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선암사(사적)이다. 선암사는 백제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통일신라 때 풍수지리설로 잘 알려진 도선(道詵)이 실질적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중기 의천이 이곳에 머물면서 크게 중창하였기 때문에 천태종을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선암사에는 도선 진영(보물 1506호)와 의천 진영(보물1044호)가 전해오고 있다.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으며 이후 여러차례 중건되었다가 한국전쟁에 많은 건물이 불타고 현재는 20여동의 건물만 남아 있다. 고려시대는 선암사는 교종 계열인 천태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선종 중심사찰인 송광사와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현대 불교에서도 양대 종단인 조계종과 태고종의 중심 사찰 역할을 하고 있다.
선암사는 한국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어 65동이나 있던 전각이 20여동으로 줄기는 했지만 현재의 규모로도 상당히 큰 사찰이다. 석가여래를 모신 대웅전(보물)를 주불전으로 삼고 있으며 마당에는 통일신라 때 조성한 2기의 삼층석탑(보물)가 우뚝 서 있으며, 앞쪽에는 강당인 만세루, 양쪽에는 요사채가 배치된 전형적인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대웅전 뒷편으로는 원통전, 각황전, 웅진전, 팔상전 등 많은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서쪽으로 사창각을 비롯한 많은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순천 선암사(사적). 고려시대 천태종 중심사찰이었으며 오늘날 태고종의 중심 사찰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그 규모가 줄어들었다고 하나 2개의 탑이 세워진 대웅전 영역을 중심을 많은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는 큰 사찰이다.
들어가는 길
선암사는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이 자리잡았던 사찰답게 조계산 동쪽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선암사 입구의 주차장이 있는 마을에서 선암사까지는 약 1 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아름다운 계곡에 자리잡고 있어 걷기에 좋은 길이다. 선암사 계곡을 2/3정도 걸어가면 조선후기에 세워졌던 여러 아치형 돌다리 중에서도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승선교(보물 400호)와 그 앞쪽은 약간 작은 돌다리와 작은 정자인 강선루를 보면서 선암사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조금 걸어가면 삼인당이라는 큰 연못이 보이며, 사찰 출입문인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선암사 일주문은 대웅전이 있는 중심영역 바로 앞에 세워져 실질적인 사찰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선암사 입구 마을에서 조금 걸어가면 볼 수있는 넓은 광장처럼 조성된 공간이다. 선암사 계곡으로 들어가는 실질적인 입구이다.
선암사 계곡에 놓여진 돌다리인 승선교(보물 400호)이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다리로 잘 다듬은 돌로 아치형 홍예를 쌓은 돌다리이다.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거의 반원에 가깝게 홍예를 쌓은 것으로 조선시대에 쌓은 아치형 돌다리 중에서는 가장 우수한 편이다.
승선교 아래쪽에 있는 작은 돌다리. 승선교에 비해 작아 보이지만 상당히 아름다우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승선교 위쪽에 위치한 누각인 강선루. 계곡 옆에 자리잡고 있는 문루역할을 겸하고 있는 정자이다.
선암사 입구 아래에 있는 넓은 공간. 알모양으로 생긴 큰 연못인 삼인당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있다.
선암사 삼인당. 타원형으로 생긴 큰 연못으로 선암사를 창건할 때 같이 조성한 것이라 한다.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선암사 사적에 따르면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삼인이란 제생부상, 제법부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변하며 머무른 것이 없고 나라고 할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라는 불교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선암사 일주문은 다른 사찰과는 달리 대웅전이 있는 중심영역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양쪽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상량문에 따르면 병자호란 이후에 다시 세워진 것이라 한다.
대웅전이 있는 중심영역
선암사는 통일신라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춘 사찰로 중심영역은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산지사찰의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주불전 앞에는 2기의 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불법을 강론하거나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인 강당이 앞쪽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을 문루 형태로 만들지 않고 낮게 만들어 중심영역 공간이 막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 마당 양쪽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요사채인 심검당과 설선당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 옆에는 명복을 비는 공간인 지장전이 자라잡고 있다.
선암사는 범종루가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옆에 강당이 세워져 있다. 천왕문이나 금강문 같은 출입문을 두고 있지 않다.
선암사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1311호). 석가여래를 모신 불전으로 강당건물인 만세루와 마주보고 있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동.서삼층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전란과 화재 등으로 불타버린 것으로 여러차례 중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세기에 새로 지은 것이다.
대웅전 앞 마당에 동.서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2기의 삼층석탑(보물395호)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대웅전 맞은편에 있는 강당건물인 만세루이다. 큰 특색이 없는 전형적인 조선후기 강당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마당 서쪽편에 위치한 요사채건물이 설선당. 크고 작은 방과 가운데 마당이 있는 ‘ㅁ’자형 건물이다.
동쪽편에 위치한 요사채인 심검당. 설선당과 마찬가지로 ‘ㅁ’자형 건물이다.
크고 작은 불전들
선암사는 오랜 내력과 태고종 중심 사찰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많은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다. 여러 불전들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공간배치이다. 대웅전 뒷편에는 팔상전, 조사당, 불조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그 뒷편에는 원통전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 뒷편으로 웅진전과 각황전이 여러 부속건물들과 함께 독립된 암자처럼 자리잡고 있다. 불전들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만든 골목처럼 형성된 공간에는 선암매라 불리는 오래된 매화나무(천연기념물 488호)들이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여순 선암사 팔상전. 석가모니의 일생 중 주요 장면을 그린 팔상도를 모신 불전이다. 조선 숙종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팔상전이 있는 공간 뒷편에 있는 원통전. 담장으로 둘러져 있어 암자처럼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웅진전이 있는 공간 사이에 넓은 마당이 있으며, 선암사가 자랑하는 오래된 매화나무를 볼 수 있다.
웅전전과 각황전 담장 사이의 골목길. 사찰 뒷편 승탑이 있는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다. 큰 길 양쪽으로 크고 작은 매화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순천 선암사 선암매, 천연기념물 488호 선암사 선암매는 원통전.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 정도가 위치한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와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와가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하고 있어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매화 꽃이 필때면 매화를 보기 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들.
선암사 대웅전 서쪽에는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 옆에 있는 응향각은 크지는 않지만 내력이 있어 보이는 전통적인 사찰 요사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너머로 불전인 삼성각과 천불전과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창파당이라는 큰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다. 불전들과 마찬가지로 요사채들도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는 ‘ㅁ’자형 건물이 대부분이다.
대웅전 서쪽편에는 크고 작은 요사채와 최근에 조성된 불전들이 들어서 있다. 요사채들은 담장으로 둘러져 살림집처럼 각각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 옆에 있는 요사채인 응향각. 일반 살림집처럼 ‘-’자형 건물인 나란히 세워저 있으며, 담장으로 둘러져 독립된 마당이 있다.
응향각 안쪽 마당에 있는 와송이라 불리는 오래된 소나무이다.
크고 작은 요사채와 불전이 있는 대웅전 서쪽편 공간. 많은 건물이 있지만 지금도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
선암사 뒷편 승탑들
선암사 사찰 뒷편 언덕에는 비교적 넓은 차밭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주위 동승탑(보물 1184호)와 북승탑(보물 1185호)가 세워져 있다. 또한 선암사에서 300 m 정도 떨어진 대각암에는 의천의 승탑(보물 1117호)가 있다.
각황전 뒷편에 세워져 있는 2기의 사적비.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에 사찰을 크게 중건하면서 세웠다.
사적비 뒷편 언덕에 있는 동승탑(보물 1185호)이다. 높이 3.16 m로 선암사 승탑 중 가장 크다. 승탑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양식등으로 볼 때 고려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승탑(보물 1184호)이다. 선암사 뒷편으로 언덕에 세워져 있다.
선암사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번지로, 조게산(해발 884 m) 장군봉 아래에 위치한다. 사찰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 신라말 도선국사 창건설 등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로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여 그 규모가 법당 12동, 전각 12동, 방 26개, 산내 암자가 19개에 이르렀다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략으로 전각이 불에 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정유재란 이후 1660년에 경잠.경중.문정대사가 8년 동안에 걸쳐 중창불사를 하여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숙종 7년(1681) 호암약휴가 제4차 중창불사를 주도하여 원통전 관음상, 53불전, 대법당 오십전, 승선교 등 잇따른 불사가 이루어졌다. 순조 23년(1823)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명부전 등이 소실되어 다음해에 해붕과 눌암.익종 세 대사가 제6차 중창불사를 하고 일시 고쳐졌던 산 이름을 청량산에서 조계산으로, 사찰 이름을 해천사에서 선암사로 다시 회복하여 명실상부한 옛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해방이후 1948년의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비구.대처승간의 대립으로 일부 건물이 유실되기도 하였으나 최근 대부분의 전각이 수리되었다. 승선교를 비롯한 지정문화재 24점 이외 선암사성보박물관에는 2,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 문화재청
- 두산백과
-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