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외암(外岩)마을이다. 마을은 관아가 있던 온주 읍치에서 남쪽으로 4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차령산맥이라는 큰 산줄기가 지나가고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아산만을 중심으로 내포평야가 펼쳐져 있다. 마을은 설화산(440 m) 남쪽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어 물이 비교적 풍부하고 일조량이 많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 마을 입구에는 제법 큰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약간 경사진 언덕을 따라 집들이 모여 있다.
외암마을은 조선중기 이후 예안이씨가 이 곳에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집성촌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에는 양반집 대저택부터 작은 초가집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건재고택, 교수댁, 송화댁은 마당에 물길을 끌여들이고 다양한 수목을 심어 화려한 정원을 꾸며 놓고 있다. 또한 외암 종손댁, 참판댁, 감찰댁 등은 정원이 화려하지 않지만 규모있는 양반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양반가옥 외 작은 규모의 기와집과 다양한 규모의 초가집들이 고르게 남아 있는 중부지방을 대표하는 전통마을이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위치한 외암마을. 중부지방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뒷쪽에는 설화산(440 m)이 있고 앞쪽으로는 외암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물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적당하다.
외암마을 입구. 마을사람들이 쉼터였던 것으로 보이는 공간이 마을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종택에 해당하는 건재고택이 마을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비교적 큰 규모의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 동쪽을 흐르는 개천 옆에 크고 작은 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골목길. 크고 작은 초가들과 돌담길이 전통마을의 옛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을 중간에 수령이 오래된 고목나무가 있는데 아마도 이곳이 원래 마을입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
느티나무를 지나면 마을 종택으로 보이는 건재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외암마을은 다른 마을과는 달리 크고 작은 나무를 심어 인공적으로 정원을 만든 집들이 많은 편이다.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건재고택. 안채와 사랑채, 여러동의 곳간채와 가묘,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앞 마당에는 계곡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다양한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놓고 있다.
건재고택을 지나 안쪽으로 이어지는 돌담길. 골목이 비교적 넓은 편이며, 큰 길 동쪽편에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건재고택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중간 규모의 고택인 참봉댁.
참봉댁을 지나면 비교적 큰 규모의 저택인 송화댁을 볼 수 있다. 사랑채 앞에 넓은 마당을 두고 있는데 마을을 지나는 물길이 마당 가운데를 흐르고 있으며, 소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를 심어 별장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송화댁 뒷편 외암 이간의 종손이 살고 있는 종갓집이다. 마을을 대표하는 종갓집이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크지 않고 건물도 ‘ㄱ’자형 안채만 남아 있다. 종갓집 답게 불천위로 제수된 외암 선생의 사당이 안채 옆에 있다.
외암 이간을 불천위로 모신 사당. 종갓집에 딸린 사당건물이다.
마을 동쪽을 흐르는 작은 개천. 뒷편 설화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개천으로 마을에 풍부한 물을 공급해 준다.
건재고택 뒷편에 위치한 교수댁. 구한말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이 살았던 집으로 건물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사랑채 앞 마당에는 개울에서 물을 끌어들여 인공적으로 정원을 조성하였는데, 다양한 수목을 심고 연못을 조성하는 등 인공적인 조형미가 돋보인다.
마을 뒷편으로 보이는 설화산(440 m).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마을에 풍부한 물을 공급해 준다.
구한말 관리를 지낸 인물이 살았던 큰 규모의 저택인 감찰댁. 건물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개방적인 중부지방 대저택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아산 외암마을,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일원
외암마을은 북쪽의 설화산을 최고봉으로 그 남서쪽의 약한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어귀는 낮고 마을 뒤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 조건에 따라 마을의 집은 대개 남향 또는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일조량이 많으며 겨울에는 서북 계절풍을 막아주는 좋은 기후 환경 때문에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마을에는 원래 여러 성씨가 살고 있었는데 조선 명종 때 예안 이씨 이시종이 세 딸만 둔 진한평의 첫째 사위가 되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후손들이 번창하게 되었고, 그 후손 중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자 차츰 예안 이씨를 중심으로 하는 동족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 경종 3년(1723)에 이간 선생이 쓴 “외암기”에 마을 이름을 ‘외암(巍巖)’으로 기록한 사실이 있으며 일제 때부터 획수가 적은 ‘외암(外岩)’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이 마을에는 충청지방의 양반집과 초가가 어우러지고 집집마다 돌담으로 둘러져 있으며, 설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인공 수로를 따라 마을 안을 흐르면서 정원을 꾸미거나 생할용수로 이용되고 유실시와 화목군 등 수림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이 마을은 지리적으로 한양과 가까워 왕래가 잦아서 인지 한양 풍속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느티나무제와 장승제를 지내며, 매년 10월에는 전통문호(관.혼.상.제)와 농경문화, 민속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짚풀문화제가 열린다. 이 마을은 역사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충청지방의 전통적인 살림집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민족 문화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안내문, 아산시청, 2017년)
<출처>
- 아산시청
- 문화재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