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성과 행정, 2. 건축, 3. 무기와 전쟁, 4. 일상생활, 5. 사찰과 불교문화, 6. 능묘, 7.국제교류, 8. 지방통치
백제는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였다. 백제가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부여 부소산성과 공주 공산성에서는 당시 백제의 무기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백제의 무기로는 활과 대도, 환두대도, 쇠낫, 쇠갈고리창, 쇠창 등이 있다. 출토된 무기들은 고구려나 신라의 무기류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주 공산성 저수시설에서 제작연대가 적힌 옷칠갑옷과 말갑옷 등이 발견되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1. ‘정관십구년’ 글자를 쓴 옻칠 비늘갑옷, 645년, 공주 공산성.>
최근 공주 공산성에서 출토된 비늘갑옷이다. 백제 멸망 직전 의자왕이 공산성에서 당군에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시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다.
공산성 성안마을 저수시설에서는 ‘정관19년(645)’글자가 적힌 옻칠 갑옷과 옻칠 말 갑옷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645년은 의자왕이 당에 사신을 보내며 교류하던 시기이며, 갑옷의 폐기 시점은 660년 백제 멸망 시점으로 추정됩니다. 갑옷 위로 100 cm 이상의 두터운 볏짚층이 퇴적되어 있는 점에서 승전 기원 의례와 같은 의도적인 매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6. 쇠갈고리창, 7. 양갈래창, 8. 쇠창, 7세기, 부소산성>
<9. 쇠도끼, 10. 세갈래 갈고리, 7세기, 부소산성>
<15. ‘대당’ 글자를 찍은 수막새, 7세기 후반, 부소산성.쌍북리>
사비도성에는 당군의 점유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성의 핵심지역에서 ‘대당’을 찍은 수막새가 발견되고, 가마터에서는 장안성 출토품과 같은 형태의 수막새가 확인되었습니다. 당군이 당식 기와를 현지에서 제작하고 새로운 관청 건물을 세워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전쟁
사비도성의 배후 산성인 부소산성에서 백제군과 나당 연합군의 접전을 보여주는 다양한 무기가 출토되어 당시의 전쟁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무기는 원거리 무기인 활과 화살, 근거리 무기인 칼과 창, 신체를 보호하는 갑옷과 투구, 수성용 무기인 낫과 갈고리창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웅진도성인 공산성 저수시설에서는 ‘정관 19년(645)’이라고 쓰인 옻칠 갑옷과 철제 갑옷, 옻칠 말 갑옷과 말머리 가리개, 여러 종류의 칼과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의자왕이 나당 연합군을 피해 거처를 옮긴 뒤 5일 만에 항복을 선언한 공산성에는 그의 이루지 못한 꿈이 전쟁의 흔적과 함께 묻혀 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 중앙박물관
- 문화재청
- 두산백과
-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