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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토성(사적), 백제 무왕이 왕궁리 궁성과 함께 세웠던 산성

전북 익산시 금마면 오금산에 있는 익산 토성(사적)이다. 해발 100 m 정도인 오금산 정상과 남쪽 계곡에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오금산성 또는 보덕성이라 불렀다. 7세기 초 백제 무왕이 익산 왕궁리에 궁성을 조성할 때 같이 쌓은 것으로 보인다. 산성은 둘레 690 m로 넓지 않은편이다. 원래 백제식 토성으로 쌓았다가 이후에 석축을 보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백제 사비기, 통일신라와 고려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익산은 백제 왕실이 멸망하기까지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던 지역으로 왕궁리유적.쌍릉.미륵사지.제석사지 등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왕궁리 유적은 무왕의 천도설과 관련된 곳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쌍릉은 7세기에 만들어진 돌방무덤으로 부장된 나무널은 무령왕릉 나무널과 같은 일본산 금송으로 만들어졌다. 미륵사는 미륵신앙을 배경으로 세워진 당대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다.

<익산 토성(사적)>

백제 무왕이 익산 왕궁리에 궁성을 건설할 때 같이 축성했던 것으로추정되는 곳이다. 원래 흙을 다져서 쌓은 토성이었으나 이후에 석축을 쌓아 보강하였다.

산성 아래에는 익산 쌍릉이 있으며, 동남쪽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가, 북쪽으로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미륵사지가 위치하고 있다. 백제 무왕이 익산지역을 경영하기 위해 이 산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 있는 미륵산성, 용화산성 등과 함께 호남지방에서 부여로 연결되는 교통로를 지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쪽 고도리에서 본 익산 토성.>

나즈막한 동산으로 서쪽편에 익산 쌍릉이 자리잡고 있다.

<남문으로 오르는 길>

익산 쌍릉 앞을 지나는 길을 따라 약 1 km 정도 들어가면 토성을 오르는 입구에 도착한다.

<산성으로 오르는 길>

산성은 100 m 정도 높이의 오봉산 아래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으로 마을에서 10여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된다.

<산성 남문 아래에 있는 연못>

<남쪽 성벽>

성벽의 높이는 약 4 m이고 너비는 5.5 ~6 m이다. 남쪽편 성벽은 바깥쪽으로 약간 내어 석축을 쌓아 보강하였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중간쯤에 남문 터가 남아 있다.

<남문터>

남문은 처음 쌓은 성벽의 토루를 잘라 만들었는데, 서쪽편에는 토성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문터의 바닥에는 돌을 깔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익산 토성 내부>

둘레 690 m 로 내부 면적이 넓지는 않은 편이다. 많은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장기적으로 농성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구조이다.

<산성 서남쪽 모서리에서 본 남쪽편 성벽>

백제 토성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구조이다. 백제가 쌓은 산성 중에서는 흔치 않은 형태인 계곡을 중심으로 산성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서남쪽 모서리에서 본 모습>

누대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서남쪽 모서리에서 내려다 본 서쪽편 모습이다. 아래쪽에 익산 쌍릉이 자리잡고 있다.

<오금산 정상부를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산의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고 있으며 토축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정상부>

서쪽 성벽 안쪽으로는 약간의 평탄한 공간이 있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기와같은 건춝부재 등이 출토되고 있다.

<산성 서쪽 성벽>

<북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북쪽 성벽>

<오금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성벽>

인공적으로 토축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몽촌토성 등에서 볼 수 있는 백제계 토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쪽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멀리 미륵사지 석탑을 수리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하얀천막을 하고 있는 구조물과 미륵사지가 있는 미륵산이 보인다. 미륵산에도 산성이 설치되어 있다.

<산성내 건물터 등이 남아 있는 오금산 정상부>

<오금산 정상부>

주변의 산성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이다.

<정상부에서 내려다 보이는 금마면과 왕궁면 일대>

왕궁리 유적지와 제석사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 성벽>

<산성 남동쪽 모서리>

부근에서 기와와 토기 등이 출토되어 누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동쪽 모서리에서 본 남쪽 성벽>

<익산 쌍릉 부근에서 본 익산 토성>

익산 토성, 사적, 전북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익산 평야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오금산 구릉 위에 쌓은 이 성은,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690 m 정도이다. 오금산에 자리잡고 있어 「오금산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고구려 왕족 안승을 보덕국왕에 임명하고 이곳에 살도록 하였다고 하여 「보덕성」으로도 부른다. 이 성은 1980년과 1984년의 발굴 조사로 성의 규모와 구조가 대략 밝혀졌는데, 토성으로 축조하고 남문이 있는 골짜기에 석축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백제 말기와 통일신라의 기와와 토기 등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 때에 처음 쌓은 산성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