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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삼한 사람들의 생활과 대외교류

삼한은 기존의 토기 제작 기술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만들어졌다. 가마에서 구워서 단단해진 경질무문토기와 단단하게 두드리는 두드림기법이 적용된 타날문 토기가 있는데 단단해서 실용성이 좋은 경질무문토기의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또한 삼한에는 이 시기의 종교적 성격을 같는 새모양을 하고 있는 토기가 많이 출토되는데 이는 조령신앙과 관련되어 있으며, 한반도를 많이 찾아오는 철새인 오리모양의 토기가 많다.

한반도 남쪽 지역에 존재했던 삼한은 중국, 일본과 주요 해상교통로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고조선내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세력들이 남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우수한 기술과 지식 등으로 인해서 상당한 문화 수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유물이 출토된 지역은 경남 사천의 늑도, 제주도, 여수 거문도, 창원 다호리, 김해 양동리, 대구 만촌동, 울산 하대리 등 남해안 해상교통의 요지나 큰 강이 있는 지역이다. 중국의 동전, 청동거울 등 교역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출토된 동전으로는 진나라에서 사용한 반량전, 왕망의 신나라에서 사용한 화전과 화포, 한나라에서 사용한 오수전 등 다양한 시대의 동전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창원 다호리에서는 붓과 손칼이 출토되는 등 문자를 사용하고 상당히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야요이토기와 무기들도 출토되고 있다.

새무늬 청동기, 1.경남 고성 동외리(1995년 발굴),

  가운데의 큰 새 2마리를 중심으로 모두 42마리의 새와 고사리무늬, 톱니무늬 등이 새겨져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있어 끈을 걸 수 있다. 고대인은 새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므로, 이러한 유물은 농경과 관련된 여러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모양토기, 2.충남 서천 오석리(1996년 발굴),

새모양토기, 3.전남 해남군 군곡리(1986년 발굴), 4.전남 나주 용호(2000년 발굴),

5.경북 경주 사라리(1996년 발굴)

고대인과 새
고대 사람들은 새가 봄철에 곡식의 씨앗을 가져다 주거나 죽은 이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이른바 조령신앙을 믿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새를 형상화한 유물이 발견된다. 삼한의 유적에서는 오리모양 토기와 새 모양 목기, 새무늬 청동기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이 출토되어 새와 관련된 의례나 제의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삼한의 토기

삼한의 토기
삼한시대에는 종래의 민무늬토기가 계속 사용되는 한편 새로이 연질토기와 와질토기가 등장하여 이 시기의 대표적인 토기가 되었다. 와질토기에 뒤이어 등장한 경질토기는 밀폐된 굴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 회청색을 띠며 단단하여 실용적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중부 지역의 마한 토기, 1,2,3.단지, 강원 춘천 중도(1982년 발굴),

4.단지, 충남 천안 청당동(1996년 발굴), 5.화분형 토기, 충남 아산 갈매리(2004년 발굴)

중부지역의 마한 토기
중부 지역의 마한은 ‘呂, 凸’와 같이 독특한 출입 시설을 갖춘 주거지와 새로운 토기, 초기 형식의 온돌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그 중에서 토기는 기존의 제작 전통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만들어졌는데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로 구분된다. 경질무문토기는 예전보다 높은 온도로 굽는 신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한뎃가마와 굴가마에서 구워졌다. 타날문토기는 기벽을 단단하게 하는 두드림기법을 적용하여 표면에 삿무늬와 문살무늬가 남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6.시루, 전남 화순 대곡리(1971년 발굴), 7.단지, 전남 화순 대곡리(1971년 발굴),

8.단지, 전남 영암 옥야리(1990년 발굴), 9.단지, 전남 함평 소명동(1999년 발굴), 10.귀때토기, 전남 화순 대곡리(1971년 발굴)

호남 지역의 마한 토기
호남 지역의 마한은 집터와 조개더미, 무덤 등이 조사되었는데, 집터의 경우 출입구가 없이 네모난 형태이며 화덕만 설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남지역에서는 경질무문토기의 비중이 높은 편이고 타날문토기도 회청색보다는 적갈색으로 구워진 것들이 많다. 조개더미에서 제사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작은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11.화로모양토기,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12.굽다리접시, 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13.단지(1984년 입수), 14.단지,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15.항아리,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발굴),

 오리모양토기, 16,17,18,19,20,21.

경북 경주 덕천리(2004년 발굴), 22.경북 경산 임당동(1999년 발굴), 23,울산 중산리(1991년 발굴),

새장식 항아리, 24.울산 하대(1991년 발굴)

영남지역의 진.변한 토기
영남 지역의 진.변한에서 출토되는 와질토기는 매우 고운 흙으로 빚어 밀폐된 굴가마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 회백색 혹은 회흑색을 띤다. 토기의 형태는 민무늬토기에서 변화된 것이 많은데, 목이 나팔처럼 벌어진 쇠뿔손잡이 항아리와 덧띠토기에서 발전한 주머니호가 대표적이다. 후기가 되면 짧은 목에 굽다리를 붙인 토기가 유행하고 그릇의 형태도 다양해진다. 돌림판을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형태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중국계 1,2. 거울, 경북 경주 사라리(1996년 발굴),

3,4.거울, 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중국 한나라의 거울이다. 일종의 위세품으로 추정되며, 성운문경, 내행화문경, 방격규구경 등이 있다.

5.오수전, 전남 여수 거문도(1980년 입수), 한나라 때 사용된 오수전이다.

6.반량전, 경남 사천 늑도(1985년 발굴), 7.화전, 제주 금성리(1996년 발굴), 8.화포, 제주 산지항(1929년 입수), 9.오수전, 경기 인천 운복동(2007년 발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중국동전이다. 진시황이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면서 만든 반량전, 신나라 왕망 때 주조된 화전과 화포가 있다.

10.화살촉, 경기 인천 운북동(2007년 발굴), 11,12,13.동전 거푸집(1952년 입수),

1

4.세발솥, 울산 하대(1991년 발굴),

세발솥은 전형적 중국의 제기로 삼한과 중국과의 교류를 보여준다. 신분을 나타내고 정치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의기이다. 낙량 지역(평양)과 김해 양동리, 울산 하대리에서 출토되었다.

일본계, 15.창,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16.꺽창, 경북 대구 만촌동(1969년 입수), 18.화살촉, 경남 창원 삼동동(1982년 발굴),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한다.

17.야요이 토기,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19.거울, 경남 창원 삼동동(1982년 발굴)

대외교류
삼한은 한반도를 벗어나 중원, 오르도스, 왜 등과도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는 철을 낙랑과 왜로 수출하였고, 실제로 남부 지방의 여러 유적에서 중국 및 일본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청동 세발솥.거울.동전 등은 중국과의 교류 흔적이며, 야요이 토기.청동 투겁창 등은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철기의 등장과 함께 활발해진 교류는 사회 변화를 촉진하고 고대 국가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점치는 뼈, 1.전남 해남 군곡리(1986년 발굴), .경남 양산 다방리(1995년 발굴)

2.경북 경산 임당동(1999년 발굴),

마한의 제천의식
해마다 5월이면 씨부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춤을 출때에는 수십명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가 치켜들었다 하면서 손과 발을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그 풍류가락이 마치 방울춤과 비슷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렇게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점치는 뼈, 1. 경남 양산 다방리(1995년 발굴), 뼈로 만든 도가, 4.새기개, 부산 낙민동(2000년 발굴), 5.칼 손잡이, 부산 낙민동(2000년 발굴),

6,7,8.칼 손잡이, 전남 해남 군곡리(1986년 발굴),

9.화살촉, 전남 해남 군곡리(1986년 발굴),

10.화살촉, 부산 낙민동(2000년 발굴)

뼈연모
삼한의 조개더미에서는 뼈와 뿔로 만든 칼손잡이.송곳.바늘.낚시.화살촉.뒤꽂이.점뼈 등이 출토된다. 점뼈는 사슴이나 멧돼지의 뼈에 줄을 맞추어 둥근 홈을 판 후 불로 지질 때 나타난 금이 간 모양을 보고 길흉화복을 점친 것이다. 주로 사슴의 뿔을 이용해 만든 칼 손잡이는 대부분 조개더미에서 많은 양이 출토되고 있어 쇠손칼이 당시의 중요한 생활도구였음을 말해준다. <출처:중앙박물관>

제사, 11.모형토기, 전남 해남 군곡리(1986년 발굴)

문자의 수용
창원 다호리 1호 무덤 널 아래의 대바구니에서 붓과 손칼이 출토되었다. 중국 고대의 자료와 비교해 볼 때, 붓과 손칼은 대나무쪽이나 나무판에 글을 쓰고 지우는 문방용구로 추정된다. 즉 붓은 오늘날의 연필, 손칼은 지우개, 대나무쪽은 공채인 셈이다. 붓, 손칼과 함께 출토된 4점의 청동 고리도 중국 한 대으의 천칭 저울추의 일종인 겁마로 파악되고 있으므로 문자와 함께 도량형도 당시 지배층을 중심으로 사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한.중.일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지역에 위치한 다호리 지배층들이 중국과 교류를 하면서 문자라를 사용한 흔적들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필기도구, 1.붓,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발굴), 2.손칼과 칼집,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6.목간, 충남 부여 능산리(1992년 발굴, 복제품),

창원 다호리 1호 무덤 널 아래의 대바구니에서 붓과 손칼이 출토되었다. 중국 고대의 자료에서 볼 때, 붓과 손칼은 대나무쪽이나 나무판에 글을 쓰고 지우는 문방용구로 추정된다. 즉 붓은 오늘날의 연필, 손칼은 지우개인 셈이다. 다호리 무덤에서 출토된 붓과 손칼은 교역용으로 이용된 쇠도끼와 함께 출토되어 철을 교역할 때 사용한 영수증 작성용 필기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2000년 전 우리나라에서 문자가 사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3.짐승모양 연적, 평양 도제리(1970년 입수),

네 다리를 벌린 짐승 몸통의 빈 공간 속에 물을 넣고, 좁다란 원통에 뚫린 구멍을 통해 공기를 조절함으로써 별에 물을 따를 수 있게 되어 있다.

 4.벼루, 평양 석암리(1916년 발굴),

5.죽간, 평양 석암리(1924년 발굴), 7.낙랑 호구 목간, 평양 정백리(1992년 발굴, 복제품), 8.죽간, 평양 석암리(1924년 발굴, 복제품)

문자가 새겨진 거울, 9.거울,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10.거울,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11.천칭추,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삼각거치무늬 청동고리, 다호리 1호 무덤에서 출토된 이 청동고리는 각각의 무게가 5.25g, 10.25g, 11.55g, 22.73g이다.  무게의 배율이 1:2의 비율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양팔저울의 추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례
삼한의 조개더미에서는 뼈와 뿔로 만든 생활 도구들과 함께 점치는 뼈가 출토된다. 점치는 뼈는 사슴이나 멧돼지의 어깨뼈에 미리 줄을 맞추어 둥근 홈을 판 후 불로 지질 때 나타나는 금이 간 모양을 보고 길흉화복을 점친 것이다. 부여에서는 전쟁을 앞두거나 나라의 큰일을 할 때 언제나 점을 보았다. 점복이나 의례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진행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