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611호)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태고사에 있는 원증국사탑비(보물 611호)이다. 승탑과는 달리 대웅전 뒷편에 세워져 있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과 머리돌을 세운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나 고려초에 조성된 다른 비석과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의 표현이 사실적이지 않고 조각수법도 많은 떨어진다. 고려말 불교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원증국사의 탑비라는 점과 당대 문장가이자 유학자인 이색이 글을 짓고, 명필이었던 권주가 글씨를 썼기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원증국사(圓證國師)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중흥사에 머물면서 공민왕의 왕사를 지내는 등 큰 영향을 미쳤던 승려 보우이다. 그는 어린나이에 양주 회암사에 출가하여 여러 사찰에서 공부를 공부했으며, 중국에도 유학했다. 공민왕때 신돈의 뒤를 이어 왕사가 되었으며, 고려 우왕때 이곳 태고사에서 입적했다. 조계종 다음을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종조(宗祖)로 추앙받고 있다.

태고사는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중흥사에 딸린 작은 암자였다. 불전과 요사채를 갖춘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복구한 것이다.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중흥사는 태고사 아래쪽에 있던 큰 사찰로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이 축조,보강되면서 승병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큰 홍수로 파괴된 후 터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불전 등이 세워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611호). 대웅전 뒷편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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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받침돌 위에 비몸과 머릿돌을 올린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나 고려 초의 거북받침돌과는 달리 표현이 섬세하지 못하며 조각수법도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머릿돌에는 구름무늬만 얕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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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새겨진 비몸. 당대 문장가이자 학자인 이색이 글을 짓고 명필인 권주가 글씨를 썼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 보물 611호, 경기 고양시 북한동
중흥사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이곳 태고사를 창건하여 5년간 머물렀던 원증국사 보우의 행적과 업적을 새긴 탑비이다. 원증국사(1301~138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호는 태고이다. 13세에 회암사로 출가하여 26세에 화엄선에 합격하였다. 1346년(충목왕2)에 원나라에 가서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의 법손 청공 밑에서 공부하고 그 법을 받아 귀국했다. 그후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으며, 한때 신돈과 대립하다가 속리산에 금고되기도 했으나 신돈이 죽은 후 국사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승려가 1,000여 명에 이르고, 당대의 대신이었던 최영과 이성계가 그의 제자로 비문에 적혀 있을 정도로 고려말기 불교계의 거목이었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과 함께 한국불교의 초석을 다진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증국사탑비는 1385년(고려 우왕11)에 건립되었다. 당대의 문장가 이색이 비문을 짓고, 명필인 권주가 글씨를 썼다. 전체적으로 보아 탑비의 조각이 형식에 그치고 있어 퇴화된 느낌을 준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3년)

<출처>

  1. 쌍봉사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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