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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낙랑의 대표 무덤인 석암리 9호

중앙박물관에는 고조선 멸망 이후 설치된 한사군 중 낙랑군이 있었던 평양 석암리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발굴.조사된 이 무덤은 석암리 9호 무덤은 구덩이 속에 큰 나무곽을 만들고 그 속에 다시 나무곽과 나무널을 넣는 형식의 귀틀무덤이다. 켜묻거리 중에는 칠기, 청동거울, 장신구 등 중국에서 수입된 문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무덤의 규모와 껴묻거리로 볼 때 낙랑의 최고급 무덤으로 판단되며, 기원 8년 명문이 새겨진 칠기가 출토되었다.

무덤에 껴묻거리로 출토된 유물들은 장례 시 시신에 사용되는 장옥을 비롯하여 무덤 주인의 권위를 나타내는 무기류, 각종 장신구와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그릇이나 토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사후 세계에 관념을 보여주고 있으며, 구성면에서는 삼국시대 고분과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는 한반도와 중국간의 문화적인 교류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출토된 유물들은 다른 지역 고분이나 삼국시대 고분과는 달리 중국 한나라에서 사용되는 것들과 큰 차이가 없다. 이는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평양 석암리 9호 무덤(1916년 발굴)>

 옥기는 중국 고대 귀족들이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대표적인 예기 중 하나이다. 고조선 멸망 후 한사군이 설치된 평양지역에서 중국문화를 대표하는 옥기가 부장된 무덤이 일제강점기에 발견되었다. 시신의 가슴위에 올려 놓았던 옥벽을 비롯하여, 부활의 상징인 옥선(매미)를 비롯하여 다양한 옥기들이 시신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장례에 쓰이는 옥, 1.눈(眼玉), 2.코(鼻塞), 3.귀(充耳), 

 4.입(玉含), 한나라,

중국문화에서 부활의 상징인 옥으로 만든 매미.매미는 장옥으로 사용되어 무덤에 부장품으로 매장된다. 시신의 입에 넣어 옥함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영혼 부활과 환생의 염원을 담고 있다.

5.가슴(玉璧),

대표적인 옥 예기로 신석기시대부터 한대까지 사용되었다. 시신의 가슴 위에 올려 놓았으며, 가운데에 구멍의 지름이 반지름보다 작을 경우는 벽, 클 경우는 촉이라고 한다. 남성의 무덤에서만 발견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6.항문(塞杆), 7.손(玉豚),

손에는 옥돼지를 쥐고 있는데, 돼지는 먹을거리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장신구,

8.은반지, 9.’영수강녕’새김 거북 모양 도장,  인장은 재질과 형태, 문구의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무덤 피장자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석암리 9호분에서는 길상구인 ‘영수강녕’이 새겨진 거북모양 도장이 출토되었다.11.달고 다니는 옥,벽사의 의미로 석탄, 수정, 호박, 유리 등으로 동물 형상을 만들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신체에 달고 다니기도 하였다. 대개 길상의 의미가 있는 양의 형상이 많았다. <출처:중앙박물관>

10.철검과 칼허리장식(옥체),

칼허리장식은 검을 허리에 찰 때 사용하는 장신구이다. 한대에 주로 사용하였다. 옥수라고도 한다. 돌출무늬뿐만 아니라 호랑이와 용이 부조로 새겨진 것도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옥기
장례 시 시신에 사용되는 장옥은 입을 막는 함옥(含玉), 입과 신체 9개의 구멍을 막는 막음 옥(塞玉), 손에 쥐는 옥돼지(玉豚), 가슴에 얹는 원반형의 옥벽(玉璧) 등이 있다. 옛 사람들은 옥이 신령스러운 힘을 지녔다고 믿었는데, 매미는 부활, 돼지는 먹을 거리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대에는 무덤 주인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들이 같이 묻는다. 한나라 귀족층에 해당하는 낙랑고분의 주인 또한 다양한 무기류들을 껴묻거리로 묻어 두고 있다.

무기, 1.가지창,  3.자동화살발사기(노기,弩機),

오늘날 총기에 사용하는 발사장치를 이용한 석궁(노,弩)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2.창, 4.청동손잡이, 5.금동손잡이

마구, 6.말종방울, 7.말종방울, 8.수레장식,

9.말 얼굴 가리개, 11.금동제 드리개 장식,

 10.수레 굴대 끝,

12.재갈,

13.일산살꼭지

무력과 권위
청동 무기는 철제 무기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하게 된다. 철제 장검 등 철제 무기는 나무집과 함께 칼코등이, 허리띠 걸이 등 부속구가 수반되고, 원격용 무기인 청동제 노기(弩機)도 발견되었다. 석암리 9호 무덤에서는 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농공구가 드물게 출토되었다. 한편, 기원전후 낙랑고분에는 실용 마구가 부장되지만 중원의 한 대 무덤에서는 명기가 부장되는 차이를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허리띠고리,

 금판 위에 수천 개의 금 알갱이들을 붙였고, 큰 용 1마리가 중앙에서 꿈틀거리고, 그 주위로 6마리의 작은 용이 바짝 붙어 있다. 53.9g(14.3돈)의 순금으로 만든 허리띠 고리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중국 문화를 대표하는 예기인 청동 그릇들이다.

1.항아리, 2.항아리,

3.솥, 4.향로, 5.세발솥,

6.술을 데우는 그릇, 7.술을 데우는 그릇,

술 데우는 그릇을 중앙에 두고 연희를 즐기는 장면

청동그릇
석암리9호 무덤은 가장 풍부한 청동 그릇의 조합상을 보이는데, 술을 담거나 데우는 그릇인 동준, 동종, 동형과 음식물을 끓이거나 데우는 그릇인 동정, 동부 등의 기형이 출토되었다. 청동 그릇의 부장은 기원1세기대 일부 무덤에서 확인되며, 이후 벽돌무덤 단계에 이르면 흙으로 만든 명기가 부장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낙랑의 고분에는 삼국시대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장신구 등이 껴묻거리로 묻어졌다. 중국이 설치한 한사군 지역 무덤답게 중국 한나라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대부분이다.

1.거울,

2.허리띠고리, 전국시대부터 한 대에 걸쳐 유행하던 대구는 앞쪽의 꺽어진 갈고리 형태가 짐승의 머리를 형상화한 이른바 곡봉형 대구다.3.칼을 거는 고리, 4.천칭 추, 5.고리,

6.빗 청소용 솔 장식, 7.비녀,

 낙랑고분에서 출토되는 화장 도구 중 머리를 묶거나 관과 머리를 결합하는 기능을 한 비녀는 남녀 모두 사용하였다. 또한 촘촘한 빗살 사이에 낀 때를 청소하는 청동제의 빗솔 장식도 출토되었다.

8.곰모양 상다리 장식,

9.짐승 모양 눌림쇠, 4점이 한 세트를 이루며 융기된 산과 연 봉우리를 둘러싼 세 마리의 호랑이를 별도로 주조하여 접합하였다. 원반형 저부는 가운데가 비어 있게 주조한 뒤 내부에 비중이 높은 물질을 채워서 무게를 더하였다.11. 곰모양 장신구, 12.허리띠 고리,

10.’거섭3년’새김 칠 그릇, 13.그릇 테두리, 14.술잔 손잡이 장식


10.연대가 세겨진 칠기 (거섭3년)

1,2, 항아리,

3,4,항아리

5.항아리

칠기와 장신구
낙랑고분에는 식기류를 비롯하여 무구류 등 다수의 칠제품이 부장되어 있었다. 이 중 연대가 적혀 있는 칠기에는 제작 연대와 제작자 등이 새겨 있어 당시의 제작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팔찌와 반지는 출토 상황으로 보아 남녀의 구별 없이 착용하였던 것 같다. <출처:중앙박물관>

낙랑의 대표 무덤, 석암리 9호
석암리 9호 무덤은 구덩이 속에 큰 나무곽을 만들고 그 속에 다시 나무곽과 나무널을 넣는 형식의 귀틀무덤이다. 껴묻거리 중에는 칠기, 청동거울, 장신구 등 중국에서 수입된 문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무덤의 규모와 껴묻거리로 볼 때 낙랑의 최고급 무덤으로 판단되며, 기원 8년 명문이 새겨진 칠기가 출토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