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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보물), 당태종의 글씨를 모아서 새긴 집자비석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흥법사 절터에 남아 있는 진공대사탑비(보물)이다. 절터에는 비석을 받쳤던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고 비몸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거북받침돌은 짧은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거북 등에는 卍자와 연꽃무늬가 겨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무늬속에 얽혀있는 두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으며, 중앙에는 전서체로 ‘진공대사’라고 적혀 있다. 조각수법이 세밀하면서 빼어난 작품으로 통일신라 탑비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기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 신덕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고려초에도 태조의 왕사가 되어 두터운 존경을 받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직접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당나라 태종의 왕희지체 글자로 모아서 새긴 집자비석이다.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보물)>

절터에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은 힘이 넘치는 생동감있는 표현과 조각수법이 돋보인다.

<머릿돌>

두마리의 용이 구름속에서 다투고 있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머릿돌. 가운데 탑의 이름인 ‘진공대사’라는 글자가 보인다.

<뒤에서 본 머릿돌>

<비몸 조각>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비몸 조각이다. 태조 왕건이 직접 글을 짓고 당태종의 왕희지체 행서를 집자하여 글자를 새겼다.

흥법사 진공대사 비석, 당태종 행서 집자, 고려 940년
이 비석은 진공대사 충담을 기리며 세운 비석이다. 전시되어 있는 것은 비석의 아랫면이다. 비석의 글은 진공대사를 깊이 존경하던 고려 태조가 지었고, 최광윤이 중국 당나라 태종의 행서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뒷면에는 고려 태조에게 올렸던 진공대사의 글이 구양순의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당 태종은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행서에 뛰어났다. 귀부와 이수는 현재 강원도 원주시 흥법사 터에 있고 진공대사 탑과 석관은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2012년)

<흥법사 진공대사 비석 탑본, 당 태종 행서 집자, 고려 940년>

진공대사 충담을 기리며 원주 흥법사에 세운 비석의 탑본이다. 탑본 연대는 알 수 없다. 글은 고려 태조가 지었고, 최광윤이 중국 당 태종의 행서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 2012년)

<왼쪽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진공대사탑 및 석관 (보물)>

흥법사는 <고려사>에 신라때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찰이다. 이 곳에는 염거화상탑, 진공대사부도, 진공대사탑비와 삼층석탑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의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만이 남아 있다. 고려를 건국하던 시기에 주로 활동한 진공대사와 관련된 사찰이며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후 중건되지 않고 폐사지로 변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인근 지역에는 통일신라말과 고려초에 세워진 승탑과 탑비 등이 많이 남아 있는데, 세밀하고 화려한 조각수법을 보이면서 웅장한 느낌을 준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찰에서 탑은 형식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승탑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원주 흥법사지>

흥법사가 있었던 절터는 원주와 여주, 양평을 연결해주는 주요 교통로이며 섬강과 문막읍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옛절터에는 고려시대에 세운 삼층석탑과 진공대사를 기리는 탑비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고, 절터 대부분은 경작지로 바뀌어 옛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보물,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흥법사지
이 유물은 신라말 고승인 진공대사의 탑비이다. 진공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고려태조의 왕사가 되었고, 940년(태조23)에 돌아가시자 태조가 직접 글을 지었다고 한다. 글씨는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가려뽑아 새긴 것으로 왕희지체이다. 비의 본체는 파손되어 국립박물관에 있다. 스님의 사리를 모신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보물 365호)과 석관은 신라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신라 말기의 퇴화된 작품에 비하여 고려초기의 패기가 넘치는 우수한 작품으로 지금은 경복궁에 있다. 비의 받침 부분인 귀부는 짧은 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모습으로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머리 위에 네모난 구멍에는 뿔을 따로 조각하여 꽂은 것으로 보인다. 거북의 등에는 인근에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와 같이 이중의 6각형 속에 만(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으며, 네발은 받침돌을 힘차게 딛고 있다. 비의 덮개부분인 이수의 앞면 중앙에는 전서체로 ‘진공대사’라 새겨 놓았으며, 이 글을 중심으로 사방의 구름무늬속에 상하좌우로 얽힌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노려보고 있다. 옆면의 용도 하늘을 향해 움직일 듯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당시 조각 예술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1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