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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장선리 유적(사적), 삼한시대 마한의 주거유적이 확인된 곳

충남 공주시 탄천면 장선리에 장선리유적지(사적)이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무덤, 마한의 생활유적 및 조선시대 유적이 발굴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언덕 위 평탄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가운데 구덩이와 주변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인근 부여 송국리 유적지와 거의 비슷한 형태이다. 원삼국시대의 주거지는 하나 또는 여러개의 흙을 파서 만든 큰 구덩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사서『삼국지』표현된 마한사람들의 생활모습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토유물로는 송국리형토기와 석기류, 계란형 토기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용 토기 등이 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휴계소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고속도로 탄천휴게소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탐방로 계단을 통해 유적지를 들어갈 수 있다. 유적지가 위치한 탄천면 일대는 공주시, 부여군, 논산시가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계룡산을 비롯하여 금강 이남으로 비교적 산이 많은 편이며, 남쪽으로는 논산 일대의 넓은 평야가 있다. 산을 등지고 있고 비교적 물이 풍부하여 농사에 적합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근 부여 송국리 유적과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

<공주 장선리 유적지(사적)>

천안.논산고속도로 휴계소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지이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무덤, 원삼국시대 마한의 주거지 등이 확인되었다.

<탄천휴게소에서 장선리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

앞쪽에 보이는 언덕에 장선리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유적지 입구에 재현해 놓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둥근 형태로 굴을 파서 만든 원형 수혈주거지이다.

<언덕에서 보이는 모습>

휴게소 탐방로를 따라 언덕에 올라서면 유적들과 멀리 계룡산 일대가 보인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탄천휴게소>

<마한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 유적인 토실>

발굴이 끝난 후 흙으로 덮어 놓고 있다.

<장선리 토실유적 공간활용 추정개념도>

마한의 생활 유적중 토실(土室)은 지하에 하나 또는 여러개의 굴을 연결하여 개미굴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에 표현된 마한의 주거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발굴당시의 주거유적 모습>

여러개의 굴이 연결되어 있다. 중국 역사서에 표현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마한 토실, 집이 마치 무덤과 같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마한인은 지붕을 풀로 덮은 토실에서 사는데, 가옥의 형태는 무덤과 같고 그 출입구는 위에 있다. 토실 속엣 온 집안 식구가 함께 살기 때문에 어른.아이와 남녀의 분별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계단을 두고 출입해야 할 정도로 외부 지면과 2~3단의 차이를 둔 토실을 만든 이유는 겨울철의 추운 외부 공기를 차단시켜 실내 기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여박물관, 2012년)


<계란모양토기, 공주 장선리, 마한, 공주박물관>

<완(Bowl), 깊은바리, 바리, 공주 장선리, 마한. 부여박물관>

<가락바퀴, 공주 장선리, 마한>

<장선리 유적 전경>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 원형유구 30여기, 석관묘 1기, 옹관묘 1기, 마한시대 주거지로 추정되는 토실유구 39기, 장방형 주거지 5기, 장방형 수혈유구 15기, 횡혈묘 1기가 확인되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앞쪽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 있다.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유적>

<다양한 곳에서 확인된 다양한 유적들>

<언덕에 위치한 토실들>

경사진 언덕에 마한사람들의 주거유적인 토실들이 자리잡고 있다.

공주 장선리유적, 사적, 충남 공주시 탄천면 장선리
공주 장선리 유적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상.하행선 휴게소 부지를 조성하는 중에 확인된 유적이다. 하행선 휴게소부지 가운데 발굴조사가 실시된 약 17,000 ㎡의 면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분묘유적, 마한의 생활유적 및 조선시대유적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원형의 수혈주거지로서 인접하고 있는 부여 송국리 유적과 문화맥락을 같이 하며, 주거지와 저장구덩이의 배치관계는 당시의 생활상이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한(馬韓)의 생활유적 중 토실(土室)은 지하에 하나 또는 여러 개를 연결하여 개미굴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중국 사서인 『삼국지』의 “거처는 초가에 토실을 만들어 사는데, 그 모양이 마치 무덤 같고 그 문은 윗 부분에 있는데 온 집안 식구가 그 속에 함께 산다.”라는 기록과 일치한다. 그 외에 장방형(長方形)의 수혈주거지와 수십기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조사되어 당시 촌락의 규모나 성격, 주거양식 등을 유추할 수 있다. 공주 장선리 토실 유적은 문화사적.고고학적으로 삼국시대 초기 주거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청동기 시대 유구와 중첩되어 있어 이 지역에서의 주민 및 생활상의 시대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