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보물 361호)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보물 361호)이다.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활동한 대경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로 양평 보리사 절터에서 발견되어 경북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탑비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받침돌과 비몸, 머리돌로 이루어져 있다. 머릿돌에 새겨진 용무늬 장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있다. 거북받침돌은 비몸에 비해 작아 약간 불안정해 보인다.

대경대사 여엄(麗嚴, 862~930년)은 구산선문 성주사에서 선종을 연구하였으며,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다. 말년에 양평 보리사에 주지로 활동하다 입적했다. 시호는 대경(大鏡)이며, 탑호는 현기(玄機)이다. 비문에는 대경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을 새겨 놓고 있는데, 당시의 문장가인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을 썼다고 한다. 거북받침돌의 머리가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점등 고려 전기의 탑비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태조 22년(939)으로 진경대사가 입적한지 9년이 지난 후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보물 361호).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 탑비로 머릿돌에 새겨진 조각이 인상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거북받침돌.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 머릿돌에 비해 조각수법이나 표현이 우수한 편은 아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거북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거북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을 썼다고 한다. 글자체가 선명하고 힘이 넘친다.

OLYMPUS DIGITAL CAMERA머릿돌은 구름속의 두마리의 용이 다투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당나라 비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보물351호_(전)_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_01-2017_03_14
이화여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보라사지 대경대사탑(보물 351호).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보물 361호, 고려 939년
이 탑비는 신라말에서 고려 초기에 활동하던 성주산문의 대경대사 여엄(862~930년)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 9년이 지난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워졌다. 거북받침돌의 거북머리가 용머리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탑비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머릿돌의 구름과 용은 매우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