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보물 446호)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선림원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홍각선사탑비(보물 446호)이다. 통일신라 때(886년)에 홍각선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탑비이다.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 파손되어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 몸돌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거북받침돌은 용의 머리가 직립하고 있는 모습이며, 비몸을 올려놓았단 자리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거북받침돌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주위는 구름과 용이 새겨져 있다. 글자가 새겨지 비몸 일부만 남아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홍각선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때 활동한 선종(禪宗) 계통의 승려이다. 그를 기리는 비석의 비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서서(書史)에 해박하며, 전국의 이름난 산을 찾아다니며 수행했다고 한다. 비문은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양 선림원지 절터에 남아 있는 홍각선사탑비(보물 446호).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비몸을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거북받침돌. 얼굴은 용이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거북등에는 육각모양이 새겨져 있다. 조각수법이 섬세하거나 생동감이 넘치지는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비몸을 올리는 받침에는 연꽃무늬과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머릿돌에는 탑비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주위와 구름속을 나는 용을 입체감 있게 조각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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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각선사의 업적을 새긴 비몸(복원품).

OLYMPUS DIGITAL CAMERA홍각선사 비편(The Fragment of a stele), 통일신라, 양양 선림원지.

통일신라 헌강왕 때의 고승인 홍각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신의 일부이다. 탑비의 귀부와 이수는 현재 양양 선림원지에 남아 있다. 비면이 심하게 마멸되고 여러 곳이 깨져 있어 판독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홍각선사는 17세에 출가하여, 880년(헌강왕5) 법랍 50세로 입적하였다. 출가전에 이미 경사에 능통했으며, 출가 후에는 불경을 깊이 연구하고 영산을 두루 찾아다니며 수행하였다. 수양이 깊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도를 구하였고 왕도 그의 덕을 흠모하여 궁궐로 청해 설법을 듣기도 하였다. 이 비는 886년(헌강왕12)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김원이 짓고 승려 운철이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새겼다고 한다. 글자는 2cm 정도 크기의 행서체로 통일신라 말기에 왕희지의 글씨가 신라 전역에 보급되었음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이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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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서 본 홍각선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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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에서 본 모습.

선림원(禪林院)은 강원도 동해안 양양과 속초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인 56번국도가 지나가는 구룡령 아래 계곡에 위치한 큰 사찰이었다. 통일신라 때(9세기) 홍각선사가 창건한 이 사찰은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계열 사찰이었다. 구룡령을 넘기전에 잠시 머물수 있었던 곳으로 많은 승려들과 여행객들을 위한 쌀을 씻은 물이 끝없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미천골로 불렸다.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었으며, 절터에는 석탑(보물 444호)을 비롯하여 석등(보물 445호)·홍각선사탑비(보물 446호)·승탑(보물 447호) 등이 전해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양 미천골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선림원지 절터.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보물 446호,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이 탑비는 홍각선사(弘覺禪師, ?~880년)의 부도 탑비로서 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졌다. 17세기 중엽 이전에 이미 파손되어 비신 잔편 일부는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2008년에 비신을 새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귀부는 용의 머리가 직립한 모습이고, 비좌에는 구름무늬가 둘러져 있다. 이수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는 전액을 양각으로 새기고 주위에는 운용문으로 장식하여 신라 하대 석비의 전형적인 특징이 보인다. 비신은 가로 94.0 cm, 세로 173.5 cm의 크기로 재현하였다. 대략 1,340여자 내외의 글자가 적혀 있었을 것으로 고증되며 총 710자의 글자를 복원하였다. 비분의 내용은 비명, 비문 찬술 관련자, 홍각선사의 생애, 선사 사후 비석건립 경위, 관련인물, 건비 시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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