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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량사 극락전(보물), 삼국시대 금당을 연상시키는 2층 불전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 주불전인 극락전(보물)이다. 삼국시대 경주 황룡사나 익산 미륵사 등에 있었던 금당과 비슷하게 2층으로 지어진 불전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기단은 그리 높지 않다. 지붕을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1층과 2층에 화려한 공포로 장식하고 있는 다포계 건축물이다.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대웅전 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건물 또한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 2차례의 전란 중에 많은 사람이 피신할 수 있도록 했거나, 승병을 파견하는 등 전란 극복에 기여를 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량사는 후대 집권세력인 사림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생육신 중 한사람인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이었기때문에 큰 규모의 불전을 지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여 무량사는 조선 세조때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경내에 김시습 초상화를 모시는 영정각과 그의 부도탑이 있다. 부여 서쪽 만수산에 있는 무량사는 삼국시대 떄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중창하였다. 사찰 경내에는통일신라 때 금당(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극락전(보물), 오층석탑(보물)와 석등(보물)가 있다.

<부여 무량사 극락전(보물)>

미륵불을 모신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왼쪽에서 본 모습>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밖에서보면 2층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트여있다. 조선시대에 지은 불전 중에는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오른쪽에서 본 모습>

건물 1층. 낮은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려 웅장하면서도 안정감을 주고 있다.

<1층 창호>

문살과 기둥. 여러 종류의 문살 장식을 사용하고 있다.

<공포와 처마>

천장을 받치는 공포는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여 장식성을 더해주고 있다.

<추녀를 받치고 있는 활대>

<2층>

2층은 앞면 3칸이며, 1층보다는 낮게 만들었다. 내부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창문을 설치했다.

<옆쪽에서 본 2층 공포와 추녀를 받치는 활대>

<뒷쪽에서 본 모습>

<가람배치>

건물 배치는 석탑이 중앙에 있고, 뒷편에 금당이 있는 삼국시대 가람배치의 모습이 남아 있다.

<앞에서 본 모습>

무량사 석등 오층석탑, 극락전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부여 무량사 극락전, 보물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로서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인조11년(1633)에 중건되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2층은 1층의 내부고주를 상층으로 올려 2층 평면이 되게 했다. 기단은 장대석 세벌대로 쌓고 자연석 초석을 놓은 다음, 배흘림 있는 원형기둥을 세우고 네 모서리의 1.2층 추녀에는 활주를 받쳐 두었다. 공포는 다포식이며 하층 공포보다 상층 공포의 출목을 많이 만들어 화려하게 조성하였다. 내부의 살미첨차는 운공으로 조각하고 층량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매우 화려한 모습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된 건물에는 장식성이 강한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을 극락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무량사조소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1565호)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