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달아실 마을이다. 마을의 생김새가 달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달아실이라고 부른다. 월곡리(月谷里)는 달아실 마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마을 남쪽에 나즈막한 동산이 해망산(해발 355 m)이 있고 동쪽으로는 화순고인돌(사적410호)이 있는 효산리가 깄고 북쪽으로 넓은 들판이 있으며, 청동기유물이 발견된 대곡리와 도곡면소재지가 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배산임수 지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양반들의 집성촌이다. 마을은 조선중기 문신 양팽손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많은 한옥이 남아 있는데 그 중 조선후기에 건립된 양참사댁과 학재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뒷편에는 양팽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세워져 있다.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 달아실 마을. 100여가 가구 모여사는 크지 않은 시골 마을로 그 형세가 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달아실 마을이라 부른다. 조선중기 문신 양팽손의 후손들이 모여 살았던 집성촌으로 지금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 풍경을 하고 있다.
달아실 마을 입구. 지금도 마을출신 후손이 중요한 시험에 합격했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보이는 양참사댁. 원래는 양동호가옥으로 불렸는데 최근 역사적의미를 찾고자하는 뜻에서 ‘양참사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집주인이었던 양재형(梁在亨, 1881-1960)이 참사직을 제수 받아 참사댁(參事宅)으로 불렸다.
양참사댁 사랑채를 들어가는 출입문. 기와지붕을 얹은 단순한 형태의 일각대문을 하고 있다.
양참사댁 사랑채. ‘-’자 모양의 길게 생긴 건물이다. 온돌방이 많고 대청의 규모가 작게 만들었다. 손님을 맞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대가족이 거처하는 생활공간 성격이 강하다. 구한말 유행했던 햇빛을 가리는 차양을 마루 앞쪽에 길게 설치했다.
화순 양참사댁(양동호 가옥), 전남 화순군 월곡리
이 집은 ‘ㄷ’자 모양의 안채와 “-”자 모양의 사랑채가 ‘ㅁ’자를이루며, 바깥대문과 안대문을 설정하는 등 사대부집의 형태를 갖추었다. 안채는 18세기, 사랑채는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기본적으로 큰 방과 대청이 나란히 놓인 남도방식이지만, 대청공간이 대단히 크며 3개의 공간으로 구분된 점이 특이하다. 부엌방, 대청 뒤의 고방과 가운데 방, 머리칸의 갓방과 갓대청의 설정 등은 남도지방 사대부 가옥의 한 유형이다. 사랑채는 ‘-’자로 평범한데 구들이 많고 대청의 규모가 작은게 다른 지방의 사대부 집과 다르다. 안마당 동쪽의 나락곡간도 벽체를 널빈지(벽체를 한짝씩 끼웠다 떼었다 할 수 있게 만든 나무로 만든벽)로만 둘러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학재고택 내부. 안채는 양쪽에 날개부분이 있는 ‘H’ 평면을 하고 있다.
화순 학재 고택(양승수 가옥), 전남 화순군 월곡리
이 집은 원래 서쪽의 양재국씨 가옥과 한 집으로 이쪽은 안채, 저쪽은 사랑채였다고 한다. 두집을 합해도 사대부집의 공간 짜임새가 퇴색되어 보이는데, 아마도 부속건물들이 중간에 헐렸을 것으로 추측되며, 건립시기는 19세기 중엽이다. 안채는 “H”자형 평면으로 골격은 남도형인데, 부엌 뒤로 부엌방과 안방 뒤에 골방을 두고 머리칸에 갓방과 갓대청을 배치하였다. “H”자형 날개 부분의 뼈대는 본체와 구분하여 따로 기둥을 세웠다. 대청문을 판장문으로 하는 등 구조 기법에서 고식을 볼 수 있다. 사랑채는 “H”자형 주택에서 머리칸을 떼어버린 “ㅓ”자 모양 집이다. 안채보다 규모있게 지었을 뿐 평면구성, 구조기법 등이 양재국 가옥과 유사하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마을 뒷편에 있는 학포선생부조묘. 조선중기 문신 학포 양팽손을 모신 사당이다.
<출처>
- 문화재청
- 두산백과
-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