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물),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상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와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물)이다. 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새기고, 그 위에 돌갓을 얹어 놓고 있다. ‘파주 용미리석불입상’이라 불렸든데, 바위로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표면에 부조형태로 형체를 새겼기떄문에 마애불상이라 한다. 신체비율이 맞지 않고 머리를 크게 만들어 거대한 느낌을 주고 있다. 왼쪽의 둥근갓을 쓴 불상은 두손이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 4각형 갓을 쓴 불상은 합장을 하고 있다.

<파주 용미리 마애불입상(보물)>

토속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불상으로 조각수법이 우수하지는 않지만, 투박하면서 힘이 넘치는 고려초기 불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술적인 아름다움은 부족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유물이다. 윤관 장군 묘역에서 국도를 타고 서울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불상 아래에는 일제강점기에 재창건된 용암사라는 사찰이 있다.

<얼굴 부분>

불상은 바위에 몸통을 새기고 그위에 갓을 쓴 머리를 올려 놓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자, 4각형 갓의 불상은 여자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연꽃을 든 모습>

왼쪽 둥근 갓을 쓴 불상은 가슴에 연꽃을 들고 있다.

<합장하는 모습>

오른쪽 4각형 갓을 쓴 불상은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있다.

<불상 뒷쪽 바위에 새겨진 글씨>

왼쪽 불상은 둥근 갓을, 오른쪽 불상은 4각형 갓을 쓰고 있는 토속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 비례에 맞지 않지만, 거대하면서 웅장해 보인다.

<앞에서 본 모습>

<왼쪽에서 본 모습>

<오른쪽에서 본 모습>

용미리 석불입상에 얽힌 전설
보물 제93호로 지정된 이곳 용미리 석불입상에는 불상 조성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 중기 12대 선종(재위 1083~1094)은 자식이 없어 셋째 부인인 원신궁주 이씨까지 맞이했으나 여전히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의 꿈속에 어느 날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이오. 배가 매우 고프니 먹을 것을 주시오.”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깬 궁주는 이 내용을 왕께 아뢰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리도록 하였더니 그 해에 원신궁주에게는 태기가 있었고, 왕자인 한산후가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출처:파주시청>

<용암사>

고려시대에 석불과 함께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사찰은 1930년 재창건되었다고 한다.

<불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보물,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그 위에는 돌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 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이라 한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까지 맞이 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들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도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가 탄생했단느 것이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