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특별전, 세계유산 백제] 백제인의 일상생활

1. 도성과 행정2. 건축3. 무기와 전쟁4. 일상생활5. 사찰과 불교문화6. 능묘7.국제교류, 8. 지방통치

백제가 한강 이남으로 물러난 웅진기, 사비기의 백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들은 당시 도읍이었던 공주 공산성, 부여 도성, 익산 왕궁리에 조성했던 궁궐터 등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부여 부소산성 아래 궁궐터 주변과 익산 왕궁리에서는 화려한 공예품들을 만들어 지배계층에 공급했던 공방터를 비롯하여, 제기 등을 보관했던 창고, 사람들이 살았던 건물터, 정원시설 등이 확인되고 있다. 출토된 유물들로 볼 때 제작기술이나 수준이 상당히 높았으며, 중국 남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목기 각종, 6~7세기, 공주 공산성

OLYMPUS DIGITAL CAMERA목기 각종, 6~7세기, 공주 공산성

OLYMPUS DIGITAL CAMERA발견당시 공산성 성안마을 목곽고 모습.

공산성 성안마을에서 발견된 목곽고는 상부 구조까지도 잘 남아 있는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가로 3.2 m, 세로 3.5 m, 깊이 2.6 m 공간에 너비 20~30 cm의 판재를 대고 기둥으로 고정하였으며, 내부에서 기와가 출토되어 지붕 구조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목곽고에서는 나무로 만든 망치, 공이, 괭이, 손잡이 등이 수습되어, 백제의 목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목재를 결구할 때 주로 사용하는 나무 망치는 현대 망치와 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금도가니와 금소재, 1. 금도가니, 6세기, 부여 관북리, 2. 금도가니, 7세기,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3. 금소재, 7세기,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1. ‘官’도장을 찍은 도가니, 6세기, 부여 관북리.

관북리 유적 나지구에서 출토된 도가니 중에는 몸통과 뚜껑에 ‘관’ 글자를 찍은 것이 있어 이곳이 관영 시설이었다는 추정에 신빙성을 더해줍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2. 유리도가니, 3. 유리도가니, 7세기, 익산 왕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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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리편, 7세기,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5. 동 도가니, 6세기, 부여 관북리, 6. 동 도가니, 7세기,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7. 숫돌, 7세기,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8. 거푸집, 6세기, 부여 관북리

공방
백제의 장인은 금, 은, 동, 쇠로 만든 금속 제품을 비롯해 토기, 기와 등을 생산했던 전문 기술자입니다. 사비도읍기에 백제의 장인들은 관영 수공업을 관리하는 관청에 편제되었습니다. 장인들은 ‘박사(博士)’라는 칭호와 관등을 받았으며, 왜와 신라에 파견되어 숙련된 기술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장인들이 작업했던 공간인 공방이 부여 관북리와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도가니, 거푸집, 숫돌, 금소재, 유리편 등이 출토되어 왕실이나 관청에서 필요한 각종 제품을 생산했음을 보여줍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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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굽달린 사발, 6세기, 부여 관북리

OLYMPUS DIGITAL CAMERA3. 전달린 토기, 6세기, 부여 관북리

OLYMPUS DIGITAL CAMERA‘북사’ 도장을 찍은 토기편, 6세기, 부여 관북리, 6세기 부여 부소산성

OLYMPUS DIGITAL CAMERA1. 굽달린 사발, 6세기, 부여 관북리

굽달린 사발은 사비기 이후 상위 계층의 수요 폭증 등으로 인해 규격성과 정형성을 갖추면서 도성 내의 생활용기로 급부상했습니다. 뚜껑을 덮었을 때 몸체와 이어지도록 음각선이 시문되어 있고, 몸체 하단에는 ‘七’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2. ‘북사’도장을 찍은 항아리, 6세기, 부여 쌍북리

OLYMPUS DIGITAL CAMERA3. 그릇받침, 6세기, 부여 관북리

그릇받침은 실생활 보다는 의례 행위 때 사용된 기종으로, 공양물을 담은 둥근 바닥의 항아리를 그릇 받침에 올려 사용합니다. 관북리 유적의 기와무지에서 출토된 이 그릇 받침은 제사과정에서 매납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공방 조업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4. 연꽃무늬 수막새, 부여 관북리 국립부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암키와, 부여 관북리 국립부여박물관

‘북사; 건물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지붕은 연꽃무늬 수막새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남쪽 기단 아래에서는 이 건물의 처마에서 떨어져 그 자리에 파묻힌 수막새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북사(北舍)와 제기창고
부소산 남쪽 기슭의 시가지 북쪽 끝에는 기와를 쌓은 기초 위에 만든 3동의 건물 터가 있었습니다.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지붕을 연꽃무늬 수막새로 장식했습니다. ‘북사’라는 글씨를 찍은 큰 항아리가 발견되어 왕궁이나 관청에 속한 건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근에서 합(盒)과 접시, 전 달린 그릇과 같은 회백색 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크기다 대.중.소로 규격화되어 여러 겹으로 포개거나 일부 묶은 상태로 쓰러진 모습이었습니다. 건물 안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 한쪽으로 쏟아진 것으로 보이며, 이런 종류의 그릇은 제사나 종교의식에 사용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 건물을 제기 창고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양직공도」에 그려진 백제 귀족.

「양직공도」는 6세기 양나라 원제가 즉위하기 전 형주자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편찬한 그림책으로 다양한 외국 사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백제 사신은 단아한 용모에 관모를 쓰고 무릎을 약간 덮은 두루마리를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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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부여 쌍북리, 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가(煙家), 익산 왕궁리, 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1. 단지와 숫돌, 7세기,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2. 삽날과 도끼, 7세기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3. 부뚜막 모양 토기, 7세기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4. 씨앗(살구.다래.참외), 6세기, 부여 관북리 목곽고

부엌터 출토유물
2015년 왕궁의 부엌터로 추정되는 남북 길이 약 12 m의 장방형 건물지가 최초로 확인되었습니다. 건물 내의 타원형 구덩이에서는 음식물을 조리하기 위한 철제솥 2점과 함께 숫돌 3점, 색재료나 액체를 담거나 나르기 위한 단지가 출토되었습니다. 철제솥을 걸어 놓고 불을 때면서 검붉게 변한 벽체와 다량의 숯, 그리고 재를 뒤집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삽날과 도끼 등이 출토되어 부엌터로 보는 견해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1. 칠그릇, 6~7세기, 부여 쌍북리, 공주 공산성

OLYMPUS DIGITAL CAMERA 1. 칠그릇, 6~7세기, 부여 쌍북리, 공주 공산성, 2. 나무 빗, 6세기, 부여 쌍북리

OLYMPUS DIGITAL CAMERA3. 짚신, 7세기, 부여 궁남지

OLYMPUS DIGITAL CAMERA4. 정원석, 7세기, 익산 왕궁리

정원 시설의 서쪽 지역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단단하게 굳어진 진흙 또는 석회암 사이사이에 사암 알갱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경의 건강성 왕궁지, 조가산 석기 가공 유적, 대동의 영고릉에서도 이와 같은 정원석이 발견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이 원산지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백제 당시 고급 정원석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왕궁의 정원을 꾸몄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5. 얼굴무늬 토기편, 6세기, 부여 관북리, 얼굴을 그린 굽 달린 사발, 6세기, 부여 관북리

OLYMPUS DIGITAL CAMERA1. 변기형 토기, 7세기, 익산 왕궁리

변기형 토기는 여성들이 쓰던 용기입니다. 부여 군수리와 익산 왕궁리 등 사비시기 이후 도성 유적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주로 상위 계층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입구가 넓적하고, 양쪽에 손잡이가 있으며, 앞턱을 높게 만들거나 뚜껑 역할을 하는 부분을 만들어 내용물이 밖으로 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호랑이 모양 변기, 2. 6세기 부여 관북리,

OLYMPUS DIGITAL CAMERA호랑이 모양 변기, 3. 6세기 부여 군수리

OLYMPUS DIGITAL CAMERA4. 뒤처리용 막대, 7세기, 익산 왕궁리

왕궁리 유적 서북편의 석축 배수로 남쪽에서 삼국시대의 대형 화장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대형 화장실은 토광을 파고 나무기둥을 세워 발판을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벽면에 점토를 덧발라 내용이 빠져나가거나 외부의 지하수가 침투되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내부에서 회충, 편충 등의 기생충 알과 씨앗류, 뒤처리를 했던 막대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일상생활
백제인의 일상생활 모습은 도성 안에서 확인된 건물터, 저장시설, 정원시설 등 다양한 구조물과 출토품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는 화장실과 부엌 터가 처음으로 확인되어 당시 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높이 솟은 굴뚝 위에 얹는 연꽃 봉오리 장식의 연가(煙家), 입을 크게 벌린 호랑이 모양의 변기, 옻칠을 해 우하한 광택이 나는 칠기그릇, 나무 창고에 보관한 살구나 참외 같은 과일로 차린 상 등은 당시 귀족의 문화를 보여 줍니다. 백제 사람의 얼굴이 남아 있는 토기와 기와, 부들로 정교하게 만든 짚신, 기이한 정원석이 놓인 왕궁의 후원도 발견되었습니다. (세계유산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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