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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선림원지 석등(보물), 세부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 석등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선림원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석등(보물)이다. 선림원지 옛절터 한쪽편 홍각선사탑비와 함께 있는 이 석등은 통일신라 때(8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각형 평면을 기본을 기단과 화사석, 지붕돌로 구성된 기본적인 형태의 석등이다. 아래받침돌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모서리에 귀꽃이 돌출되게 새겨져 있다. 가운데받침돌은 장고모양을 하고 있는데, 양끝에 구름무늬띠를 새겼으며 가운데에는 꽃송이를 조각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화사석에는 4개의 창이 있으며 8각형의 각면 아래에는 작은 안상을 새겨놓고 있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끝에는 귀꽃을 조각해 놓았다. 이 석등은 돌을 다루는 기술이 절정기에 이룬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석재의 재질이 양호하며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이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선림원(禪林院)은 강원도 동해안 양양과 속초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인 56번국도가 지나가는 구룡령 아래 계곡에 위치한 큰 사찰이었다. 통일신라 때(9세기) 홍각선사가 창건한 이 사찰은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계열 사찰이었다. 구룡령을 넘기전에 잠시 머물수 있었던 곳으로 많은 승려들과 여행객들을 위한 쌀을 씻은 물이 끝없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미천골로 불렸다.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었으며, 절터에는 석탑(보물)을 비롯하여 석등(보물)·홍각선사탑비(보물)·승탑(보물) 등이 전해지고 있다.

<양양 선림원지 석등(보물)>

양양 선림원지 절터에 남아 있는 높이 2.95 m의 비교적 큰 석등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전체적인 비례나 세부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앞에서 본 모습>

탑은 3단으로 된 기단 위에 화사석과 지붕돌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석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받침돌>

아랫단은 8각형으로 각면에 안상을 새겨 놓고 있으며, 윗단은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모서리마다 귀꽃을 큼직하게 돌출시켰다.

<가운데 받침돌>

장고모양을 하고 있는데 맨윗부분과 아랫부분에는 구름무늬를 얕게 새겼으며 가운데 부분에는 꽃무늬를 새겼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

화사석은 4면에 불을 밝히는 창을 만들었으며, 각면 아래에는 작은 안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지 않으며, 모퉁이에 귀꽃무늬를 장식했다.

<선림원지 안쪽에 있는 석등과 홍각선사탑>

<양양 선림원지>

양양 구룡령 아래 미천골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선림원지 절터이다. 교통요지에 자리잡은 선종 사찰로 크게 번성했던 곳으로 절터에 삼층석탑, 석등, 승탑과 탑비가 남아 있다.

양양 선림원지 석등, 보물,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이 석등은 4매석으로 된 네모난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어 건립된 8각의 신라시대 기본형 석등이다. 8각의 하대 옆면에는 각각 안상이 음각되고, 그 위 복련에는 귀꽃 치장이 뚜렷이 새겨졌으며, 복련 윗면에 구름무늬와 1단의 높은 괴임을 새겨냈다. 간석은 중간 부분에 타원형 꽃잎이 8곳에 배치된 고복형으로서 그 윗부분에는 대칭적인 연화판을 새겼다. 간석 상.하단에는 권운문이 있으며 상대석에는 곂잎앙련이 있다. 화사석에는 4개의 장방형 화창이 있는 외에 각면의 아래쪽에 횡으로 장방형의 액을 마련하였다. 그 액 안에 각가 1구씩의 안상을 새겨 넣었다. 옥개석은 전각에 귀꽃이 있고 낙수면은 물매가 급하지 않으며, 8각의 합각은 사선이 뚜렷하고, 그 정상부에 복련이 새겨져 있다. 상륜부에는 작은 원형의 연화대석이 있을 뿐이다. 이 석등은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와 마찬가지로 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진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