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보물), 통일신라 말 선종 동리산파를 열었던 승려 혜철의 승탑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에 있는 적인선사탑(보물)이다. 높이 3.1 m의 탑은 통일신라 때 승려 적인선사 혜철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탑은 8각형으로 된 전형적인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 아래받침돌은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면에는 사자상을 입체감 있게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은 낮게 만들었으며,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 몸돌에는 앞.뒤로 문짝과 그 주위로 사천왕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넓게 만들었는데 서까래, 기왓골, 막새기와 등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꼭대기 머리장식도 지붕돌처럼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탑은 전체적으로 크고 무겁게 보이지만, 세부적인 조각수법이나 섬세한 표현 등이 돋보인다.

적인선사 혜철(寂忍禪師 慧徹, 785~861년)은 통일신라 때 선종 동리산문(桐裏山門)을 열었든 승려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영주 부석사에 배웠다. 이후 당나라로 유학해 남선종(南禪宗) 계통의 지장선사에게 배웠다. 귀국후 이곳 태안사에 머물면서 선종을 널리 전파하였다. 시호는 적인(寂忍)이며, 탑이름은 조륜청정(照輪淸淨)이다. 풍수도참설로 유명한 도선(道詵)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를 두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보물). 높이 3.1 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승탑이다. 전체적인 비례나 균형이 적절하며 세부 조각수법이 화려하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아래받침돌에는 각면에 사자상을 입체감있게 조각해 놓았으며 가운데 받침돌에는 안상을,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섬세학 새겨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몸돌에는 문짝과 사천왕상을 얕게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돌은 겹처마 서까래를 비롯하여 기왓골 등 실제 목조건축물의 지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꼭대기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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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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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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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태안사 뒷편 언덕에 담장을 두르고 있는 영역에 승탑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승탑 옆에 세워져 있는 탑비. 후대에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태안사(泰安寺)는 곡성군 동리산(桐裏山)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때 3명의 승려가 창건했다 전해진다. 통일신라 말 승려 혜철이 머물면서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동리산문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고려초에는 광자대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지역의 중심사찰이 되었으나 고려중기 이후 수선결사를 이끈 송광사가 번창하면서 크게 위축되었다. 조선초에는 효령대군이 머물기도 했다. 사찰내에는 적인선사탑(보물 273호), 광자대사탑(보물 274호), 광자대사탑비(보물275호)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 선종 동리산문 중심사찰이었던 곡성 태안사.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보물273호,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적인선사탑은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세운 혜철스님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혜철의 시호는 적인선사이고 탑호가 조륜청정이어서 적인선사 조륜청정탑이라고도 부른다. 이 승탑은 기단과 탑신, 옥개석이 8각형으로 이루어진 팔각원당형으로, 신라시대 석조 부도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넓은 기단 가운데에 4각형 지대석을 2단으로 놓고 그 위에 8각 받침돌을 놓았다. 받침돌의 각 면에는 안상이 2좌씩 조각되어 있으며, 하대석의 각 면엔는 사자가 1마리씩 새겨져 있다. 하대석 위에는 중대석을 4단으로 두었으며, 중대석 위에는 활짝 핀 연꽃잎을 잘 조각하여 꾸몄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대좌 위에 놓여 있는 탑신은 낮은 편이나, 아래는 넓고 위는 좁아 안정감이 있으며, 각 면에는 문을 비롯한 다양한 문양이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지붕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서까래와 추녀, 기왓고랑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륜부는 꽃이 위로 핀 연꽃 모양의 장식물, 공양 그릇을 엎은 듯한 장식, 바퀴 모양의 장식, 구슬 형태의 보주 등이 있어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부도는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조성 시기는 스님이 입적한 통일신라 경문왕 원년(861)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