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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평택현 관아, 팽성읍 객사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에 남아 있는 옛 평택현 관아터에 객사건물이 남아 있다. 객사는 가운데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모시는 앞면 3칸규모의 중대청을 두고 있으며, 양쪽에 3칸 규모의 동.서헌을 두고 있다. 동.서헌은 이 고장을 방문한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로 방1칸과 연회를 할 수 있는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그 규모와 형태가 평균적이고 조선후기 객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이후 양조장, 주택 등으로 사용되었다가 1994년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평택현은 오늘날 팽성읍 주변지역을 관할하던 작은 고을로 오늘날 평택시 남쪽 안성천 주변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평택은 지방 수령중 가장 하위직인 종6품 현감이 파견된 작은 고을로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로 충청도에 속해 있었다. 읍치는 객사가 남아 있는 팽성읍 객사리이며 읍성을 두고 있지는 않다.팽성(彭城)은 평택현의 별칭으로 초나라 항우가 도읍으로 정했던 곳과 같은 이름이다.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의 지형이 중국 팽성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옛 평택현 관아의 중심 건물이었던 객사>

가운데 궐패를 모시는 중대청을 두고 양쪽에 동.서헌을 배치한 전형적인 조선후기 객사 건물이다. 평택은 종6품 현감이 고을수령으로 파견된 작은 고을이지만, 객사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다.

<국왕의 궐패를 모시는 공간인 정청>

이곳은 대청마루가 없이 전돌을 바닥에 깔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익랑 건물인 동헌>

앞면 3칸 규모로 온돌방 1칸과 넓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고을을 방문한 관리들이 머물던 숙소로 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서헌>

<객사 출입문>

가운데 솟을대문이 있고 양쪽에 문간방들이 배치되어 있다.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삼문형식을 하고 있는 다른 지방 객사와는 다른 구조이다.

<안쪽에서 본 문간채>

<객사에서 서쪽으로 50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평택향교>

팽성읍객사,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객사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팽성읍 객사는 옛현의 주산인 부용산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객사란 지방관아의 중심건물로 고을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놓고 절하는 의식인 망궐례를 행하고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시설이다. 원래는 작은 규모였던 것을 현종 대(1659~1764)에 현감 심익선이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조선 숙종 26년(1700)에 다시 한번 중수되었다. 일제시대에는 양조장으로 바뀌었다가 주택으로도 사용되었던 것을 1994년 해체 수리하여 옛모습을 되찾았다. 건물의 중심인 정청과 좌우동서헌이 일자형을 이루고 그 앞으로 ‘ㄱ’자형의 문간채가 놓여 마당을 중심으로 특 ‘ㄷ’자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맞배집으로 전면에 개방된 퇴칸이 있고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 동.서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민도리집인데 정청쪽에는 툇마루가 달린 1칸 반 온돌방이 있고 그 옆에는 대청이 있다. 문간채는 10칸 규모의 민도리집인데 지붕 용마루 양끝에는 용두를 놓아 관청의 위엄을 나타내는 솟을대문 좌우에 온돌방과 부엌이 있다. (안내문, 평택시청, 2010년)

<출처>

  1. 평택시청
  2. 문화재청
  3. 고지도를 통해 본 충청지명연구 2, 이기봉, 2012년, 국립중앙도서관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