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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학포당, 조선중기 문신 양팽손이 머물렀던 서재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 있는 정자인 학포당이다. 이곳은 조선중기 중종때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인 양팽손이 서재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그는 기묘사화로 관직을 잃고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지냈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 앞 마당에는 원래 건물을 지을 때 심은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 있던 것은 아니고 1920년대에 후손들이 새로 지은 건물이다. 학포당은 출입문으로 솟을대문과 평삼문을 두고 있는데 이는 정자 건물로는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후대에 새로 지으면서 사당건물처럼 출입문과 담장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화순 학포당>

조선중기 문신 양행손이 서재로 사용했던 작은 정자로 마을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후대에 중건한 건물로 사당처럼 2개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원래의 모습은 아닌듯 하다.

<솟을대문>

첫번째 출입문을 들어서면 문간채가 있는 솟을대문이 있으며, 마당에는 학포당을 처음 세울 때 심었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솟을대문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학포당>

앞면 3칸 옆면 2칸의 크지 않은 정자 건물이다. 가운데 1칸 온돌방이 있고 주위에 앉아 쉴 수 있는 마루들이 있다. 온돌방 윗쪽에 창문이 있는데, 책을 보관하는 다락방이 있다.

<가운데 온돌방>

<온돌방 앞 마루>

걸터 앉아서 마을 풍경을 내려다 보기 좋은 구조이다.

<옆에서 본 모습>

뒷편에도 작은 온돌방이 있다.

<반대편에서 본 모습>

<가운데 온돌방 내부>

<다락방 창문>

<솟을대문>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솟을대문이 마을 풍경을 가리고 있다. 정자는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용도가 중요했기 때문에 양팽손이 이곳에 머물면서 서재로 사용할 때는 솟을대문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서 보이는 학포당>

화순 학포당,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학포당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며 서화가인 학포 양팽손(1488~1545년)이 사용하던 서재이다. 학포선생은 능성현(현 이양면 쌍봉리) 양이하의 아들로 출생하여 중종 5년(1510) 조광조와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중종 11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한 후 정언을 거쳐 중종 14년 교리로 재작하던 중기묘사화로 삭직 당했다. 중종 16년 기묘사화의 여파로 신사무옥이 발생하자 은거의 뜻을 두고 학포당을 건립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시화를 즐기며 지내다가 중종 32년 복관되어 중종 39년(1544) 용담현령을 지냈다. 서화에 능하였고, 호남화단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저서로는 『학포유집』이 전한다. 현재의 건물은 1920년 후손들이 원래 위치에 원형을 살려 복구한 것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