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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이성만 형제 효제비, '의좋은 형제' 일화의 배경이 된 비석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옛 대흥관 관아 앞에 세워져 있는 ‘이성만 형제 효제비’이다. 이 비석은 인근 ‘개방이다리’ 옆에 있었는데, 예당저수지가 생기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예전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농심라면 광고 모티브로 사용되었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던 일화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대흥호장이었던 이성만.순 형제의 우애와 효행을 비석에 새겨 후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연산군 때 조정에서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대흥군(大興郡)은 충남 예산군 대흥면.응봉면.광시면.신양면 일대에 있었던 옛 조선시대 군현이다. 삼국시대 백제 임존성이 있었던 지역이며, 고려는 대흥군을 두었다. 조선 태종 때 현감이 고을 수령인 대흥현이 되었다가 숙종때 대흥군으로 승격되었다.

<예산군 대흥면 소재지 옛 대흥군 관아 앞 공원에 세워져 있는 효제비>

‘의좋은 형제’ 일화의 배경이 되었던 비석이다.


<비석>

총 171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두 형제의 우애와 효행과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다.

<조형물>

농심라면 광고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일화가 너무 잘 알려져 있어 이곳에 조성된 공원을 ‘의좋은 형제 공원’이라 부르며, 일화와 관련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내용>

<옛 대훙군 관아>

대흥군수가 근무했던 동헌 건물과 아문이 남아 있다.

예산 이성만 형제 효제비,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497년
이 비는 1978년,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무대였던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개방이다리’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예당저수지로 인한 수몰 위험이 있어, 현 위치로 옮겼다. 이 비가 발견되어 의좋은 형제 전설을 증명하게 되었다. 다음은 철저한 현장 조사와 기왕의 탁본을 토대로 작성한 비문에 따른 번역문이다. 판독된 비문은 이두, 속자(俗子), 고자(古字), 첩자기호등을 포함하여 총 171자이다.

영락 16년(1418) 11월 3일, 지신사 하연이 삼가 왕지를 받들어 ‘의리가 있는 남자와 절개가 있는 여자, 효성스런 아들과 손자를 찾아보고 보고할 일’로 각도에 공문서를 보낸 일이 있다. 충청도 대흥호장 이성만, 이순 등은 부모가 살아 계실 적에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봉양하고, 봄과 가을로 부모가 사랑하는 친구과 친척들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해서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형은 어머님의 무덤을 지키고 동생은 아버님의 무덤을 지키면서, 아침에는 형이 아우의 집에 이르고, 저녁에는 아우가 형의 집에 나아가되 아침과 저녁으로 서로 맞찹고 같이 밥을 먹었고, 한가지 만난 것을 얻으면 모이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고 임금꼐 상신을 올려 보고 드렸다. 앞서 효자 대흥호장 이성만, 이순 등을 임금께서 궐내로 불러 정표문려하시고,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조심하고 삼가고 지켜서 가품을 떨어뜨리지 말고 더욱더 힘쓰라 하시고, 영세토록 전하는 교훈이 되게 하셨다. 홍치 10년(1497) 정사 2월 세우고 표하다. (안내문, 예산군청, 2010년)

<출처>

  1. 예산군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