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태안사 일주문

전남 곡성군 태안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이다. 사찰 출입문을 대표하는 형식으로 지금은 대부분의 사찰에서 일주문을 두고 있지만 오래된 건물은 많지 않은 편이다. 태안사 일주문은 원래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조선후기 숙종 때 고쳐지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앞면 1칸의 2개의 기둥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태안사(泰安寺)는 곡성군 동리산(桐裏山)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때 3명의 승려가 창건했다 전해진다. 통일신라 말 승려 혜철이 머물면서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동리산문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고려초에는 광자대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지역의 중심사찰이 되었으나 고려중기 이후 수선결사를 이끈 송광사가 번창하면서 크게 위축되었다. 조선초에는 효령대군이 머물기도 했다. 사찰내에는 적인선사탑(보물 273호), 광자대사탑(보물 274호), 광자대사탑비(보물275호)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곡성 태안사 일주문. 조선후기 숙종때 세워진 것으로 전통적인 일주문 양식이 남아 있는 출입문이다. 건물은 앞면 1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일주문. 기둥에 비해 상당히 크고 무거운 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일주문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태안사 일주문을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곡성 태안사. 통일신라말 선종을 이끌었던 동리산문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곡성 태안사 일주문,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한국 사찰의 입구에는 단아한 일주문이 있기 마련이다. 이 일주문은 고려 태조 28년(937) 경 광자대사가 태안사를 개창할 때 지은 것이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으나 조선 숙종 9년(1683)에 각현선사가 다시 지었고, 이후 1917년 영월선사가 고쳐 지었다고 전한다. 태안사의 여러 건물들이 한국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일주문과 능파각, 보제루만 소실되지 않고 남았으며, 일주문은 1980년에 한 차례 보수하였다. 건축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단층 맞배집으로 기둥 사이에는 3구, 측면에는 1구의 공간포를 짜 올린 다포식 건물이다. 서까래 밑의 공포는 양서형의 실미첨자로 외4출목, 내3출목의 공포를 가득히 짜 올려 화려한 형태를 보여준다.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고 내부의 기둥 위에는 용의 머리를 설치하여 장엄함을 더하고 있다. 앞면에는 ‘동리산태안사’, 뒷면에는 ‘봉황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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