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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태령전과 서암바위

태령전은 경희궁에 있던 많은 전각들 중 하나로 국왕의 집무장소였던 편전인 자정전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던 건물이다. 정문에 삼문형식으로 만들어진 태령문이 있고 편전인 자정전과 협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는 특별한 용도가 없었던 건물인데 영조대에 영조자신의 어진을 모시는 건물로 사용하면서 태령전이라 불렀다. 태령전에는 원래 영조가 연잉군 시절에 제작한 초상화를 모셨었다고 한다. 이 건물 또한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던 것인데, 경희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복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경희궁 태령전>

영조의 어진을 모신 태령전이다.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주거용 건물이라고 보다는 경연을 열리거나 회의가 열리던  공간으로 보인다.

<태령전 내부>

원래 태령전에는 영조가 20대였던 연잉군 시절에 그렸던 초상화(보물)를 봉안했었다고 한다.


<태령전에 봉안되었던 영조 어진(보물)>

<처마와 공포>

<옆에서 본 모습>

<삼문과 행각>

태령전 뒷편 서암바위는 원래 이름은 왕암이라고 하며, 이곳에 왕기가 서렸다고 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 정원군의 사저가 있던 장소였는데 왕기가 서렸다는 이유로 광해군이 이곳에 서궐을 세웠다고 한다. 실제로 정원군의 아들인 인조가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태령전 뒷편 서암>

<서암에서 솟아나는 작은 샘물>

 <작은 물길>

<샘물 오른편에 있는 큰 바위>

서암은 원래 ‘왕암’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으로 인해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숙종 때에 이름을 ‘서암’으로 고치, 숙종이 직접 사방석에 ‘서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 두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출처:문화재청>

<경희궁 자정전 뒷편 숲길>

태령전
이곳은 영조의 어진을 모셔두던 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영조 20)에 이곳을 다시 수리하여 어진을 모셨다. 선원전의 경우 선대 국왕들의 어진을 모셨던 것에 비해서 태령전은 영조 재위 당시에 현왕인 영조 자신의 어진을 모셨다는 점이 특징이다. 태령전은 일제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서궐도안에 따라 현재의 건물로 복원하였고 현판은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출처:문화재청>