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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보물), 통일신라 말 승려 체징의 승탑

전남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 경내에 있는 보조선사탑(보물)이다. 통일신라 승려 체징(體澄)의 사리를 모신 승탑으로 대웅전 뒷편에 탑비(보물)과 함께 세워져 있다. 탑은 높이 4 m이며, 3단으로 된 기단 위에 탑신과 머리장식을 올렸다. 기단 아래받침돌에는 사자와 구름무늬를 입체적으로 새겼으며, 가운데 받침돌에는 안상을,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8각형의로 된 몸돌에는 앞뒤로 문짝을 새겼으며, 그 옆에는 탑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새겼다. 지붕돌을 두껍게 만들었으며, 머리장식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몸돌이 지붕돌에 비해 크게 만드는 등 전체적으로 약간 어색해 보인다.

승려 체징(體澄, 804∼880년)은 통일신라 말 선종을 이끈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가지산파(迦智山派) 3대조(組)이다. 설악산 억성사에서 염거(廉居)에게 배웠으며, 중국으로 유학한 후 귀국하여 선(禪)을 가르쳤다. 859년 왕의 청으로 보림사 주지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시호는 보조(普照)이며, 탑호는 창성(彰聖)이다.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보물)>

통일신라말 구산선문 중 가지산파 3대조인 승려 체징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탑신 몸돌을 상대적으로 크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래 받침돌>

얇은 괴임돌 위에 2단으로 만들었다. 아랫단에는 안상을, 윗단에는 사자와 구름무늬를 입체감있게 새겼다.

<가운데 받침돌>

안상,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섬세하게 새겼다.

<탑신>

탑신 몸돌을 상대적으로 크게 만들었는데, 앞뒤에 문짝과 사천왕상을 새겼다.

<지붕돌>

지붕돌은 두껍고 평평하게 만들었는데 기와골과 서까래 등을 섬세하고 표현하고 있다. 머리장식은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동쪽에서 본 모습>


<북쪽에서 본 모습>


<서쪽에서 본 모습>

<승탑 아래에 세워져 있는 탑비>

장흥 보림사(寶林寺)는 통일신라말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 통일신라말 선종을 이끈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도 가장 먼저 열었던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중심사찰이었다.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되기 전까지는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큰 사찰이었다. 사찰내에는 삼층석탑과 석등(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동승탑(보물), 서승탑(보물), 보조선사탑(보물)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장흥 보림사>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 보물, 전남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
승탑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일종의 무덤이다. 이 승탑은 기단, 몸체돌, 지붕돌이 모두 8각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으로 8각의 지대석에는 얕은 괴임이 있고, 그 위에 다시 8각의 하대석이 2중으로 놓여 있다. 윗단에는 사자와 구름무늬가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8각인데 각 면에는 네모꼴에 가까운 형태의 안상을 2중으로 조각하였고, 상대석은 8잎의 연꽃잎을 새겼다. 몸체돌도 8각으로 면의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각 면에는 문짝 모양과 열쇠모양, 두개의 고리모양을 새겼으며, 사면에는 신장상을 새겼다. 승탑의 꼭대기에는 복발과 보륜, 보주가 차례로 놓여 있다. 승탑의 총 높이는 3.7m이다. 신라말 고승인 보조선사가 헌강왕 6년(880)에 입적한 후 4년 뒤인 884년에 탑비가 건립되었으므로 이 창성탑(승탑)이 만들어진 시기도 이무렵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