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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석조(보물), 백제 왕궁에서 연꽃을 심었던 곳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석조(보물)이다. 이 석조는 사비기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부여현 관아 동헌 앞에 놓여 있었다. 사찰 입구에 놓여 있던 손을 씻고 샘물을 받아 먹던 석조와는 형태나 용도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工형 받침 위에 둥근 꽃봉오리가 형태를 하고 있는데 장식은 없지만 풍만하면서 깔끔한 곡선미를 보여 주고 있다. 궁궐 내 연꽃을 기르던 석련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처를 모시는 사찰처럼 성역화된 당시 궁궐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던 유물로 생각된다.

석조(石槽)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큰 돌을 넓게 파고 물을 받아 사용하도록 만든 일종의 돌그릇으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을 출입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수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불교와 함께 사찰을 구성하는 요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석조는 단단한 화강석을 파서 만든 큰 구조물로 그 재료의 견고성 등으로 인해서 삼국시대 이후 만들어진 많은 석조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불국사 석조는 지금도 물을 담아두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부여 석조(보물)>

사비기 백제 왕궁터인 관북리유적지에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이다. ‘工’ 자 형태의 받침돌 위에 물을 담아두는 석조를 올려 놓고 있다. 샘물을 담아두는 사찰 석조와는 달리 연꽃을 키우던 석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부여 석조>

<이 석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부여 동헌 마당에 놓여 있었다.

부여 석조, 보물, 부여 관북리 추정 왕궁터
이 석조는 왕궁에서 연꽃을 심어 그 꽃을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것으로, 工자형 받침 위에 둥근 꽃봉오리 형태의 석조가 올려져 있다. 본래 이 석조가 있었던 장소는 백제의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어 당시 왕궁에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형태가 풍만하면서도 깔끔한 곡선으로 처리되어, 백제인의 간결하고 소박한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조의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세로줄을 새기고 그 사이에 글을 새겨 넣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보인다. 글은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으로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국보 9호)의 1층 탑몸돌에 새긴 것과 같은 것이다. (부여박물관,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