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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울산도호부 관아, 동헌 및 내아

울산시 중구 북정동에 남아 있는 옛 울산도호부 관아 건물이다. 옛 관아터에는 울산부사가 일상적인 근무를 하던 동헌과 살림집인 내아가 남아 있다. 조선후기 숙종대 이후에 지어진 건물들로 일제강점기 이후 울산군청에서 사용하다고 1981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헌은 앞면 6칸 규모로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2칸씩 방을 두고 있다. 왼쪽 방 툇마루에는 난간을 두어 누마루처럼 사용하고 있다. 내아는 온돌방, 대청마루, 누마루를 두고 있는 ‘ㄱ’자형 건물이다. 울산도호부 읍치였던 구도심에 있던 관아에는 군청과 초등학교가 들어섰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초등학교와 군청 등은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현재는 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다.

울산도호부는 울산에 있던 조선시대 지방 행정조직이다. 조선초 울주에 진(鎭)을 두었으며 태종 때 울산군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경주에 있던 경상좌병영을 울산으로 옮기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군으로 강등되었다. 일진왜란 때 울산에 일어난 의병들이 큰 역할을 하면서 울산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병마절도사 겸 부사를 두었다. 이후 전임 도호부사가 파견되어 구한말까지 이어졌다. 관아건물들 또한 울산도호부가 자리를 잡은 조선후기에 지어졌다.

<옛 울산도호부 관아터>

읍치였던 구도심이 있던 지역으로 동헌이 있던 곳은 울산군청에서, 객사는 울산초등학교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시의 확장으로 울산군청과 초등학교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으며 도서관 등 옛 관공서 건물들이 남아 있다.

<울산도호부 동헌>

앞면 6칸의 건물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울산도호부가 자리를 잡은 조선후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그후 여러 차례 중건과 수리를 거쳤다.

<대청마루>

울산부사가 재판같은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앞면 2칸 규모로 다른 지방 동헌 건물에 비해 좁은 편이다.

<건물 왼쪽편 온돌방>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오른쪽 방>

손님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바깥쪽에 난간이 있는 누마루처럼 꾸며 놓았다.

<툇마루>

<살림집인 내아>

온돌방, 대청마루, 누마루 등으로 구성된 ‘ㄱ’자형 건물이다. 중부지방 관아 건물 내아와는 달리 개방적인 평면 구조를 하고 있다.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

<오른쪽 온돌방>

<왼쪽 사랑방과 누마루>

사랑채에 해당한는 공간으로 ‘-‘자형 안채에 덧붙여서 ‘ㄱ’자형 건물을 만들고 있다.

<내아 앞에서 심어진 고목>

<동헌 뒷편에 있는 작은 정자와 공덕비들>

울산동헌 및 내아,
울산광역시 중구 동헌길 울산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보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였던 곳이고,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동헌은 1681년(숙종 7) 울산부사 김수오가 처음 지었고, 1763년(영조 39년) 울산부사 홍익대가 다시 지어 반학헌으로 불렀다. 일제강점기 이후 울주군청 회의실로 사용하다가 1981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에 2칸의 대청을, 좌우에 2칸씩 방을 두었다. 그리고 왼쪽 방 앞의 툇마루 주위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다. 처마는 부연을 둔 겹처마이고, 기둥 위에는 익공 형식의 포를 올렸으며, 추녀마루가 길게 뻗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아는 온돌방 4칸, 대청 2칸, 부엌과 누마루 각 1칸씩을 둔 ‘ㄱ’자형 안채에 사랑방과 누마루를 덧붙인 형식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1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안내문, 울산시청, 2017년)

<출처>

  1. 울산시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