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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관촉사 석등(보물),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거대한 석등

충남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세워진 석등(보물)이다. 거대한 불상에 걸맞은 높이 5.45 m의 4각형 평면을 하고 있는 거대한 석등이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은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가운데받침돌은 굵고 둥근 기둥처럼 만들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상하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 4개의 기둥이 지붕돌을 받치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불상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균형미는 조화롭지 못하지만, 지방 호족 세력의 힘을 상징하듯 웅장함을 강조하고 있다. 구례 각황전 앞 석등(국보)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사찰 사적비에 의하면 968년(고려 광종 19)에 불상과 함께 조성되었다고 한다.

불을 밝히는 등(燈)은 인류의 문명생활과 함께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만들어졌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불을 밝혀 조명을 하는 등기(燈器)와 부처에 불빛을 올리는 공양구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다. 목조건물을 모방해서 만든 승탑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석탑이나 승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이후 많은 사찰에서 석등을 세웠는데 경주보다는 지방의 화엄십찰이나 선종계통 사찰에서 크고 웅장한 석등이 많이 남아 있다.


<논산 관촉사 석등(보물)>

높이 5.45 m의 4각형 평면을 하고 있는 거대한 석등이다. 조각수법이나 세련된 조형미는 부족해 보이지만 웅장함을 자랑한다.

<석등을 받치는 아래받침돌>

4각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옆면에는 안상을,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 받침돌>

굵고 둥근 기둥모양을 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꽃장식이 달린 띠모양을 조각했다.

<화사석을 받치는 윗받침돌>

<불을 밝히는 화사석>

화사석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은 기둥이 지붕을 받치는 형태로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지붕돌 모서리 끝을 살짝들어 올렸으며, 귀꽃으로 장식했다.

<불상 옆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석등>

관촉사(灌燭寺)는 논산시 도심 남쪽편 낮은 야산 중턱에서 삼국통일 마지막 결전장이었던 황산벌을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은진미륵으로 불리는 고려초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토속적이면서도 웅장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이 있는 사찰이다. 고려초 광종 때 거대한 불상을 세우면서 관촉사가 창건되었다. 관촉사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사찰이기는 하지만 사찰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논산 관촉사>

석등을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오층석탑이 있다. 고려시대 사찰배치에서 석탑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논산 관촉사 석등, 보물, 충남 논산시 관촉동
석등이란 어두운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로 비추어 불성을 밝혀주는 등인데, 처음에는 실용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후대에는 불전이나 탑 앞에 설치하는 장식적인 건조물로 변했다. 정사각형의 하대석 옆면에는 안상을 3개씩 새겼다. 기둥돌은 둥근 형태의 상.중.하 3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화사석은 상하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네 기둥이 빈약한 반면 화창이 매우 넓다. 1.2층 지붕돌의 네 귀에 귀꽃이 큼직하게 서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원과 4각.8각이 혼합되어 구성되었으며, 안정감이 약간 부족하나 전체적으로 크고 장중한 감을 주고 있다. 또한 화사석의 기둥이 가늘어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형태의 장대함과 수법의 웅장함이 고려시대 제일가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사적비에 의하면 불상이 968년(고려 광종 19)에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시대 석등의 대표작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