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직산현 관아, 동헌과 관아 아문

충남 천안시 직산읍 군동리에 있는 직산현(稷山縣) 관아터이다. 건물터에는 관아 건물들로 동헌, 내동헌, 내삼문, 아문이 남아 있다. 옛 기록에는 따르면 객사, 군기, 동헌, 내아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초등학교와 양조장으로 바뀌었다. 직산현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있었기 손님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을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가 30칸 규모로 많은 방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동헌 뒷편에도 내동헌이라고 해서 사람이 묵어갈 수 있는 건물이 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직산현은 천안시 직산읍, 성거읍, 성환읍, 입장면 등을 관할하던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종 6품 현감이 파견된 작은 고을이었다. 조선시대 6대 간선도로 중 하나로 호남과 충청지역과 연결된 도로상에 있으며, 경기도를 벗어나 호서지역 첫번째 고을로서 의미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직산읍 부근으로 1번 국도와 경부고속도, 경부선 철도 등 주요 교통수단이 대표 노선이 지나가고 있다. 직산현에는 조선시대 중요 교통로에 설치한 숙박시설인 성환역이 있었다고 한다. 직산현 관아가 있던 이곳은 주요 교통로에서 약간 벗어난 까닭에 도시화 과정에서 관아건물들이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직산현 관아터. 옛 관아 건물 중 동헌, 내동헌, 내삼문, 관아문이 남아 있다. 관아 앞에는 직산 현감 등을 지냈던 인물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직산현 관아 아문. 호서지방 첫번째 고을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는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직산현은 작은 고을이지만 제대로 갖춘 관아문을 갖추고 있다. 이는 호서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국왕의 행차도 있었고, 고위관리의 방문도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관아문을 들어서면 동헌을 출입하는 내삼문이 있다. 그 사이에 있던 행각들은 남아 있지 않고 용도를 알 수 있는 건물이 1동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관아문 안쪽에 남아 있는 건물.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내삼문. 문간채는 관청에 하급 관리 등이 사용하는 방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에서는 창고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직산현감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인 동헌. 앞면 7칸의 비교적 큰 건물로 가운데 4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1990년대까지 직산면사무소 건물로 사용되었다가 옛모습으로 복원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동헌 뒷편에는 앞면 4칸규모의 작은 숙소 건물인 내동헌이 있다. 이 건물은 직산현감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건물이다. 직산현을 방문한 손님들을 배려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동헌 건물 동쪽편에는 생활공간인 내아와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신 객사를 비롯하여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직산현 관아, 충남천안시 직산읍 군동리
조선시대 직산현의 지방행정 사무를 보던 관청 건물들이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조선후기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내동헌, 동헌, 내삼문, 관아문 등 4동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동헌은 현감이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이며, 중앙 4칸은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이고, 왼쪽에는 2칸의 온돌방, 오른쪽에는 1칸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대청과 온돌방 앞으로 반칸의 툇마루가 달려 있다. 내동헌은 현감이 생활하던 곳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 건물인데 오른쪽 3칸은 툇마루가 달린 온돌방이고 왼쪽 1칸은 부엌이다. 관아의 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문 위에 누각이 있는 2층 형태의 건물이다. 문의 중앙에는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직산현이 경기도와 호서의 경계가 되는 관청이기 때문이다. (안내문, 천안시청, 2010년)

<출처>

  1. 천안시청
  2. 문화재청
  3. 고지도를 통해 본 충청지명연구 2, 이기봉, 2012년, 국립중앙도서관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