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공세곶고지이다. 이곳은 충청지역에서 세금으로 걷어들인 곡식을 모아서 보관했던 창고인 공진창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조운선을 이용하여 한양으로 운송했는데 세곡선 외에 한양으로 향하는 주요 물자들도 같이 운송했던 교통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조운을 담당하던 해운판관을 비롯하여 720명의 담당자들이 있었고, 80칸의 창고, 적재량 800석의 큰 배가 15척이 있었다고 하며,민간에서 운용하던 배나 인력 또한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공세곶에 세워진 공세리성당은 공세곶 창고를 개조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평야지대에 있는 작은 언덕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해안가에 돌출된 곶이었던 곳으로 주변지역이 간척되어 농지로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조운은 각지방에서 거눈 현물조세를 운송하던 제도로 주로 강과 연안바다의 해로를 이용하였다. 북부지방에서 걷어들인 세금은 국방비로 사용했기때문에 황해도 이남 지역의 큰 강과 해안에 위치한 주요 포구들에 조창이 설치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조창은 강원도 (원주 경흥창, 춘천 소양강창), 충청도 (아산 공진창, 충주 가흥창), 황해도 (배천 금곡포창, 강음 조읍포창), 경상도 (김해 불암창, 창원 마산창, 사천 통양창), 전라도 (용안 덕성창, 영광 법성창, 나주 영산창)에 설치되었다.
아산 공세곶고지. 조선시대 충청지역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자리이다. 창고가 있던 곳에는 공세리성당이 세워졌으며, 창고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 일부가 마을에 남아 있다.
성벽 앞에는 창고를 관리하던 해운판관을 지낸 인물들을 위해 세웠던 공덕비들을 모아 놓았다.
삼도해운판관비, 조선시대
비가 서 있는 이곳은 수로 교통의 요지로, 조선시대 세금으로 받아들인 곡식을 물길을 이용하여 서울로 운반하였던 공진창이 있던 곳이다. 1523년(중종 18)에 80칸의 창고를 짓고, 적재량 8백석인 조선 15척과 720인의 조운 담당자들을 배속하고, 해운판관을 책임자로 임명하여 조세의 안정적인 수납과 운송을 담당하게 했다. 여기의 비들은 해운판관들의 깨끗한 덕행과 바르고 착한 다스림을 기리는 기념비로 6기가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649년(인조 27)의 것이고, 가장 최근의 것은 1708년(숙종 34)의 것이다. 본래 창고지 앞과 도로변에 돌로 쌓아 올린 석축 일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최근에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안내문, 아산시청, 2010년)
공진창 창고가 있었던 공세곶. 창고가 있던 자리에는 공세리성당이 세워졌다.
아산 공세곶고지, 조선시대,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조선시대 조세로 내었던 곡식을 저장하였던 조창(漕倉)의 하나인 공진창(貢進倉)이 있었던 자리이다. 공세곶창(貢稅串倉)은 공진창의 처음 이름이다. 이곳에서 충청도 각지에서 곡식을 모아 두었다가 일정한 시기에 서울로 옮겼다. 초기에는 창고없이 해안 포구에 곡식을 쌓아 두었으나, 1523년(중종 18)에 80칸의 창고를 마련하고 이름을 ‘공진창’이라 하였다. 공진창에는 곡식의 운송을 위하여 적재량 8백석의 조선 15척과 운반인 720명이 배치되었고, 곡식의 수납과 운송 책임자로 해운판관(海運判官)이 임명되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조창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충청도 도사로 하여금 겸임하게 하다가 1762년(영조 38) 이후에 아산 현감이 관리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는 조창자체가 폐지되어 창고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1897년에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현재 창고지 주변에는 상시 세운 성벽이 남아 있다. (안내문, 아산시청, 2010년)
조선시대 세금와 물자를 나르던 조운(수운)과 주요 창고들.
충청지역의 창고. 내포평야를 비롯하여 청주까지 충청도 주요 지역에서 걷어진 세곡들은 공진창에 모여졌다가 조운선으로 한양까지 운송하였다.
조선시대의 조운과 조창
조운遭運은 각 지방에서 거둔 현물 조세를 수도인 한양으로 운송하던 제도이다. 강을 이용할 경우에는 수운水運, 바다를 이용할 경우에는 해운海運이라 하였다. 육로를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도로와 운송수단의 문제로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다. 조세로 거둔 쌀이나 곡물과 같은 현물을 수송하기 위해 강과 바다의 출발지와 도착지에 창고를 설치하고 일정 기간 저장해 두었다가 중앙의 경창京倉(군자창, 풍저창, 광흥창)으로 운송하였다. 도성에 가까운 경기도와 강원도 철원, 평강, 금화군 등의 세곡은 육로로 경창에 직접 납부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출처>
- 아산시청
- 문화재청
-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