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박물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미륵사지(사적 150호)있는 미륵사지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는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미륵사지에서는 당시 사찰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치미를 비롯하여 백제시대의 건축부재와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금동향로(보물 1753호)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대에 만들어진 유리, 철, 청동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최근 미륵사지석탑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화려한 사리장엄이 출토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때 이곳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 신라 황룡사에 버금가는 최대 규모의 사찰로 3탑, 3금당식의 독특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앞쪽에 목탑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 석탑이 세워져 있고, 뒷편에도 3개의 금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이 있고, 그 뒷편으론 3개의 승방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까지 조금씩 축소되어오다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익산 미륵사지 절터에서 출토된 치미. 궁궐 정전이나 사찰 금당에서 주로 사용되는 대형 기와이다. 조선시대 이후 건물에는 잘 보이지는 않는 형태이다. 지금도 중국 자금성 주요 건물이나 일본 사찰 등에서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치미

치미
치미는 망새라고도 하는데, 사찰이나 궁궐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을 장식하는 특수 기와이다. 치미는 지붕에 얹어서 웅장하게 보이는 용도 외에 재앙을 피히기 위한 벽사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새 꼬리 형태의 치미는 하늘의 신과 지상의 인간을 연결하는 강녕사상이 내포되어 있다는 설이 있다. 치미는 중국 후한대에 반우라고 불리운 기록이 처음으로 보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실물로는 고구려지역의 원오리사지, 정릉사지, 안학궁지, 백제지역의 공주, 부여의 부소산 서복사지, 익산의 미륵사지, 신라지역의 황룡사와 안압지 출토 치미 등이 있고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전시된 치미는 동원 승방지에서 출토되어 복원되었는데, 바로 위와 같은 기능과 의미에서 접근 할 수 있는 형태의 백제시대 치미로 보여진다. 치미는 머리.몸통.꼬리.종대.후미의 깃.배와 등, 깃 부분을 덧분 것인데, 아래 위가 나뉘어진 2단 구조를 하고 있다. 몸통 부분에는 머리에서부터 종대까지 새의 깃털을 표현한 듯한 방사형의 층단이 전면에 나 있고, 종대부의 층단 내에는 물고기 비늘 모양이 반타원형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후미 깃 끝마다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와 같은 구멍은 꼬리와 배 등에도 있으며 구멍에는 치미를 장식하던 장식품을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새의 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몽통 및 종대부는 활처럼 힘차면서도 그 선이 유연한데, 이는 버선코같은 꼬리 끝과 함께 우하함을 더하고 있다. 전시된 치미의 크기는 높이 99 cm, 길이 85 cm, 머리너비 28 cm, 후미 깃의 길이 53 cm이다. (미륵사지박물관, 2009년)

OLYMPUS DIGITAL CAMERA녹유를 입힌 서까래 기와, 7세기

미륵사지에서만 확인되는 서까래 기와는 7개의 연꽃잎이 배치되고, 꽃잎 안에는 다섯 잎의 인동초로 장식되었습니다. 자방 한 가운데에는 서까래에 못으로 고정하기 위한 네모난 구멍이 있습니다. 막새 옆쪽의 테두리에는 톱니무늬를 두르고 둥근 점을 연속으로 배치했는데, 나무로 만든 바깥틀을 사용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 수막새, 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연꽃무늬 수막새, 7세기

미륵사지에서는 연꽃잎 안에 꽃술을 장식한 6엽의 수막새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일부 수막새에는 주칠을 더해지지도 했으며, 건축물의 위상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었습니다. 8엽의 연꽃무늬 수막새는 전체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시기적으로 빠른 고식으로 생각됩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얼굴무늬수막새, 7세기

SANYO DIGITAL CAMERA미륵사지 출토 기와.

SANYO DIGITAL CAMERA미륵사지 출토 수막새와 암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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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새겨진 기와

OLYMPUS DIGITAL CAMERA도가니와 유리가공품, 7세기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 중 녹색유리구슬, 유리판과 유사한 유리편과 가공품이 동원의 금당지와 목탑지, 그리고 공방지에서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공방지에서는 유리를 제작하는데 사용한 도가니가 함께 출토되어 사찰 내에서도 유리를 자체적으로 제작했음을 알려줍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1.유리판, 사리공 바닥에 깔았던 유리판입니다. 사리공 바닥의 너비에 정확히 맞도록 처음부터 주문 제작된 특수 유리판으로 추정됩니다.

OLYMPUS DIGITAL CAMERA2. 유리구슬

미륵사지 출토 유리
유리는 이집트에서 처음 제작되어 로마를 거쳐 각지로 확산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동래 조개더미와 경주 구정동 등에서 유리구슬이 출토된 바가 있다. 이들 유리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곧 자체적으로 유리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곧 자체적으로 유리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리는 그 성분에 따라 나뉘는데 서양의 유리안 소아(Na)유리와 중국에서 전국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납유리가 있으며 대체로 5세기경에는 서양의 소댜유리가 중국을 포함한 우리나라에서도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유리른 유리와 다른 재질, 즉 철심을 결합하여 장식으로 이용하는 것이나 판유리 등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것이다. 특히 판유리는 일본의 경우 몇몇 고분을 중심으로 소량이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미륵사지에서는 다량으로 출토되어 생산능력이 월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륵사지에서는 이 외에도 대단히 얇은 유리편과 다양한 색조를 보이는 유리편이 출토되어 백제시대의 유리공예가 높은 수준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륵사지박물관, 2009년)

OLYMPUS DIGITAL CAMERA금동풍탁, 7세기,

풍탁은 절, 누각 등의 처마 끝에 다는 경쇠로서, 풍령 또는 풍경이라고도 합니다. 미륵사지 출토 금동풍탁은 종의 형태와 유사하며, 바람을 받아 소리를 내는 바람판은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백제 풍탁과 바람판은 익산과 부여 지역에서 출토되었으며, 통일신라 풍탁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보물 1753호), 통일신라

향은 악취를 없애고 해충을 쫓거나 실내의 습기를 제거하고자 쓰였던 것이다. 이 향을 불살라 연기를 태우는 그릇이 바로 향로이다. 나아가 잡귀나 잡념까지도 제거해 준다. 하여 절에서는 물론 각종 제사 의례에도 사용되었다. 이처럼 향을 담고 피우기 위한 향로는 기원전 8세기 서아시아의 아시리아 나무롯에서 발견된 원통도장의 문양과 중국 한나라 때에 청동기로 제작된 박산향로로 보아 이미 불교가 전래되기 앞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박산향로가 전대된 사실을 옛 낙랑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지만 향로의 본격적인 제작과 사용은 역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졌다고 짐작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의 쌍영총 고분벽화 행렬도에 보이는 머리에 인 향로의 모습을 통해 삼국시대 후반쯤부터 이미 향로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절에서 쓰인 삼국시대의 향로를 실물로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는 총 높이 30.0 cm, 지름이 29.7 cm의 비교적 큰 크기로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원형으로 높게 솟은 뚜껑과 납작한 대야형의 낮은 몸체, 4개의 다리로 구성된 대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뚜껑에는 연화문, 하트, 구름 모양의 장식이 있으며, 몸체에는 사자얼굴다리와 수면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금동향로는 구리가 87.5 %, 주석이 8.3 % 의 비율로 주조되었는데 몸체와 다리, 그리고 몸체에 붙어 있는 장식을 각각 따로 만들어 리벳으로 부착하였다. 향로의 표면은 금-구리 아말감 도금법으로 도금하였다. 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의 제작 시기는 향로의 양식적 특징상 당나라 보다는 뒤늦은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하는 의견과 향로 뚜껑에 보이는 고식의 연화문 구조와 균형 잡히고 세련된 기형과 중후한 다리 장식 등이 통일신라 미술의 전성기 이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따라서 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는 백제말기부터 통일신라 중기 8세기 말 이전에는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륵사지출토 금동향로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한번도 확인되지 않은 4개의 짐승얼굴 모양다리 향로의 첫발견 예라는 점에 의미가 깊다. 또한 뚜껑의 8옆 연화문 표현은 부드러우면서도 그 끝단의 중앙 부분을 살짝 말아 올린 유려한 모습으로서 미륵사지 출토 백제 연화문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뚜껑을 몇줄의 띠를 둘러 구획하고, 아래쪽에는 구름 형태의 독특한 연기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연기배출의 역할과 함께 장식적 요소를 살린 점이 돋보인다. 즉 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 전체에 보이는 부드럽고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강인한 힘이 함께 내재된 균제미는 이미 한국적으로 소화된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안내문, 2009년, 익산 미륵사지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청동숟가락, 청동젓가락, 청동국자, 청동굽 접시, 고려시대

SANYO DIGITAL CAMERA청동향료대, 통일신라, 청동소형향완, 고려, 토기 향로, 고려

SANYO DIGITAL CAMERA청동탑상륜, 고려, 금동탑상륜, 통일신라, 금동탑 상륜, 고려

SANYO DIGITAL CAMERA청동종 조각, 고려

SANYO DIGITAL CAMERA미륵사지 출토 청동제품

미륵사지 발굴조사에서는 백제와 통일신라 시대의 중심곽 유구를 비롯해 일부 그 상층과 사역 서편 고려시대 건물지, 북편 조선시대 건물지 등에서 각기 시기를 달리하는 각양각색의 청동제품이 출토되었다. 청동제 유물은 불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불구류와 일상생활용구로 크게 구분되어 진다. 청동제 불구류는 청동제에 금을 도금한 금동제 불구로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해 금동제탑상륜부.판불.방울.용도를 알 수 없는 화형 장식품이 있고, 청동제로는 조성내역 등이 명문된 동종편.탑재파편.토심이 심어져 있는 불두편이 있다. 일상생활용구로는 그릇 등의 용기로 청동제 병.발.굽접시.화형접시.향완.향로대.시저가 있고, 장신구로 동경편.뒤꽂이.빗치개.반지.요대장식 등이 있다. 그밖에 청동제 추난 동전이 있는데 특히 순화원보, 상부원보, 천성원보, 원풍원보, 숭녕중보, 건륭통보 등 절대편년이 가능한 동전들이 출토되어 공반유물들의 편년 설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미륵사지박물관, 2009년)

SANYO DIGITAL CAMERA미륵사지출토 철제품

미륵사지출토 철제품은 용도상 마구류, 무구류, 용기류, 농공구류, 건축부재류로 분류 가능하며 대부분 실생활용품으로 제작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중심곽 유구를 비롯해 사역 서편 고려시대 건물지에서 주로 출토되었고, 특히 사역 서편의 통일신라시대 공방지에서는 철제유물을 비롯해 철락(쇠똥)이나 도가니편.목탄.동물뼈가 수습되어 한때는 철제품을 자체생산 공급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마구류에는 재갈멈치, 앞이 트여 있지 않은 주머니처럼 생긴 호형등자, 말편자, 마차류의 바퀴 회전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철차관이 있고 무구류로는 철갑편과 함께 철촉이 있는데 유엽형의 촉두를 가진 세장한 촉신에 긴 슴베가 달린 것과 소형의 사두형 철촉이 출토되었다. 용기류에는 초두와 솥이 있다. 초두는 대나무 마디모양 손잡이가 있고 3개의 다리 중 하나는 붙어있던 흔적만 남아 있으며 2개는 짧게 부러져 있다. 솥은 구연 아래 전이 붙어 있는 형태이며 통일신라대 고앙지에서 수습된 예가 있다. 농공구로는 철부.철겸.철착.따비.보습.곡갱이.쇠스랑.집게.집게.가위가 있으며, 건축부재로는 철정을 비롯해 자물쇠.열쇠.문고리 등이 있다. 이밖에도 철제약연, 용도를 알 수 없는 이형철제품이 수습되었다.  (미륵사지박물관,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칠접시, 나무신

신은 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지역과 문화에 따라 여러가지 재료로 각종 형식의 것이 만들어져 이용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신발이 표현되어 있으며 백제 신라의 고분에서는 금동제 신발이 출토된 것이 있다. 그러나 평상생활에서 사용된 신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짚신과 나막신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이 나무 신은 실제 사용 흔적이 신의 밑바닥에 남아 있어 실용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 형태가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게다와 사로 통하는 면이 있어 양국 간의 문화적 교류를 말해 주는 것의 하나이다.  (미륵사지박물관, 2009년)

SANYO DIGITAL CAMERA토제추(고려), 철제추(통일신라), 청동추(고려)

SANYO DIGITAL CAMERA납석 그릇,  토제벼루

SANYO DIGITAL CAMERA바둑알.

OLYMPUS DIGITAL CAMERA사발, 7세기

SANYO DIGITAL CAMERA토기 단지.

토기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신석기시대부터 생활용기로 만들어져 형태나 무늬, 제작기술, 소성방법 등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다른 유물에 비해 출토량이 많고 기형과 무늬에 시대적인 특징이 나타나 있어 고고학적인 연구과정에서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이다. 미륵사지에서 기와류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수습된 유물이 토기로서 사찰과 관련된 의례적인 용기도 보이고 있으나 소량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의 토기가 일상생활용기이다. 실생활에 사용된 토기는 용도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며, 바닥이 넓은 평저를 이루는 등 안정되고 소박하다. 이에 비하여 많이 출토되지는 않으나,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토기는 장식적이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원형 탑 형태의 토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때로는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물을 표현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신앙절차에 사용되는 용기로 볼 수 있다. 실생활 용기로서의 토기는 백제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으나, 의식용 토기는 자기와 청동기가 의식용 용구로 보편화되는 고려시대를 전후하여 사라진다. 미륵사지 출토 토기는 사역 중심곽과 외곽지역에서 복원가능한 740점과 기형을 알 수 있는 13,308점 등 총 14,048점을 수습하였는데, 이들은 기종에 따라 뚜껑, 기대, 호, 등잔, 완, 병, 접시, 반, 시루, 주기, 벼루, 기타토기(삼족토기, 고배, 조형토기, 향로형토기, 도가니, 전달린토기, 명문토기)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호는 광견호, 단경호, 편호, 광구파수부호, 부수부호, 우각형파수부호, 대호로 세분되고 병은 평저병, 편병, 편구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종간의 출토량이나 시대폭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뚜껑, 광견호, 광구파수부호, 대호, 평저병, 반 등은 백제부터 조선시대까지 보이고 있으나 파수부호, 완, 시루는 조선시대에는 보이지 않고 있다. 등잔, 접시, 벼루는 백제와 통일신라기에만 보이고 있으며 편구병은 통일신라기에, 편병과 편호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매병은 고려시대에, 단경호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주로 보인다. 우각형파수부호, 기대, 시루, 주기, 벼루, 기타토기 등은 제한된 지역에서 적은 수만 수습되었고, 대부분 전체형태를 알 수 없는 편으로 출토되었다. 토기는 백제 후기에서 조선시대까지 사찰의 경영시기와 같이 사역 중심곽에서는 백제-통일신라시대의 토기, 서원을 중심으로 한 서역 서편과 주변지역의 후대 건물지에서는 고려시대 토기, 사역 북편 후대건물지에서는 조선시대의 토기가 수습되어 사찰의 창건시기와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미륵사지박물관, 2009년)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제 사리외호.금제 사리내호, 金銅製舍利外壺.金製舍利內壺, 639년, 익산 미륵사지

OLYMPUS DIGITAL CAMERA금제 사리봉영기, 金製舍利奉迎記, 639년, 익산 미륵사지. 2009년 발견된 것으로 미륵사지 석탑 창건 내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이었던 사택(沙澤)씨 출신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살상 파편, 7세기

미륵사지 중원 서회랑지의 동편 기단 밖 소토층에서 출토된 보살상은 미륵사 창건기 불교조각의 단면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상은 거푸집을 써서 성형한 소조상을 구워낸 이른바 전불(塼拂) 편으로, 아마도 공방에서 대량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전의 내벽을 장엄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SANYO DIGITAL CAMERA미륵사지 출토 불상 조각

SANYO DIGITAL CAMERA석조불상.

SANYO DIGITAL CAMERA금동장식(백제), 금동방울(통일신라), 금동투조장식(백제)

OLYMPUS DIGITAL CAMERA3. 소조 나발, 4. 은제 손톱장식

OLYMPUS DIGITAL CAMERA5. 은제 관 꾸미개,

OLYMPUS DIGITAL CAMERA6. 은덩어리, 7. 은제 허리띠 꾸미개

OLYMPUS DIGITAL CAMERA8. 도자(복제품)

진단구
미륵사지 석탑 사리용기가 안치된 심주로 가는 통로의 바닥석 아래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사찰 건물의 기단 등에 나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진압하기 위하여 기단 하부 축조시에 각종 물건을 공양하는 진단구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소조 나발과 은제 손톱장식은 중국 남조 장간사 탑 사리 공양 중에 탑 아래에 매납했다는 불조발(佛爪髮), 즉 부처의 손톱과 머리카락 봉안 의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1. 청동합

OLYMPUS DIGITAL CAMERA2. ‘상부달솔목근’ 글자를 새긴 청동합

OLYMPUS DIGITAL CAMERA3. 금구슬, 4. 금판, 5. 금못,  6. 곱은옥, 7. 호박구슬, 8.마노구슬,  9. 유리구슬, 10. 진주구슬

불교공예
사찰에서 불교의식을 행하거나 승려들이 수행할 때 필요로 하는 불구는 불교도에게 있었서 불(佛).법(法).승(僧) 삼보에 대한 귀의를 얻기 위한 도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불구는 주로 금속으로 만들어지며 나무나 가죽, 점토로도 제작되고 크게 의식법구.장엄구.공양구.생활용구로 구분된다. 의식법구는 불교의식을 행할 때 장엄한 분위기를 위해 쓰여지는 집구로서 범종.목어.운판.금고의 불전사물이 이에 해당된다. 사찰의 종루나 종각에 걸어두고 예불의식 때 대중을 모으거나 때를 알리는데 사용된다. 장엄구는 불.보살을 모신 불전을 장엄하게 꾸며주는 것으로 각종 법회나 행사 때 비단이나 종이로 된 깃발로 장식하나는 당(幢). 번(幡). 불볼살을 장엄하는 천개.불달.화만.부처의 사리를 넣는 용기로서 탑안에 봉안되는 사리구 등이 있다. 공양구는 불.보살에게 바치는 공물을 담는 그릇을 말하며 공양물로는 향(香).화(花).등(燈)이 기본을 이루고 이외에 차나 감로수가 불전에 공양된다. 이러한 공물을 담는 공양구로는 향로.화병.촉대.정병.발우 등이 있으며 금속제를 비롯해 석제, 토제, 목제, 청자.분청.백자 등으로 제작되었다. 이 밖에 생활용구로서 승려들이 지니고 다니는 석장.여의.염주 등이 있으며, 비구가 수행할 때 항상 지녀야 하는 비구십팔물로는 삼의를 비롯해 양지.조두.병.발우.좌구.석장.향로.녹수낭.수건.칼.화수.섭자(쪽집게).승상.경.율.불.보살상이 있다. 미륵사지에서는 불교의 신앙의식에 사용되는 의식법구로서 동종편이나 장엄구로서 당번을 걸었던 당간지주, 공양구로서 향로.향완.석등.음식물의 공양에 사용되었던 것들로 보이는 자기.토기류와 신앙생활에 수반되었던 실생활용구로서 금동,ㅡ 청동, 철제, 목제, 토.석제품들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미륵사지박물관,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익산 미륵사지(사적 150호). 백제 무왕이 창건한 현존하는 절터 중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미륵사지박물관
  6.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