉사(雙峯寺)는 창건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통일신라 말 선종을 이끈 구산선문 중 하나인 사자산문을 열었던 철감선사가 크게 중건하면서 사찰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유재란 때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그 이후에 중건되었다. 사찰내에는 철감선사탑(국보), 탑비(보물),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화순 쌍봉사>

화순 쌍봉사철감선사탑비, 보물, 전남 화순군 이양면
현재 비신은 없고 귀부(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와 이수(비수 위에 용의 모양을 새긴 돌)만이 남아 있다. 철감대사의 호는 쌍봉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황해도 봉산사람이다. 신라 원성왕 14년(798) 출생하여 경문왕 8년(868)에 쌍봉사에서 입적하였다. 철감은 시호이며 탑의 이름은 증소라 하였다. 사각의 바닥돌 위에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모습으로 사실성이 강하다. 거북등은 이중테두리의 6각형문을 선명하게 새겼다. 특히 앞 오른발의 세 개 발가락을 땅에서 들어올린 표현은 귀부의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수는 용 조각을 생략하고 구름무늬만 새겼다. 당대 석비조각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비신은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렸다고 전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쌍봉사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